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크 Jan 07. 2025

띠동갑 동생을 인생의 롤모델로 삼았습니다 -2

카페에 앉아 커피가 나오자마자 저는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꺼냈습니다.


"주임님. 업무 이야기가 아니고 사담에 가까운 이야기 때문에 바쁘신 시간 뺏어서 죄송하기는 한데 너무 궁금한 게 있었어요"


"궁금한 거요?? 저한테요?"


"네.. 근래 주임님이 일하시는 거나 행동하시는 걸 지켜봤는데요. 뭔가 좀 일반적인 사람들과 달라 보여서요"


너무 진지하게 말하는 저를 보고 주임님은 크게 웃었습니다.


"아니.. 저는 좀 진지하게 여쭙고 싶은 게.. 저는 대인관계도 엄청 매끄러운 편도 아니고 누가 나서서 찾는 편도 아니고 인생도 막 에너지 넘치게 살고 있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데.. 주임님은 아니신 것 같아서요. 그 마인드도 궁금하고 비결도 궁금하고 그러네요"


저의 말에 비로소 주임님의 표정도 조금 진지해졌습니다.


"PD님도 충분히 잘하시는 것 같아요. 과장님도 엄청 좋아하시고 스튜디오에 있는 쇼호스트분들도 PD님 칭찬 많이 하던걸요"


"제가 태생적으로 속도 좁고 남한테 피해받는 것도 싫어하고 계산적인 것도 있는데.. 회사에서는 적응하려고 엄청나게 정신 에너지를 쓰고 있는 거예요. 주임님은 외부 직원이시고 방문하신 지도 얼마 안 되었는데 저보다 스튜디오 직원분들이랑 더 친하시고 늘 밝아 보이시는데 어떻게 그런 거예요? "


파트너사의 직원 그것도 한참 어린 직원에게 너무 사적이고 진지한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지만 속사포 같이 이야기를 쏟아냈습니다.


"제가 원래 인사하는 걸 좋아해요. 누가 받아주든 말든 인사하는게 너무 좋아요. 저는 사실 스펙도 별 볼 일 없었는데 면접날 회사 경비원분한테 인사를 했는데 알고보니까 10년간 근무했는데 아무도 아는 척 안하던 그런 분이었다고 하더라고요. 사장님이 그것 좋게 봐주셔서 합격한 것 같아요. 여기 스튜디오에서도 저는 항상 인사를 잘하는데 그래서 아닐까요?"


회사에서 인사를 소극적으로 하거나 특히 후배나 직급이 낮은 직원이 먼저 나에게 인사를 하나 안 하나를 신경 쓰고 있던 저는 절로 고개가 숙여졌습니다.


주임님은 제 표정을 살피다 손사래를 치며 말했습니다.


"제가 뭐라고 PD님께 무슨 가르침을 드리겠어요. 그냥 어떤 상황을 제시해 주시면 저라면 어떻게 대응하는지 한번 말해보면 어떨까요? "


"제가 밤 방송이 많다 보니 이른 아침에 자고 있는 경우도 있는데 윗집에서 청소기를 매일 돌리거든요. 그 소리가 시끄러워서 깬 적이 많아서 엄청 화가 나요"


"음.. 저라면 부직포랑 물걸레 청소용품인가요? 여기서도 판매하시던데. 그거 한 세트 사서 올라가서 선물드리든지 할 것 같은데요? 혹시 오전에는 이걸로 청소해주실 수 있는지 여쭤보면서요"


실제로는 얼마 전 윗집에 올라가서 항의를 했던 저였기에 부끄러운 감정이 들었습니다.


"제가 운동하러 가면 기구 사용법이나 이런 걸 물어보는 분이 계세요. 몇 번 그러니까 좀 부담스럽기도 하고 귀찮기도 하더라고요"


"제가 집 앞 공원에서 거의 매일 운동을 하는데 얼마 전에 당근에 근처 사는 어떤 학생이 운동 가르쳐 줄 분 있으면 사례하겠다 글을 올렸더라고요. 제가 연락해서 사례 안 해도 되니 공원 와서 같이 운동하자 그랬어요. 자세 봐주면서 저도 새롭게 공부도 할 수 있고 안 심심하고 그 친구 덕분에 저도 운동 안 빼먹게 되고 좋더라고요"


실제로는 마주치기 싫어서 운동 시간대를 바꿔버린 제 얼굴은 빨갛게 물들었습니다.


"최근에 저희 회식할 때 막 저희가 다른 회사 험담도 하고 출연자 험담도 하고 그랬는데 주임님은 대화에 참여를 안 하시더라고요. 그것도 일부러 그러시는 거죠?"


"험담을 하다 보면 좀 공허해지고 괜히 그 사람 귀에 들어갈까 신경 쓰이잖아요. 그게 싫기도 하고 좀 더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싫은 사람이 크게 없기도 하고요. 소중한 시간이고 소중한 제 감정인데 의미없이 해결도 안 될 나쁜 감정이 저를 지배하게 둘 수는 없죠"


모두까기의 대명사 같던 저는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이제 후배들이 좀 있다 보니까 막내 업무나 잡일 같은 건 후배들이 해줬으면 하는데 가끔 모른 척할 때 얄밉더라고요. 어제도 사무실 책상 청소 있었는데 한 후배가 자꾸 통화하면서 나가서 좀 화가 났어요"


"제 성격 자체가 남들 돕거나 나서는 것에서 즐거움을 느껴서 뭐라고 말씀드려야 할지 모르겠네요. 괜히 미워하고 부정적인 마음에 휩싸이는 것보다는 제가 나서서 하면 즐겁고 보람도 차고 그게 더 낫지 않나 하는게 일상이 되었나봐요. 저희 새벽 방송하면 4시 30분에는 다 일어나야 하는데 혹시 못 일어나는 분 있을까 봐 제가 3시 30분에 일어나서 출근 준비하고 전부 모닝콜 드리거든요. 어쩌다 한분이 저 아니었으면 지각이었다고 고맙다고 말하는게 그런게 즐거워요"


"혹시.. 계속 그렇게 하시면 손해 본다는 생각은 안 드세요? 저도 잘해주는 사람들이나 친구들이 있는데 가끔 호구 같은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러다 보니 자꾸 상대방은 나한테 뭘 해주지라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


"일단 저는 제가 좋아서 하는 것들이라 손해라는 생각이 안 들어서요. 청소하는 거나 인사하는 거, 도와드리는 거 전부 순수히 제 만족을 위해 하는 거라서 딱히.. 그리고 설사 이용해먹자 그런 의도로 접근하는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그보다 훨씬 많은, 좋은 분들이 다가오셔서 저는 손해라고 생각 안 해요. 주변에 좋은 분들이 진짜 많기도 하고 그런 분들이 소개해준 또 좋은 분들 그리고 먼저 다가와주시는 좋은 분들이 있어서 저는 주변에 좋은 분들이 넘친다고 생각하거든요. 오늘만 해도 PD님 같은 분이 갑자기 보자고 하셔서 예상치 못한 이런 이야기하고 있는 거니까요"


저의 수많은 질문에 1초의 고민도 없이 대답하는 주임님의 모습에서 꾸밈이나 거짓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좀 지난 일이라 그때의 대화가 모두 기억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 대답 하나하나가 저를 되돌아보게 만들었고 띠동갑 차이가 나는 분이었지만 참 본받을만한 삶의 태도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날 밤 주임님으로부터 메시지가 하나 왔습니다.


"PD님 혹시나 해서 늦은 밤 연락드립니다. 아까 갑자기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하신 것에 놀랐고 말씀해 주신 것들에 한번 더 놀랐어요. 좋은 회사에서 좋은 평판을 받고 계신 분이 그런 깊은 고민을 하시고 한참 어린 저한테 아무런 거리낌 없이 조언을 구하시는 모습이 저에게 참 특별해 보였습니다. 인생을 사는데 정답은 없고 사람마다 맞는 옷도 다르다고 생각해요. 혹시나 제가 PD님 눈에 괜찮은 사람으로 비쳤다고 저처럼 행동하면서 PD님만의 매력을 잃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마무리까지 뭐 하나 흠잡을 데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실제 주임님과의 대화 이후로 제가 많이 변하기는 했습니다. 여전히 어렵기는 하지만 나의 이익과 손해를 칼같이 계산하고 행동하기보다는 주고받는 기쁨을 예전보다 많이 느끼게 되었습니다. 


특히 회사에서 무색무취한 직원이었던 저는 부정적인 감정을 최대한 버리고 솔선수범과 적극적인 태도를 통해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날 한 시간 남짓한 주임님과의 대화로 많은 삶의 지혜를 얻었습니다. 회사 업무를 하며 이런 귀인을 만난 것도 참 행운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글을 쓰며 오랜만에 연락을 해봤습니다. 여전히 밝은 목소리로 최근에는 수영을 하며 수영반에서 만난 분들과 이런 저런 일을 상부상조하면서 친하게 지내고 있고 다 마음에 드는 분들이라 감사하다는 이야기를 전해주었습니다.


이제 갓 서른이 될 주임님은 분명 인생에서 성공을 할 것입니다. 

평생 매일 일이 잘 풀릴 수는 없겠지만 인생의 역경과 고민도 그의 긍정적이고 열정적이고 감사하는 태도 앞에서 그 존재감을 크게 뽐내지는 못하겠죠.  


좋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서 행복한 삶을 살, 저의 롤모델 중 하나인 주임님을 오늘도 응원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