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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리 Oct 08. 2023

아기 컨디션 좋을 때 집안일 하지 않는다

우리는 육퇴가 늦다



우리는 육퇴가 늦다.


다른 아기들은 저녁 8시면 잔다는데 우리 아기는 밤 10시는 넘어야 잔다. 처음엔 9시반쯤에 자더니 이제는 10시반에도 안 잔다.


겨우 재워서 눕히면 눈을 말똥하게 뜬다. 아기의 동그란 눈을 보고 웃지 않을 수 있는 부모는 없다. 허탈한 웃음이 터진다. 다시 안고 나온다. 그렇게 재우고 나면 6~7시간이다. 무슨일이 있어도 아침 7시에는 활동을 시작하신다.


아기마다 다를 테다. 누군가는 딸이 새벽 1시까지 안 자서 육아휴직을 좀더 오래 썼다는 말도 들었다.


어제 카페에서는 옆에 앉은 아기엄마가 통화하는데 ‘저녁 일곱시면 문닫고 나오지. 그럼 일곱시까지 자거든. 그럼 그땐 자유지.’라고 하는 걸 듣고 나와 남편이 동시에 눈이 휘둥그레해졌다.


같이 유모차 끌고 집에 오면서 계속 그 얘기를 했다.


“와, 저녁 7시에 자서 다음날 7시에 일어나면 진짜 뭐든 다 하겠다.”

“그치. 우린 우리 시간이 너무 없지. 낮잠을 많이 안 자나?”

“아, 그럴 수도 있겠다.”


정말 우리는 우리 시간이 거의 없다. 툭하면 울어서 혼 쏙 빼놓는 시기는 지났지만 아침 7시부터 밤 10시까지는 꼼짝없이 아기한테 맞춰야 한다. 10시에 아기를 재우고 나면, 나도비몽사몽이 되어 아무것도 못한 채 하루가 끝난다.


물론 중간에 낮잠을 자기는 한다. 서너번 낮잠을 자는데 어쩔 때는 20분 자고 깨서 울고 어쩔 때는 두세시간을 내리 잔다. 그때 그나마 각자 할 일을 할 수가 있는데 그마저도 언제 깰지 모르니 안정적이지 못하다.


참고로 나는 글을 쓰고 남편은 자격증 공부를 하고 있다. 토막시간에 잠깐씩 해서는 아무래도 몰입이 어렵다.


분석해봤다. 문제해결을 위해.


분석 결과, 확실한 건 아침 7시에 분유 먹고 9시까지는 아기 컨디션이 하루 중 최상이라는 거였다. 자는 건 아니다. 절대 안 잔다. 하지만 모빌을 틀어줘도 그 아침엔 안 지겨워하고 혼자 잘 논다. 낮에는 틀어주기만 해도 지겨워서 칭얼대는데.


그런데 내 문제는 그 황금같은 시간에 자꾸 눈에 보이는 집안일을 하느라 내 할 일을 못한다는 것이다. 사실 내가 집안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도 아닌데 그렇게 된다. 아기를 낳기 전에는 집안일을 아예 외면하면 됐는데(?) 이제는 젖병과 아기옷 빨래가 매일 쌓이다보니(=안하면 내가 곤욕에 처하다보니) 자꾸만 거슬리고 신경쓰여서 하게 된다.


‘이것만 후딱 해놔야지’ 하고는 이제 커피 좀 마셔볼까, 하면 아기가 칭얼대기 시작하는 현실이 반복되고 있었다. 그럼 나도 내 할 일을 계속 못하고 마음에만 짐처럼 쌓이게 되니 나 자신에게 지치고 한심한 기분이 반복되어버리는 거였다.


어제는 심지어 커피를 타놨는데 아기가 졸려해서, 열심히 재우고는, 안 깨게 조용히 일어나다가 그 커피를 쏟았다. 그와 함께 내 기분도 엉망진창이 됐고…… 글도 못썼다.


그래서 앞으로는 눈 딱 감고 아침엔 집안일을 하지 않기로 했다. 몇 가지 규칙을 정했다.


주요 방향은 ‘자꾸 거슬린다고 조금씩 여러번 하지 말고, 거슬려도 참고 모아놨다가 몰아서 하자’였다. 내 가장 큰 문제점이기도 하고.


1. 젖병은 1~2개만 남았을 때 씻는다. 3개 남았을 때 불안해하지 않는다. 수유텀이 2~3시간인데 3개면 6시간은 버틸 수 있다. 무엇이 문제인가.


2. 빨래는 매일 하지 않는다. 어제 했으면 하루는 넘어간다. 맨날 하면 반드시 건조대에서 어제꺼 말려둔 걸 개야 한다. 아침에 빨래 개다보면 아침 끝난다.


3. 아침에 절대 빨래 개지 않는다. 빨래 개는 건 아기가 칭얼댈 때 옆에 있어주면서 하면 된다.


4. 아침엔 무조건 내 글쓰기나 공부를 한다. 이때 아니면 낮엔 못하고 밤엔 더 못한다. 난 아기가 밤 10시에 자면 나도 졸려버리는 인간임을 명심하자.


5. 커피. 아기 일어나면 분유 먹이고 트림 시키고 바로 내 커피부터 탄다. 아기가 바로 배고파하지 않으면 놀게 해놓고 역시 내 커피부터 탄다. 다른 걸 손대는 순간 그날 아침은 다 날아간다는 걸 명심하자. 커피 한잔 못하는 하루는 그로부터 시작된다.


6. 노트북 켜서 앉아서, 제발 핸드폰 보지 말자. 인스타 금지. 네이버 기사 금지. 무조건 내 할 일을 20분 이상 한 다음에 폰을 본다. 안그러면 폰 보는 순간 1시간이다.




J의 특징은 계획은 잘 세운다는 것이다. 계획은 완벽하다. 하지만 6번 때문에 매일 망한다. (사실 아기 때문만은 아닌 것…….)


그래도 어쨌든 아침 시간을 꾸역꾸역 활용하려고 노력은 하고 있다. 지금 이 글도 아침에 쓰고 있는 글이다.


아침 7시, 분유 먹고 난 그의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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