²⁰²³⁰⁷⁰⁶ 요가일기 dαч13
이전 글이 6월 19일이었으니 근 3주 만이다. 여러 일이 있었고 안 가다 보니 또 뭉그적거리게 되었다. 등록한 수강권이 7월 말에 끝나게 되니 재수강 혜택 알림이 뜨고 비싼 요가를 그만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하고 있었다. 오늘은 정말 요가를 가야지 다짐하며 유치원을 등원한 후 우연히 평소 친했던 아이 친구 엄마를 만났다. 어제 내가 어떤 영감을 얻었고 어떤 사건이 있었는지에 대해 열렬히 이야기하다 보니 요가 시간에 가까워지고 에이 - 가지 말까 하는 마음이 들다가 여차 시간이 맞아 급하게 요가원에 들어갔다.
매트에 눕자마자 알았다.
요가의 힘을. 명상의 힘을. 우리에게 잠시 멈춤이 필요한 이유를.
근 3주 동안 잊었던 나를 되돌아보며 웃음을 머금었다.
매트에 몸을 뉘고 눈을 감자마자 여러 방향으로 흩어져있던 생각 조각이 맞춰졌다. 잠시 멈추지 않았던 그 시간 동안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니 놀라웠다. 말을 하고 육아를 하고 강의를 듣는 동안 정작 나는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고 어떤 것을 깨닫고 있는지 몰랐던 거다. 조용히 요가원의 하얗고 높은 천장을 바라봤을 뿐인데 모든 생각 조각이 날아와 테트리스처럼 정리되는 현상이 마음에서 보였다.
어제 딸과 함께 박물관에서 하는 옹기 원데이 클래스를 다녀왔다. 6 - 7세 아이들이 작은 손으로 조물조물 옹기 접시를 만드는 수업이었는데 우리 딸은 의외로 도와주지 않아도 스스로 잘 해내서 나는 가만히 앉아 다른 친구들과 엄마들의 모습을 관찰할 수 있었다. 크게 무언가를 배우고 신나는 시간이라기보다 즐겁게 보내고 와서 좋았다. 그게 끝이다.
요가를 시작하는 순간 옹기 클래스와 그날 오전에 만난 귀한 시간이 떠올랐다. 삶은 옹기를 만드는 과정과 닮았다. 누굴 만나 어떤 시간을 경험하느냐 어떠한 공간을 만들어내느냐, 스펀지로 얼마나 매끄럽게 구멍을 매우느냐 어떤 손길로 어떠한 형태를 만드느냐에 따라 매력적인 옹기가 탄생한다. 조금만 깊이 모양을 내도 태양 아래 말려도 옹기는 구멍 나고 망가지기 마련이다.
사는 게 점점 재밌어진다. 요즘 내가 자주 하는 말이다. 즐거운 일이 많아서 재밌는 게 아니라 나를 둘러싼 사물이든 상황이든 뭐든 간에 그 본질이 같음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내 주변엔 슬픈 일들이,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많이 일어난다. 나만 열심히 살면 되는 시절이 그리울 정도로 혼자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이 늘 벌어진다. 차도 한가운데 있는 듯, 나만 정신 똑바로 차린다고 사고가 나지 않는 건 아니다. 완벽히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헤쳐나가고 있다. 극복이라는 단어는 좋아하지 않는다. 사건의 경중에 따라 다르겠지만 인간에게 극복은 너무 가혹하다. 극복이 아니라 그 상황을 그저 묵묵히 걸어 나가는 것뿐이다.
내가 살면서 만들어가는 옹기는 부드럽고 매끈한 형태를 갖추고 있다. 우연하게 또는 오랜 시간 만나 곁에서 영감을 주는 사람들의 색을 하나씩 얹어 나름 멋진 옹기가 되어가고 있다. 물론 잠시 한눈을 팔거나 누군가 툭 건드려 형태가 흐트러질 때도 있지만 가지런한 손길로 내가 원하는 형태로 만들어가고 있다. 너무 부서져서 망가진다면 흙을 떼어와 붙이면 되고 너무 텁텁하고 굳어서 못쓸 거 같으면 물을 조금 묻혀 조무리면 된다. 그렇게 나는 나만의 옹기를 만들고 있다.
그런데 이 옹기는 잠시 멈출 때만 보이는 마법의 옹기니 요가는 계속할 수밖에 없겠다. 요가 수업 한 시간이 지나고 매트에서 눈을 뜨니 하얗고 높은 천장에 바다 물결이 흘렀다. 물론 순간적인 섬광 현상이지만 내겐 눈부시게 아름다운 태양 빛이 비치는 파란 바다 물결이었다. 잠시 푸른 바다를 건너 저 멀리 나가 시원한 바람내음을 맡으며 옹기를 만들고 다시 여유롭게 돌아왔다. 내게 큰 힘을 주는 플레이맘 언니들, 사랑할 수 있는 남편과 딸, 묵묵하게 이야기를 들어주고 슬픔을 공감해 주는 유치원 가자 친구들이 있어 감사한 아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