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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리 Sep 16. 2023

생각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다

유도분만 첫날 시도는 실패였다



(계속) 유도분만 첫날 시도는 실패다. 약을 뺐더니 진통이 줄어들어서였다. 하지만 자정을 지나면서 다시 진통이 세지기 시작했고, 드디어 ‘자력 진통’이 걸렸다.


나는 새벽 내내 10분마다 찾아오는 극강의 고통을 이악물고 버텼다. 순전히 ‘오늘 안에 끝난다’라는 예측 가능함 덕분이었다.


새벽 다섯시, 다시 약을 투여하기 시작했다. 이때 점점 더 세지는 고통을 견딜 수 있게 한 건 역시 ‘예측 가능함’이었다.


“지금 3cm 열렸네요.”


“흐흡……(고통 참는 중) 어쨌든 4cm 열리면 무통 맞을 수 있는 거죠?”


“네, 열리실 것 같아요.”


그 말만 믿고 열심히 참았다. 그리고 한시간 더 지난 후, 더는 참기 힘든 고통이 밀려왔다. 이건 분명히 더 열린 거다, 무통 맞을 수 있겠다, 라는 희망을 갖고 다시 내진을 요청했다.


배에 붙인 감지기(?)를 통해 표시되는 진통 그래프. 5분에 두번씩 100을 초과하는 고통이 선사된다


“저 지금은 얼마나 열렸는지…… 무통…… 무통…….”


하지만 들어온 건 아까와 다른 간호사님이었고, 그분은 아직 진통 주기가 7분이라는 이유로 내진을 해주지 않고 나가버렸다. 아직 아니라고, 지금은 내진해도 의미가 없다는 게 이유였다.


, 지금 진통 왔는데…….”


“(씁쓸하게 웃으며) 조금 이따 다시 올게요.”


지금까지 잘 참았던 나는 그때 울음이 펑 터져버렸다. 그 절망이 트리거가 되었는지, 갑자기 2분 간격으로 진통이 화마처럼 덮치기 시작했다. 나는 더이상 못 참고 괴성을 지르며 남편한테 소리쳤다.


“빨리, 빨리. 다시 봐달라고 해. 2, 3분 간격 되는 것 같다고.”


“아, 왜 안와!”


“피, 피가 흘러내린 것 같아. 빨리, 빨리!”


그제야 다시 들어온 간호사님은 나한테 30분만 더 참으면 무통주사를 놔 주겠다고 했고, 나는 또 ‘예측 가능함’에 힘을 얻어 참았고, 30분 후, 또 30분을 기다리는 말 또 절망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의료진이 급박하게 외쳤다.


“어머! 산모님! 지금 급속 진행돼서, 진짜 30분만 더 참아보실게요. 30분 내로 아기 낳게 해드릴게요!”


이게 무슨 말인가. 아까는 열리지도 않았다더니 갑자기 30분이라고?


그리고…….


“지금 아기 머리 보이거든요. 바로 세팅해주세요. 빨리 해주세요!”


“자, 산모님! 지금 힘껏 힘주세요!”


“한번 더 힘주세요!”


뭐가 어떻게 진행되는지도 모른 채 정신없이 하라는 대로 했고, 20분 후에 아기가 쑥 나와버렸다.


“아기 나왔습니다.”


“태반 나왔습니.”


산모님 수고하셨어요.”


기진맥진한 채 천장을 보며 생각했다.


뭐지…….


아무리 계획대로 되는 게 없는 게 인생이라지만, 열 달 간 아기를 품고 있으면서 내가 무통 한번 안 맞고 출산할 거라는 건 정말이지 내 상상에 없었다.


벌써부터 숨이 턱 막혔다.


임신, 출산, 육아. 그것들에 있어서는 뭔가를 예측하고 계획한다는 게 완전히 무의미한 일이라는 걸 깨달아버린 거였다. 감히 내 생각대로 되는 건 하나도 없다는, 없을 거라는 그 아득하고 두려운 깨달음…….


‘끊임없이 고통받는 J의 육아’의 서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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