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돈 버는 건 소꿉장난이 아니다

by 지크

하루 50개, 많아야 100개. 지금 와서 돌아보면 그때는 참 행복한 '소꿉장난'을 하고 있었다.


"와, 오늘도 다 나갔네?"


"어제 '너무 맛있어서 기절' 고객 리뷰 봤어?"


"어어. 아오 피로가 싹 가신다"


그때의 포장은 노동이 아니라, 팬들에게 보내는 팬레터 답장 같은 거였다.


그런데 판매 단위가 '만 개'를 넘어서자, 상황은 180도 달라졌다. 그건 더 이상 소꿉장난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전쟁이었다. 그리고 그 전쟁터 한복판에서, 우리는 화려한 '완판' 뒤에 숨겨진 온라인의 민낯을 마주하게 되었다.


"사장님! 송장 프린터 또 씹혔어요!"


"아... 제발. 오늘만 세 번째야. 일단 껐다 켜봐요"


전쟁의 서막은 사무실 기자재들의 반란이었다. 하루에 수천 장씩 송장을 토해내던 프린터가 결국 파업을 선언했다. 잼이 걸린 용지를 빼내느라 허비하는 시간만 하루에 한두 시간. 그사이 배송을 기다리는 상자들은 천장까지 쌓여만 갔다.


그뿐인가. 박스 테이프는 물 쓰듯 사라졌고, 완충재는 산처럼 쌓아놔도 금세 바닥을 드러냈다. 밀려드는 물량을 감당하려 급하게 포장 알바님들을 모셨더니, 매출은 늘었는데 통장에 남는 돈은 오히려 줄어드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많이 팔면 남는 게 없다'는 자영업 괴담이 내 현실이 될 줄이야.


하지만 이건 몸이 힘든 문제였다. 진짜 문제는 멘탈을 뒤흔드는 곳에서 터져 나왔다.

백화점 매장에서는 고객님과 눈을 맞추고 대화한다. 제품에 대해 설명하고, 혹시 모를 불편 사항을 바로 해결할 수 있다. 그런데 얼굴 없는 비대면 온라인 세상은 전혀 다른 차원의 공간이었다. 백화점에서는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상상을 초월하는 요청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어느 날, 한 고객에게서 격앙된 항의 메세지가 왔다.

"저기요 사장님. 제가 두쫀쿠를 받았는데요. 당장 환불해주세요"


"네, 고객님. 혹시 제품에 어떤 문제가 있었을까요? 파손되었나요?"


나는 잔뜩 긴장했다. 택배사가 물건을 던지는 바람에 케이스가 벗겨져 도착했다는 클레임을 이미 몇 건 처리한 터였다. 그런데 돌아온 대답은 내 예상을 완전히 빗나갔다.


"아니요, 안 깨졌는데요. 근데 스프레드 색깔이 마음에 안 들어요"


"...네? 색깔이요?"


"네. 제가 생각했던 그 영롱한 초록색이 아니잖아요. 좀 칙칙한데? 이거 못 먹겠으니까 환불해줘요"


피스타치오 원물 상태에 따라 미세하게 색이 달라질 수 있다는 설명을 아무리 해도 소용없었다. 그분에게 중요한 건 '내 마음에 안 든다'는 사실뿐이었다.


이건 약과였다.

"코코아 가루가 식탁에 너무 많이 떨어졌어요. 치우기 짜증 나니까 반품할래요"


"제가 이사를 했는데 예전 주소로 보냈네요? 제가 예전 주소로 주문하긴 했는데 뭐 어쨌든 저는 결제했으니까 새 주소로 다시 보내주세요. 거기로 간 건 사장님이 알아서 회수하시고요"


가장 황당했던 건 '리뷰 요정' 고객님이었다.


"구매확정 눌렀지만 환불해주세요"


"고객님, 시스템상 구매확정을 누르시면 환불 처리가 어렵습니다. 제품에 문제가..."


"네네. 맛보니까 제 스타일 아니어서 꼭 리뷰를 쓰고 싶어서 구매확정 눌렀어요. 환불해주세요. 안 해주시면 저 어디 가서 말 안 좋게 할 수도 있어요"


기가 막혔다. 처음에는 원칙대로 설명하고 설득하려 했다. 하지만 모니터 뒤에 숨은 그들의 집요함을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결국 나는 백기를 들었다.


"네, 고객님. 환불 처리 도와드리겠습니다"


어느덧 묻고 따지지도 않고 기계적인 메세지를 보내기 시작했다.


하나하나 따지고 싸우는 데 드는 시간과 감정 소모, 즉 '정신건강 비용'을 따지면 그냥 환불해주는 게 훨씬 이득이라는 슬픈 결론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너덜너덜해진 멘탈을 부여잡고, 공구를 제안했던 업체 대표님께 전화를 걸었다.


"대표님. 저 진짜 공구 그만하고 싶어요. 많이 파는 거 좋은데, 이러다 제가 먼저 죽겠어요. 진짜 별별 사람들이 다 있다니까요"


나는 그동안 겪었던 황당한 사례들을 속사포처럼 쏟아냈다. 내 하소연을 가만히 듣고 있던 대표님은,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답게 허허 웃으며 말했다.


"사장님, 이제 진짜 온라인 장사 시작하신 거네요"


"네? 이게 진짜 시작이라고요?"


"그럼요. 백화점 고객님들이 양반이죠. 온라인은 원래 그래요. 만 명 중에 한두 명 나오는 그 이상한 분들한테 너무 마음 쓰지 마세요. 그거 하나하나 다 상대하다간 제명에 못 살아요. 그냥 '아, 오늘 액땜했네' 하고 넘기셔야 해요. 그게 롱런하는 비결입니다"


전화를 끊고 멍하니 쌓여있는 택배 상자를 바라봤다. '완판', '매진', '대란템'. 화려한 수식어 뒤에는 고장 난 프린터와, 뜯겨나간 박스 테이프와, 그리고 상처 입은 판매자의 마음이 있었다.


돈 버는 거, 참 쉽지 않다. 사업이 커가는 성장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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