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과의 단톡방에서는 매일 새로운 주제로 떠들어도 안 질린다. 특히 안 질리는 게 심리테스트다. 누군가 링크를 보내면 각자 해보고 결과를 공유한 다음 그것에 대해 신나게 수다를 떤다. 맞다거나 안 맞다거나, 완전 너라거나, 난 이건 아닌 것 같다거나.
그날의 화두는 ‘극성부모 테스트’였다.
나는 평소에 ‘쿨한 부모’가 될 거라고 누누이 표방해왔다. 나는 많이 통제하는 부모님 하에서 자라면서 제약이 많았기 때문이다. 통금도 있었고 엠티도 잘 못 갔다. 아르바이트 할 시간에 공부를 하라고 해서(공부도 못했는데) 딱 한번밖에 못해봤다. 친구집에서 자본 적도 거의 없고 혼자 여행도 가본 적 없었다.
그래서 나는 자식을 자유분방하게 키울 거라고 입버릇처럼 뱉는 삶을 살아왔다.
그런데 어쩌면 재미로 넘어갈 수도 있었던 이 테스트에서 나는 엄청난 진리를 깨닫게 되는데…….
바로 내가 극성부모가 될 상이라는 것!
극성부모인지 알아볼 수 있다는 그 테스트는 ‘너는 자식이 ○○하면 어떻게 대처할 거니?’를 묻는 테스트가 아니었다. ‘너는 ○○하면 어떻게 할 거니? 너말이야 너!’를 묻는 테스트였다.
질문들에 대답하며 나는 무릎을 탁 쳤다.
결국 나는 아빠를 닮은 것이구나……!
나는 모든 상황이 내 예상대로 안 되면 불안감을 느끼는 J 중의 J의 성향을 가졌다. 뭐든지 필요한 물건은 하나씩 더 챙기고, 기본적으로 하나씩 더 챙긴 상태에서 전체적으로 하나를 더 챙긴다. 혹시 일어날 비상사태를 대비해 무조건 차선책을 생각해둔다. 해야 할 일이 있으면 절대 까먹지 않으려고 이틀전, 하루전, 12시간전, 1시간전, 10분전 등 모든 알람을 설정한다. 절대 실수란 없다.
이런 성향이 결국은 내 자식한테 반영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에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생각해보면 아빠도 본인이 그런 성격이다보니 자식에게도 꼭 차선책을 세워 두라고 하고, 혹시 모르니 물건을 하나씩 더 챙기라고 잔소리하고, 혹시 무슨일이 생길지 모르니 집에 일찍 들어오라고 통금을 뒀던 거다. 그렇게 생각하니 우리 부모님이 날 키운 방식이 단번에 이해되어 버렸다.
아니나다를까 내 동생도 극성부모가 나와버렸다. 하지만 우리 남매는 지난 30년간 툭하면 ‘우린 자식 낳으면 자유롭게 키우자’라고 주창해왔던 인물…….
답은 하나다. 본인의 성격이 자식에게 반영된다는 것.
30년간 우리 아빠 밑에서 배우며 내 성격이 형성됐는데 하루아침에 바뀔 게 아닌 것이다. 그러면서 말로만 자유로운 부모라고 주장하면 안 맞는 거겠지.
반대로 비교적 자유로운 부모님 밑에서 자란 남편은 극성지수가 거의 없는 자유로운 부모라는 결과가 나왔다.
‘나는 너의 조력자일 뿐. 스스로 재능을 찾게 도와줘야지. 강요하지 않을게. 너의 선택을 존중해!’
이건 내가 추구해 마지않았던 내 육아관이었는데……. 나에게 그 육아관의 실천이란 정반대의 지점에 있는 거였다. ‘쿨한 부모’는 말로만 하면 되는 게 아니었다. 따질 거 다 따지고 거래하면서 ‘쿨거래 네고’를 요구하는 사람 같은 것…….
친구들 중에 내가 그리는 부모상에 딱 부합하는 결과가 나온 친구들이 몇 있었다. 그들에게 ‘너네 멋지다’라고 했더니 그들은 말했다. 대신 자기는 똥 묻은 옷 입혀보낼 가능성이 크다고. 난 대답했다. 오, 난 똥 안 묻도록 5중으로 차단하며 키울 것 같다고.
키우는 방식부터 부모 성격에 따라 이렇게 차이가 생기는데 그게 아이 성격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리가 없다. 너무나 당연한 진리를 나는 여태 모르고 있었다.
앞으로는 아기를 키우면서 끊임없이 나를 의심해야겠다. 결국 내가 내 성격대로 아기를 키우고 있는 건 아닌지.
물론 어느 한쪽으로 극단적인 건 당연히 안 좋겠지만(자유와 엄격의 장단점 또한 분명하니까) 적정선을 유지하고 있는지 또한 항상 의심해보려 한다.
사실 말이지. 이런 걸 분석하고 앞으로 백년지대계를 바라보며 교육방식을 다짐하고 앉아있는 것 자체가 극성부모다…….
앞으로 난 정말 끊임없이 날 의심하리라. 지금 이순간도 J답게 대단한 마음을 먹는다.
콧속 이물질(?)을 미치도록 빼주고 싶다. 하지만 70%를 성공하고도 30%를 못 견뎌 스트레스를 받는 나의 성격을 지금 이순간 애한테 물려주고 있는 건 아닐까, 하여 놓아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