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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크 Apr 30. 2019

최초 공개! 베일에 싸인 홈쇼핑 PD의 삶

연중무휴 하루 20시간의 생방송과 4시간의 재방송


TV 홈쇼핑은 언제나 방송을 하고 있다. 낮밤 가리지 않고 평일 휴일 가리지 않고 늘 시청자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새벽 6시부터 다음날 새벽 2시까지 하루 20시간의 생방송과 4시간의 재방송을 일주일 내내 송출합니다.

명절이나 연휴도 예외는 아닙니다. 늘 누군가는 방송을 위해 회사에 있다는 뜻입니다.

이런 환경에서 방송의 필수 요소인 PD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요?

이 글은 홈쇼핑 PD들의 근무환경이 열악하다거나 힘들다는 것을 이야기하고자 함이 아닙니다.

단지 24시간 방송이 송출되는 회사에서 PD라는 직원들은 어떻게 생활을 하는지를 소개하고 싶은 글입니다.


사무실에 사람이 없다.


신입사원으로 첫 출근하던 날 저는, TV에서 보여주는 전형적인 회사의 모습, 꽉 들어찬 사무실에서 정신없이 돌아가는 업무 환경을 기대(?)했었습니다.

하지만 이게 웬걸. 9시가 지나도 사무실 여기저기 빈자리는 채워지지 않았고 출근을 했던 PD들 역시 몇몇은 곧 자리를 비웠습니다.

먼저 PD들은 PD들끼리 일을 하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다. 주로 각 방송을 같이 할 스탭들, 쇼핑호스트, MD 등과 일을 하기 때문에 대부분 사무실보다는 회의실 혹은 스튜디오 등에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직업 특성상 늦은 밤, 이른 새벽 방송 스케줄인 있는 PD는 그 스케줄에 따라 출근을 하기 때문에 사무실이 시끌벅적하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전날 새벽 2시에 방송이 끝난 PD는 굳이 9시까지 출근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리고 새벽 6시 방송을 위해 4시에 출근한 PD는 점심시간 이후 바로 퇴근해도 됩니다.

순진했던 저는 '9시 출근을 안 해도 된다니! 이거 좋은걸?' 하며 얼른 입봉을 하여 방송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납니다. 물론 자신의 방송을 시작한다는 것이 진정한 고생의 시작임을 모르고.


내 스케줄은 일정 수준 포기


홈쇼핑 PD로 일하면서 생긴 가장 큰 변화는 불규칙한 스케줄과 생활리듬이었습니다.

내 방송이라는 것이 늘 아침 11시, 밤 8시 이렇게 규칙적으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담당하는 아이템에 따라 새벽 6시에 방송을 하기도 하고 저녁 7시에 방송을 하는 등 매우 불규칙합니다.

지금은 익숙해졌지만 어떤 날은 새벽 6시에 출근을 해서 오후 2시에 퇴근하고 어떤 날은 오후 5시에 출근해서 새벽 2시에 퇴근하는 불규칙한 스케줄로 생활을 하면 아무래도 몸에서 신호가 옵니다.

입봉 한 PD들은 예외 없이 몇 달간은 몸 어딘가가 아프다는 얘기를 달고 삽니다.

또한 불규칙한 스케줄은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방송 스케줄 대부분은 최소 일주일 전에 확정이 됩니다. 하지만 종종 급한 스케줄 변경이 있는 경우가 있는데 갑작스러운 저녁 방송 배정으로 미리 잡아놓은 약속을 취소하는 경우도 있고 방송이 있어서 시간을 비워놓았는데 갑자기 방송이 취소되어서 급하게 약속을 다시 잡는 경우도 있습니다. 꼭 갑작스러운 스케줄 변경이 아니더라도 홈쇼핑 PD들은 주말, 연휴, 명절 등도 어김없이 방송을 해야 하기 때문에 하루 정도 쉬고 하루 방송하는 스케줄에 익숙합니다.

홈쇼핑 PD들이 1년 중 3일 이상을 마음 놓고 쉬는 시기는 여름휴가 뿐입니다.


내 월급은 나도 몰라


일반적인 회사에서도 일부 편차가 있겠지만 월급이 매달 대부분 비슷합니다(라고 저는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홈쇼핑 PD로서 10년 정도 일을 하면서 똑같은 월급은 받아본 달이 단하나도 없습니다.

매달 진행하는 밤 방송, 휴일 방송 수에 따라 월급이 달라집니다. 그 달라지는 정도가 몇만 원 수준이 아니라 제일 앞자리가 바뀌는 정도입니다.

월급 명세서에 야근 수당, 휴일 수당 등이 복잡하게 쓰여있어서 우스갯소리로 우리 월급은 도저히 계산이 불가능하고 그냥 인사팀에서 주는 대로 받는 거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수당을 안 받고 삶의 질을 높일 것인가 삶의 질을 다소 포기하고 월급을 높일 것인가는 홈쇼핑 PD라는 누구나 겪는 딜레마 중 하나 일 것입니다(물론 방송 배정은 윗선에서 결정되기에 일개 PD가 결정할 수 없습니다)


스케줄 근무의 웃픈 현실


불규칙하고 쉬는 날 없이 방송이 있는 스케줄 근무를 하다 보면 웃지 못한 상황이 많이 발생합니다.

사람이 하는 일이다 보니 스케줄 근무라는 것은 곧 스케줄 펑크의 리스크라는 것이 공존한다는 의미입니다.

보통 홈쇼핑 PD들이 펑크를 내는 경우는 새벽 방송이 대부분인데 미처 일찍 일어나지 못해서 발생합니다.

나름 매뉴얼이 있어서 담당 PD가 일정 시간까지 출근을 안 하면 상주인원이 PD에게 연락을 하고 연락이 안 될 경우 즉시 회사 인근에 거주하는 PD가 대타로 방송을 합니다. 회사 인근에 살고 있는 저 역시 새벽 4~5시경 대타 전화를 꽤나 받아봤습니다.

방송 펑크라는 것이 회사 입장에서는 굉장히 심각한 것이기 때문에 PD에게는 중징계가 내려집니다.

실제 방송 펑크를 냈던 한 PD는 질병, 감기약 등의 갖은 변명을 했음에도 징계를 피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펑크를 내본 PD는 물론이고 모든 PD들이 새벽 방송이 배정되면 펑크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잠을 설칩니다. 선잠이 들어도 펑크 내는 꿈을 꾸다가 일어납니다.



누군가 저에게 홈쇼핑 PD일이 재미있느냐고 물어본다면 망설임 없이 그렇다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불규칙한 스케줄, 매출  스트레스, 사람들을 다루는 것이 가끔 힘들 때도 있지만 보람 있고 재미있을 때가 훨씬 많습니다. 지인들은 주말에도 명절에도 크리스마스 때도 방송을 하러 출근한다는 제 얘기를 들을 때마다 힘들겠다고 이야기하지만 어디 남의 돈 받는 일 중에 쉬운 일이 있을까요.

새벽잠 설치고 나와서 방송을 해도 매출 100%를 보면 피로가 씻은 듯이 사라지는 홈쇼핑 PD들 모두 파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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