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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리 Oct 12. 2023

어제 육아일기는 30줄, 오늘 일기는 3줄

조리원에서 퇴소한 날의 내 일기다



조리원에서 퇴소한 날의 내 일기다.


* 7/2 일기


애가 잘 잔 건 조리원에서 퇴소해서 온 처음 2시간뿐이었다.


1. 에어컨 켜놔도 온도가 안내려가서 속싸개 벗겼더니 팔다리 움직이며 난리치기 시작함.


2. 실외기 공간을 닫아놨다는 걸 깨닫고 화들짝 열었더니 온도 막 떨어지기 시작함. 이불 덮어줌.


3. 조리원에선 잘 되던 모유수유 자세가 집에선 안 돼서 애 울고 난리남.


4. 산후도우미 업체 대표님(?)이 하루 일찍 방문해주셨는데, 아기 덥다고 스와들업 벗기고 큰 바지로 팔다리를 가둬 속싸개 대용으로 입히심. 울길래 쪽쪽이 물려놨었는데 왜 벌써 쪽쪽이를 물리냐고 과감하게 빼심.


5. 능숙하게 아기 다 달래주고 가심.


6. 대표님 가자마자 기저귀 새서 쉬해서 그 바지 젖음. 다른 바지로 해보려 하니 팔까지 안 들어감. 스와들업은 입히지 말라고 하니 안 입힘.


7. 팔 허에 휘두르며 새벽 내내 울음. 주먹고기 계속 하면서 우는데 왜 우는지 모름. 모유 줘도 분유 줘도 안먹음. 배운 대로 기저귀도 갈아보고 안아도 줘 보고 함. 하지만 그때뿐임.


8. 밥을 먹어야 잘 텐데 콩알만큼만 먹고 또 칭얼댐. 쪽쪽이 딱 물리면 잘 것 같은데 물리지 말라고 하니 쩔쩔매기만 함. 뭐했는지 모르겠는데 밤 9시부터 새벽 1시 순삭됨.


9. 남편 내일 회사 인수인계 하러 가야 해서 오늘은 일단 자라고 들여보냄. 혼자 안은 채로 재우고 나도 꾸벅꾸벅 졸았음.


10. 더는 못 안고 있겠어서 침대에 내려놨더니 바로 또 깸.


11. 다시 소파에 앉아서 안고 잠. 나는 이제 비몽사몽 정신 없어서 코피 나올 것 같음. 비행기 탈 때 쓰는 목베개 걸치고 졸음.


12. 한시간쯤 후 또 모로반사로 팔다리 허우적거리며 깸. 나도 깸. 또 한동안 안고 달램.


13. 다시 침대에 눕혀봤더니 이번엔 잠(?). 나도 드디어 2시간 잠.


14. 새벽 5시, 또 깨서 칭얼대기 시전. 분유 타는 내 눈알 뿌셔질 것 같음……. 도우미님 오실 시간만 기다리게 됨. 9시가 너무 멀다.


15. 분유 먹임……. 조금 먹고 잠……. 또 일어남……. 먹임……. 또 울음……. 기성 엄마들 리스펙하며 또 분유 탐……. 근데 이 분유를 먹을지 확신은 없음. 할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어서 타는 것임…….


16. 미침……. 아직도 새벽임.


와 나 미치겠다. 할 수 있을까?

남편 없이 혼자 밤새 이러면 진짜 우울증 걸리고도 남겠는데? 이거 10년 동안 어떻게 키우냐 미치겠다…….




그런데 말이지.

이제 다음날 일기는…….




* 7/3 일기


도우미님 오신 동안 편했고, 도우미님 가시자마자 저녁 8시부터 칭얼대기 시작해서 새벽 1시까지 눈 말똥말똥 뜨고 계속 울어서 힘들었음.


그후 새벽 2시부터 6시까지 쭉 잠.


???


뭐지?


오늘은 왜 이렇게 잘 자는 거지?


이정도면 육아 할 만한데?




* 결론


이거 순 애 컨디션에 따라 평생 이렇게 끌려다니는 거잖아! 어느날은 쉬웠다가 어느날은 너무 어려웠다가 하는 것이구나……. 내가 잘하고 말고를 떠나서 그냥 이녀석 컨디션이야……. 미치겄다…….


출산도 그랬듯이 육아 또한 내맘대로 되는 게 없을 듯한 느낌적인 느낌이다.


욕심을 버리고, 뭘 어떻게 하겠단 생각을 버리고, 애 흘러가는 대로(시류X 애류O)에 몸을 맡기자…… 가 결론이었다.


문제의 그 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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