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 팝업 스토어라는 큰 전쟁터가 있다면 우리에겐 또 다른 작은 전쟁터가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자사몰 온라인 판매였다.
백화점 물량을 대기도 벅찼기에 온라인에는 하루에 딱 50개, 많으면 100개 정도만 소심하게 재고를 열어두었다. 그런데 이 소량의 재고가 매일 오전이면 거짓말처럼 '품절'로 바뀌었다.
"오늘 온라인 거 벌써 다 나갔는데?"
"진짜? 아직 점심시간도 안 됐는데?"
늦은 점심을 먹고 사무실 한쪽에 쭈그려 앉아 송장을 붙이고 박스 테이프를 뜯는 그 시간이, 몸은 고돼도 마음은 참 달았다.
밤새 올라온 고객들의 장문 리뷰를 읽을 때면 손목에 붙인 파스의 화끈거림도 잊혀졌다.
'구하기 너무 힘들어요ㅠ 그래도 기다린 보람이 있네요. 진짜 인생 두쫀쿠!'
이 한 줄의 리뷰가 우리의 피로회복제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는 순진하게 믿었다. 우리가 흘린 땀방울만큼 정직하게 성장하고 있다고.
어느 날부턴가 자사몰 문의 코너에 '협업 제안'이라는 제목의 메시지들이 폭포수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바야흐로 공구의 시대가 우리에게도 도래한 것이다.
처음엔 신기했다. 유명하다는 인플루언서들이 우리 두쫀쿠를 알아봐 주다니. 하지만 제안서를 열어볼수록 기가 막힌 내용들이 태반이었다.
"샘플은 필요 없고요, 당장 내일 공구 오픈합시다. 저 믿죠?" (누구신데요?)
"저희가 한 번에 몇만 개까지 팔아드릴 수 있는데, 생산 감당되시겠어요?" (아니요, 안 됩니다)
"일단 샘플 좀 종류별로 넉넉히 보내주세요. 먹어보고 결정할게요" (그러고는 연락 두절. 일명 '샘플 먹튀')
별의별 사람들을 다 겪다 보니 피로감이 몰려왔다. 사무실에서는 격론이 벌어졌다.
"굳이 공구를 해야 할까? 지금도 없어서 못 파는 지경인데, 수수료 떼주고 할인까지 해가면서 우리가 아쉬운 소리 할 필요 없잖아. 괜히 브랜드 이미지만 소모되는 거 아닐까?"
보수적인 동료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하지만 마케팅을 담당하는 다른 동료의 눈빛은 달랐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지. 온라인은 결국 노출 싸움이야. 인플루언서 한 방이면 홍보 효과가 얼만데? 어차피 팔리는 거, 이참에 확실하게 대세로 굳혀야지"
나도 며칠 밤을 고민했다. 결국 우리는 우리를 재촉하지 않고, 우리 제품에 진심을 보여준 업체 딱 한 곳하고만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첫 번째 인플루언서와의 공구 날이 밝았다. 우리가 준비한 수량은 3일 동안 판매할 요량으로 넉넉히 잡은 500개였다.
오전 10시. 공구 오픈 알림이 울렸다. 우리는 모니터 앞에 모여 새로고침 버튼을 눌렀다.
"자, 시작했다. 서버 터지는 거 아니겠지?"
"에이, 설마. 3일 동안 파는 건데 천천히 나가겠..."
동료의 말이 끝나기도 전이었다.
"어? 재고가 이상한데?"
"왜? 오류 났어?"
"아니... 0인데?"
시계를 봤다. 10시 10분. 고작 10분이 지났을 뿐이었다. 3일 치 물량 500개가 10분 만에 증발했다.
전화벨이 미친 듯이 울리기 시작했다. 공구 업체 대표였다.
"대표님! 이거 무슨 일이에요? 저도 지금 너무 놀라서... 혹시 물량 더 없으세요? 지금 댓글창 난리 났어요!"
"저희가 백화점 빼둔 거 급히 돌리면... 500개 정도는 어떻게든 맞출 수 있을 것 같은데..."
"네네! 당장 열어주세요! 빨리요!"
우리는 허둥지둥 백화점으로 보낼 재고를 온라인으로 돌렸다. 500개 추가 오픈.
그리고 정확히 10분 뒤인 10시 20분.
"대표님... 그것도 다 나갔는데요..."
등골이 서늘해졌다. 기쁨보다는 공포가 앞섰다. 이건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속도가 아니었다.
"안 되겠다. 이러다 사고 나. 당장 상세페이지에 '순차 배송' 공지 크게 띄워. 그리고 딱 500개만 더 열고 무조건 막아. 더 받으면 우리 진짜 죽어"
결국 10시 30분, 총 1,500개의 주문을 끝으로 우리는 황급히 '전량 매진' 배너를 걸어야 했다. 3일 예정이었던 공구는 30분 만에 강제 종료되었다.
그날 이후, 우리의 사무실 풍경은 완전히 바뀌었다. 3일 간격으로 다른 인플루언서들의 공구가 진행되었고, 결과는 늘 같았다. '첫날 오픈런 매진'.
공구의 장점은 면확했다. 판매가는 낮아져 마진은 줄었지만, 백화점과 달리 정산이 빨라 현금이 도는 속도가 달랐다. 통장에 찍히는 두둑한 숫자 덕에 우리는 재료를 구하고 인건비를 지급할 수 있었다.
또 같이 열어둔 기존 가격 상품도 덩달아 매진이 되었다. 손 하나 까딱 안하고 홍보 효과를 얻은 것이었다.
소문이 돌았는지 인플루언서가 직접 연락을 해오기도 하고 말만 들어도 알만한 유튜브 크리에이터 MCN에서도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그때는 몰랐다. 온라인으로 본격적인 판매가 시작되면 얼마나 피곤하고 할 일이 많을지.
그저 기뻐하며 장미빛 미래만 꿈꾸고 있었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