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을 깎을 때마다 드는 생각

by 샤봉

그저 연필일 뿐인데. 요즘은 문득 연필이 사람 인생이랑 참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처음엔 반듯하고 길쭉한 새것으로 태어나 살아가면서 좋은 일도 나쁜 일도 겪으며 조금씩 깎여나가요. 가끔은 삐끗해서, 심이 댕강 잘려나가기도 하죠.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휘어지고, 그렇게 한순간에 모양이 엉망이 됩니다.

하지만 그런 시련이 찾아오면 다시 시작하면 돼요. 마음을 다잡고 다시 깎아요. 그러다 보면 아주 그럴싸하게, 반들반들 예쁘게도 깎여 있어요. 참을성 있게 버텨낸 시간의 흔적일까요.

그러는 사이 흑연가루와 나무 찌꺼기들이 쌓여갑니다. 반대로 연필은 조금씩 사라지고 있다는 거겠죠. 짧아지는 몸통을 바라보다 보면, 나이 든다는 것도 이런 거구나 싶어요. 짧아진 인생만큼이나 그 안에 남긴 흔적들은 점점 더 또렷해집니다.

어느새 몽당연필이 남아요. 연필깍지가 있어야만 쓸 수 있는, 잡히지도 깎이지도 않아 뭉뚱하게 남은 채로. 그 조그만 연필을 바라보다 문득, 마음이 서글퍼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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