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직구로 신세 망칠뻔 했다

by 지크

앞서 이야기했듯이 두쫀쿠의 열풍은 곧 재료 대란이라는 암초를 만들어냈다. 피스타치오, 카다이프, 마시멜로 같은 핵심 재료들은 국내에서 씨가 말랐고, 부르는 게 값인 상황이 되었다.


그때 내 머릿속을 스친 건 자만심 섞인 아주 위험한 아이디어였다.


"국내 판매하는 사람들도 어차피 다 수입하는거잖아?"


"그치. 차라리 우리가 직구를 해볼까? 중간 마진도 절약하고?"


그날 밤부터 나는 구글 번역기를 친구삼아 글로벌 도매 시장을 항해하기 시작했다. 중국의 알리바바, 튀르키예의 로컬 직구 사이트, 미국의 대형 도매몰까지 전 세계가 나의 쇼핑몰이었다.


가장 급한 건 피스타치오였다. 중국의 대형 도매 사이트에서 'xxx 푸드 테크'라는 거창한 이름의 업체를 찾았는데, 상세 페이지에는 이탈리아산 뺨치는 영롱한 초록빛 페이스트가 흐르고 있었고 "100% 퓨어 너트"라는 문구가 떡하니 있었다. 홀린듯이 100kg을 덜컥 주문했다. 이정도면 국내 어느 업체보다 안정적으로 피스타치오를 확보한다는 생각에 콧노래를 부르며 기다렸다. 일주일이 걸려 택배가 도착했고 뚜껑을 여는 순간, 사무실 전체가 침묵에 빠졌다.


"이거 뭐야?? 방사능 물질이야..?"


그 안에는 헐크가 방사능에 오염되면 나올 법한, 눈이 시릴 정도로 쨍한 형광 네온 그린 색의 괴물질이 들어있었다. 고소함은커녕 문방구에서 파는 본드 풍선 냄새와 싸구려 오이 비누 향이 뒤섞여 코를 찔렀다.


"설마 먹는다고 죽는건 아니겠지? 맛을 볼까..?"


죽지 않겠지 싶어 용기 내어 찍어 먹어봤더니, 완두콩 앙금에 설탕과 페인트를 섞은 듯한 기괴한 맛이 났다. 성분표를 번역해 보니 완두콩 가루 40%에 팜유, 설탕, 그리고 피스타치오 합성 향과 청색 식용색소가 전부였다. 피스타치오는 1g도 안 들어간, 완두콩으로 피스타치오를 연성해 낸 중국의 연금술에 당한 것이었다.


다음 타자는 카다이프였다. 본고장 튀르키예의 '이스탄불 장인 할아버지'가 수제로 만든다며 직접 보내준다는 사람을 찾았다. 그는 진지했고 선금은 20%만 요구했으며 "전통 방식 그대로 자연 건조했다"는 말에 감동하여 톤 단위로 결제를 했다. 바로 배에 실어 보낸다던 카다이프는 갖은 이유로 배송이 늦어졌다.


"배에 싣는 순서가 밀려 오늘은 못 실렸어요. 내일 실릴겁니다"


"지중해가 난리가 나서 배가 못 왔어요. 저도 어쩔 수 없어요"


"빨리 보내려고 비행기를 알아보고 있으니까 조금만 기다리세요"


갖은 변명을 들은 끝에 한 달 만에 도착했다. 박스에서는 중동의 향신료 향인 줄 알았던 쿰쿰한 냄새가 진동했다. 바삭해야 할 면들은 서로 엉겨 붙어 거대한 새 둥지처럼 변해 있었고, '자연 건조'를 너무 오래 했는지 바삭함은커녕 썩은 빗자루처럼 먼지가 되어 바스러졌다. 심지어 면 사이사이에서는 말린 나방 사체와 정체불명의 딱정벌레까지 나왔다. 이걸 버터에 볶았다간 손님들 입천장이 아니라 내 양심이 먼저 찔릴 것 같았다. 판매자에게 상황을 설명했더니 천연 재료와 가공의 증거라며 오히려 큰소리를 쳤다. 당당하게 잔금은 안 받겠다고 하는데 쓰레기를 받고 보낸 20%는..?


마지막 희망이었던 마시멜로는 중국의 거대 캔디 도매상에서 "코스트코보다 싸다"는 말에 혹해 대용량으로 주문했다. 사실 이게 제일 기대가 되었는데 확보할 수 있는 양이 어마해서 다른 비즈니스도 꿈꿀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들여오는 가격이면 국내 판매 가격 50%도 안되거든?"


"그럼 두쫀쿠를 하지말고 이걸 국내에 풀자 최저가에서 10%만 낮춰도 다 팔리지 않을까?"


"직접 만들어 파는 것보다 그게 훨씬 편하고 돈도 되니까. 올해 우리 일이 좀 되려나보다"


하지만 역시나 차일피일 배송이 미뤄지며 거의 3주가 지나 받는 박스 안에는 수천 개의 귀여운 마시멜로 대신, 거대한 하얀 벽돌들이 들어있었다. 녹았다가 다시 굳으면서 분자 구조가 바뀐 건지, 칼도 안 들어가고 망치로 내려치면 망치가 튕겨 나올 정도로 단단한 건축 자재가 되어 있었다. 판매자는 배송 조건은 자기 책임이 아니라며 쿨하게 전화를 끊어버렸다.


아직도 창고에는 지금 중국산 형광 완두콩 본드, 튀르키예산 벌레 먹은 빗자루, 중국산 설탕 시멘트 블록이라는 전 세계의 쓰레기가 모여 있다. 국내 재료상 사장님들이 비싸게 파는 건 폭리가 아니었다. 그분들은 이런 사기꾼들을 걸러내고, 통관 전쟁을 치르고, 품질 검사까지 마친 '검증된 물건'을 파는 수호자들이셨던 것.


K-유통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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