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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크 Dec 16. 2019

홈쇼핑 채널에 숨겨진 비밀

홈쇼핑과 송출수수료에 대하여.

홈쇼핑 회사에게 TV 채널은 왜 중요한 걸까.


최근 한 홈쇼핑사와 IPTV 회사 간 송출수수료 분쟁이 사실상 IPTV 회사의 승리로 끝났다는 기사를 접했다. 

기존 황금 채널을 쓰던 홈쇼핑 업체가 송출수수료를 과도하게 부담하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20번대 후반의 채널로 옮겨가기로 한 것이다.


송출수수료는 방송사들이 케이블·위성·IPTV사업자 등의 유료방송사업자들에게 내는 채널 사용료인데 매년 각 회사 간 협상을 통해 수수료 규모와 채널 번호를 결정한다. 2018년 국내 13개 일반 홈쇼핑·데이터 홈쇼핑업체가 97개 유료방송사업자들에게 지급한 송출수수료는 총 1조 6천337억 원이다. 2012년에 비해 2배 상승했고 2017년에 비해 18% 가까이 상승했다. 이는 2017년 홈쇼핑 업체들의 매출 증가율 12%를 뛰어넘는 상승 치이다.


홈쇼핑의 숙원사업이 바로 이 송출수수료를 인하하는 것이고 그래서 정부와 정치권에 매년 호소하고 있지만 눈에 띄는 변화는 없다. 혹자는 '그러면 수수료가 낮은 뒷 채널로 가면 될 것 아닌가' 하겠지만 여기에는 홈쇼핑 회사의 복잡한 사정이 있다.


보통 공중파 채널 사이에 있는 채널 번호를 S급 / 공중파 앞뒤에 있는 채널 번호를 A급으로 분류한다. 이 5개 번호를 차지하게 위해 홈쇼핑사들은 치열하게 경쟁하고 높은 수수료를 감수한다. 왜 그럴까?


홈쇼핑 업계에는 '생방송 매출의 절반 이상은 SB 때 나온다'는 속설이 있다. SB는 'Station Break'의 약자로 공중파 프로그램 하나가 끝나고 다음 프로그램이 시작하기 전 광고 타임을 지칭한다.

공중파 프로그램 하나가 끝나게 되면 대부분의 시청자들은 멍하게 광고를 보지 않는다. 채널을 옮기며 다음 시청 프로그램을 찾기 마련인데 직접 번호를 찍어서 이동하는 시청자들 외에는 위 혹은 아래로 채널을 옮기며 볼만한 프로그램을 탐색하는데 이때 공중파 채널들 사이에 껴있던 홈쇼핑 채널을 보게 되는 것이다. 잠깐 홈쇼핑이나 봐볼까 하다가 흥미가 생기고 정신없이 보다가 나도 모르게 구매에까지 이르는 것. 이것이 20년이 넘는 홈쇼핑사들의 주요 매출 창구이다.


정말 홈쇼핑 PD로서 이 SB의 위력을 매일같이 체감하고 있는데 SB가 오기 전 지지부진한 매출을 하고 있던 방송이 이 SB가 진행되는 동안 주문이 몰려 가볍게 목표를 달성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한때 큰 화제였던 드라마 '도깨비'의 마지막화가 방영되는 동안 방송을 한 적이 있다. 정말 포기하고 부조정실을 뛰쳐나가고 싶었을 정도로 홈쇼핑을 보는 이도, 물건을 사는 이도 없었다. 방송을 50분 가까이했지만 매출 목표의 20%도 채 못한 상황. 이때 도깨비 드라마가 끝이 났고 도깨비를 시청했던 수많은 시청자들의 채널 이동이 시작되었다. 드라마가 방영되던 동안 주문하던 고객들의 10배가 넘는 고객들이 갑자기 몰렸고 남은 10분 동안 목표의 80%를 달성하며 전체 매출 목표 100%를 달성할 수 있었다. 극단적인 예였지만 평일 밤, 주말의 SB는 정말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고객들을 몰고 다닌다. 그래서 PD도 호스트도 방송을 하면서도 늘 공중파 SB에 신경이 곤두서 있고 대부분의 홈쇼핑에서 공중파의 SB가 올 때쯤이면 영상을 흘려보내며 SB가 시작되는 그 순간 호스트의 PT가 시작할 수 있게 준비한다. 공중파 프로그램의 다음 화 예고나 제작진 자막이 흐를때쯤이며 PD는 물론이고 호스트, 스탭들까지 극도록 긴장을 한다. 마치 출발 신호를 기다리며 미친 듯이 엔진 소리를 뿜어내는 레이싱카와 같다. SB가 시작되면 그날 방송 중 호스트 최고의 멘트와 눈길을 끄는 시연, 잘 만들어진 영상들이 모조리 투입된다. 그러면 SB가 오기 전 주문 고객의 몇 배가 되는 고객들이 몰리며 매출 목표를 달성한다. 공중파 프로그램을 보고 채널을 돌리다 보면 유독 열정적으로 홈쇼핑 호스트들이 방송하는 모습들을 보게 되는 것이 바로 이 SB 때마저 고객들에게 외면을 받으면 그날 방송 매출은 처참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다 보니 홈쇼핑사들은 유료방송사업자들이 높은 송출수수료를 요구해도 그 비용을 감수하며 좋은 채널에 들어가려고 기를 쓸 수밖에 없다. 


얼마 전 모 홈쇼핑이 송출수수료 절감을 위해 공중파와의 접점이 전혀 없는 30번대 채널로 옮긴 후 매출이 30% 이상 급감하여 울며 겨자 먹기로 다시 앞 채널로 복귀한 해프닝이 있었다. 매출에 미치는 막대한 영향력, 예전에 비해 곱절 이상 늘어난 홈쇼핑 회사 수라는 상황들이 맞물려 송출수수료는 끝이 모르게 치솟고 있다. 물론 유료방송사업자들은 나름의 이유로 그 수수료를 받는 것이고 그들이 과도하게 송출 수수료를 요구한다기보다는 현재 시장의 구조가 그렇다. 그리고 이 송출수수료가 협력사들의 판매 수수료에 전가되거나 하는 것 역시 아님을 확실히 밝혀두고 싶다. 


홈쇼핑은 매년 송출수수료에 대해 과도하다고 이야기를 하면서도 다른 방법 역시 모색하고 있다. 송출수수료가 들지 않는 모바일 사업을 강화하는 시도가 바로 그것이다. 모든 홈쇼핑이 현재 모바일 방송이나 컨텐츠를 통한 V 커머스를 시도하고 있고 언젠가는 TV 방송보다 이 모바일 방송이나 컨텐츠의 비중을 더 높이려는 계획 역시 가지고 있다. 송출 수수료의 나비효과가 현재 하루에도 몇 번씩 하는 홈쇼핑 회사들의 모바일 방송인 것이다. 황금 채널들을 차지하기 위한 홈쇼핑 회사들의 치열한 경쟁이 이 모바일 방송들의 활성화로 자연스럽게 완화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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