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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리 Sep 17. 2023

소아과 오픈런, 그곳은 전쟁터였다

하필이면 다음날이 주말이었다



(계속) 하필이면 다음날이 주말이었다. 출산한 병원에 딸린 소아과는 물론이고 동네 소아과도 갈 수 없었다. 주말에 여는 큰 병원으로 가야 했다. 나는 그때까지 ‘아동병원’이라는 게 따로 있다는 것도 몰랐다.


내 머릿속 소아과는 어릴 적 다녔던 시장 초입에 있는 한적한 소아과의 기억이 끝이었다.


밤을 새면서 남편은 자꾸 알 수 없는 말을 했다.


“내가 ○○ 선배한테 들었는데, 거긴 새벽 6시부터 가서 표를 뽑아야 한대. 내가 가서 뽑아올게.”


병원을 가는데 뭔 표를 뽑아?


“요즘 소아과 의사가 줄어서 애가 아파도 바로 진료를 못 본대. 사람도 엄청 많고.”


그래, 사람이 좀 많나보다.


그런데 새벽에 모자 눌러쓰고 나간 남편이 뽑은 표가 34번이란 말에 꽤나 당황했고, 8시 40분까지 병원으로 가야 한다는 말에 넉넉하게 출발했는데도 지하 주차장이 꽉 차있어서 당황했다.


주차는 남편에게 맡기고 나혼자 애를 안고 허겁지겁 올라갔으며, 엘리베이터에서부터 애와 애엄마들로 꽉 차있어 심각성이 어렴풋이 다가왔고…….


병원에 들어섰을 때는 마치 도떼기 시장 같이 붐비는 광경에 말을 잃었다.


지하철역 사진이 아니다


“27번이요. 27번 없으세요? 28번이요.”


우리가 갔을 땐 27번을 부르고 있었다. 다음 번호로 넘어가는 데 채 1초가 걸리지 않았다. 이런 상황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나는 무방비로 충격받았다.


남편이 뽑은 34번은 진료를 보는 번호가 아니라 ‘예약줄’ 번호일 뿐이었다. 8시 40분부터 기다려서 34번째로 진료를 보는 게 아니라, 병원은 9시에 여는데 8시 40분부터 예약번호를 쭉쭉 불러서 그자리에 없으면 다시 처음부터 줄을 서야 한다는 거다!


조금만 늦었어도 큰일날 뻔했다. 또 다시 숨이 턱 막혔다.


“33번이요. 없으세요?”


대기하는 심장이 점점 뛰었다. 차례를 놓치면 끝이니까 두손에 아기를 꼭 안고 가방과 핸드폰을 손목에 걸치고 숨죽여 기다렸다.


“34번이요.”


“네!”


달려갔다. 간호사가 너무 작은 아기를 보고 물었다.


“아기 몇 개월이에요?”


“신생아요. 27일이요.”


“초진이시면 이거 적어주세요.”


간호사가 네모난 쪽지를 내밀었다. 아기의 이름, 주민번호 같은 것들을 쓰는 용지였다. 마음이 급했던 나는 아기 다리를 놓칠 뻔했다. 남은 손이 없어 허둥대는 나에게 다른 아기엄마가 다가와줬다.


“가방 들어드릴까요?”


“아, 네네. 감사합니다…….”


눈물이 핑 돌았다. 설상가상 아기 주민등록번호도 아직 못 외웠기에 핸드폰을 꺼내서 찾아봐야 했고, 내 팔근육이 이렇게 힘이 셌나 싶을 정도로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가며 주민번호를 찾아 썼다.


접수를 하고 기다려 진료를 들어갔다. 아기를 진찰하시는 선생님께 내가 자책하듯 말했다.


“저희가 너무 미련하게 에어컨을 춥게 틀어놔서 그런가 싶기도 하고요…….”


그러자 선생님이 시원하게 말해주셨다.


“에어컨 트셔도 됩니다. 막 춥게 해놓으라는 게 아니라, 부모님 안 더울 정도로만 해놓으시면 돼요.”


아…… 부모 안 더울 정도로만 해놓으면 되는 거구나…….


이제야 그게 상식처럼 느껴졌다. 아기를 키우는데 엄마아빠가 추울 정도로 해놓고 참고 키우는 게 정상인가……. 그런 지극히 상식적인 생각이 그때에야 들었다. 어제까지는 꼭 바보 천치의 상태였던 것처럼.


그제야 조리원에서 들었던 나머지 얘기가 떠올랐다.


“아기마다 다르니까, 아기한테 맞는 온도를 찾아주셔야 해요.”


그제서야 기가 막혔다.


아기가 컴퓨터도 아닌데, ‘정확히 유지해야 하는 온도’라는 것이 있을 거라고 믿었던 내가.


그리고 다시 막막해졌다.


그런 게 없다면 난 이제 어떻게 판단하며 육아를 해나가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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