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10분 투자로 탐구 주제 줍줍하는 법
고등학교라는 항해가 순조롭게 이뤄지는 데 책은 필수불가결한 나침반이다. 하지만 독서를 기반으로 한 탐구에도 아쉬움이 있으니 바로 시의성(時宜性)이다. 아무리 전문가가 정성껏 쓴 책이라고 해도, 매해 개정을 거듭하지 않았다면 현대 사회의 빠른 변화를 온전히 담아내긴 어렵다. 관심 분야의 최신 이슈와 학문적 트렌드를 따라잡기 위해서는 시의성 있는 소재과 새로운 관점이 필요하다.
드넓은 인터넷의 망망대해에서 어디로 가야 할까? 브라우저를 열고 네이버를 찾아가는 아이들은 만류하는 편이다. 블로그 자료는 신뢰성을 담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좀 더 다양한 언론 기관의 보도나 기관 홈페이지의 자료는 구글에서 더 쉽게 찾을 수 있다. 하지만 한창 공부해야 할 시간, 컴퓨터 앞에서 클릭과 스크롤을 무한 반복해도 맘에 드는 자료 찾기는 숨바꼭질처럼 쉽지 않다.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컴퓨터 화면 앞에서 떠나지 못하다가 결국 새벽이 돼야 엄마의 잔소리를 듣고 창을 닫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면, 고등학교 생활의 우선순위는 제대로 서기 어렵다.
그래서 나는 매일 루틴 한 브라우징을 통해
쓸만한 탐구 소재들을 ‘줍줍’할 것을 추천한다.
2. 주요 기사 제목들을 훑어보고 (주로 소개 사진이 붙어있다)
3. 유용해 보이는 기사를 스크랩하기
이는 실제로 내가 매일 시사 현안들을 살펴보는 방식이다. 이런 식으로 수업에서 다루면 좋을 주제들을 고르고, 아이들에게 소개하면 좋을 탐구 소재들을 모아둔다. 아무리 좋아도 부담스러운 일이 된다면 꾸준히 할 수도 없기에, 간단한 루틴으로 10분 이내로 끝낸다.
오늘 그렇게 스크랩했던 기사를 한 번 살펴보자. (https://www.bbc.com/news/articles/crr9q2jz7y0o)
콘텐츠 모더레이터(content moderator)에 관한 기사이다. 콘텐츠 모더레이터는 소셜미디어 사용자가 플랫폼에 공유한 콘텐츠를 검토하고 그중 유해하거나 부적절한 것을 필터링해 가이드라인에 따라 처리한다. 디지털 시대에 새롭게 생겨난 이 노동 직군에 관해 출판된 단행본은 현재로서는 없어 보인다. 독서로 확보할 수 없는 시의성을 이런 최신 기사로 확보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BBC 정도의 저명한 언론기관의 기사는 사안의 다양한 측면을 조망하는 것이 기본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사를 읽으면 자연스럽게 콘텐츠 모더레이션이라는 소재를 다양한 관심 분야와 연계시켜 탐구 주제를 개발해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1) 이 업무 종사자들이 열악한 근무 환경에서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겪는 점을 사회 분야의 인권 문제와 연결시킬 수 있다. 또한 (2) 모더레이터들이 주로 동아프리카 등 저개발 국가에서 모집된다는 점에서는 이를 국제사회/정치 혹은 지역학적 관점으로 탐구해 볼 수도 있다. (3) 틱톡이나 인스타그램 등 기업이 이들을 아웃소싱의 형태로 고용하는 형태가 문제를 가중시키고 있다는 점, 모더레이터들이 제기한 법적 소송을 해결하기 위해 합의금 지급 등 기업들이 취하고 있는 조치들 역시 경영의 측면에서도 흥미로운 소재이다. (4) 이 문제를 공학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OpenAI 등이 개발 중인 AI 모더레이션에 주목하고 해결책으로서의 가능성에 대해 탐구해 본다면 인권 문제와 컴퓨터공학을 연결시키는 흥미로운 과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내용은 탐구 활동에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에게도, 아이들을 도와주고 싶어 하시는 학부모님들에게도 소개하곤 한다. 자연스럽게 다양한 질문들이 따라오게 마련이고, 다음과 같이 답해드린다.
A. 두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것과 동일한 종류와 질을 담보할 수 있는 한글 사이트를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이 기사들의 제목보다 수능 영어가 훨씬 어렵습니다. 영어 공부를 위해서도 이 정도 기사 제목은 읽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영어가 부담된다면 브라우저의 번역 기능을 활용하세요. 실제 기사를 읽을 때도 AI 프로그램의 요약/번역 서비스를 활용해도 좋아요. 중요한 건 지식을 늘리고 관점을 배우는 것이니까요. 물론 탐구 과정에서 영문 자료를 직접 읽고 정리할 수 있는 학생은 더욱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습니다.
A. 다 이해하지 못해도 좋은 키워드라는 생각이 들면 일단 줍줍, 도토리 모으는 다람쥐처럼 모아두세요. 각자 편한 방법으로 하세요. 웹브라우저의 즐겨찾기에 추가해 두어도 좋고요, 카톡 ‘나에게 보내기’로 쌓아두어도 좋고요. 개인적으론 저는 오래전부터 Pocket이라는 프로그램을 PC와 모바일에서 사용하고 있어요. 아마 요즘 아이들은 자기 나름의 스크랩 방법이 있을 거예요. 어떤 방식이든 나중에 찾아볼 수 있게 정리하면 됩니다. 해쉬태그(#)를 사용한다면 나중에 검색하기가 좀 더 좋겠죠. 아래처럼 말이에요.
https://www.bbc.com/news/articles/crr9q2jz7y0o #콘텐츠 모더레이터 #인권 #국제 #경영 #AI
A. 많죠. 본인의 관심 분야에 따라 적절하게 추가 탐색할수록 소재의 범위와 관점의 색다름을 확보할 수 있을 거예요. The Economist도 제가 즐겨 찾는 곳입니다. 경제만 다룰 거라는 오해와는 달리 전 분야의 뉴스를 다루며 좋은 심층 분석도 함께 제공합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최근 영국에서 벌어진 안락사 허용 논쟁을 소극적 자유와 적극적 자유에 대한 철학 전통의 측면에서 분석한 기사입니다. 전 세계는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존엄사에 대한 토론이 적극적으로 일어나고 있음을 생각해 보면, 시의성이 매우 적절하죠. 생활과 윤리와 같은 과목과 연계하거나 법학의 측면에서 검토해 봐도 재밌을 것 같네요.
The New York Times도 제가 참고하는 뉴스 사이트 중 하나입니다. 오늘자 New York Times의 첫 화면을 가볼까요. “분위기에도 저작권을 설정할 수 있을까?(Can you copyright a Vibe?)”라는 흥미로운 제목이 눈에 띄네요. 소셜미디어의 발달에 따라 창작의 정의도 달라지고 있는 시대적 배경을 바탕으로, 저작권의 범위 변화에 대한 흥미로운 탐구를 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다만 이 두 기관의 경우 대부분 기사 열람을 유료 구독자에게만 허락하고 있습니다. 유료 구독을 하거나 대안적 방법 등이 필요합니다. 좌절할 필요는 없어요. 무료로 유용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곳들이 훨씬 많습니다.
제가 그렇게 찾은 사이트 중 하나는 The Conversation입니다. 대학이나 연구기관 소속 학자들이 최신 시사 현안에 대한 설명 혹은 분석을 기사의 형태로 제공하는 곳으로, 신뢰로운 필진과 친절한 기사 내용이 장점입니다. 오늘자 The Conversation의 첫 면에는 전 세계가 당혹스럽게 주목하고 있는 한국의 정치 상황에 대한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자 '친위(親衛) 쿠데타(self-coup)'가 무엇인지에 대해 미국 교수 두 분이 친절하게 설명해 주는 기사가 올라왔네요...
자신감이 생긴다면 관심 분야의 학술지에도 도전해 보세요. 예를 들어 Nature 지는 과학 분야의 혁신뿐 아니라 관련된 사회 이슈들도 뉴스 브리핑의 형태로 제공합니다. 논문이라고 해도 제공되는 초록을 통해 대강의 개요라도 파악할 수 있어요. 오늘 Nature지의 첫 면에는 최근 Google에서 개발한 GenCast라는 AI 기반 기상 예측 프로그램이 소개되어 있네요. 기존 기상 예측의 90% 정도의 성과를 내고 있어 전 세계의 이목이 주목되고 있습니다. 어때요, 얼른 줍줍 해서 AI의 혁신과 기상학의 미래에 대해 탐구해보고 싶지 않나요?
안다, "매일 10분"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10분은커녕 5분 일찍 일어나기도 매일 실패하는 내가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것도. 하지만 거꾸로 생각해 본다면 어떨까.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아침에 눈을 떠 여는 인스타그램. 심심하면 새로고침해보는 유튜브. 수시로 새 글을 확인하는 커뮤니티 등. 습관의 길이 한 번 형성되면 그 길은 내 의지보다 엄지손가락이 먼저 찾아가는 법이다.
도파민을 찾아 헤매는 일도 지친 어느 날,
새로운 지적 허영이 고픈 날이 한 번은 있을 것이다.
그 날을 위해서, 고생해서 길을 내어보자. 브라우저 첫 화면을 BBC로 해두어도 좋고, 핸드폰 바탕화면에 CNN으로 바로 가는 위젯을 만들어둬도 좋다. 엄지손가락 한 번만 놀렸을 뿐인데 전 세계의 흐름이 눈 앞에 펼쳐진다. 내가 있는 곳이 밤이니 다른 모두도 자고 있을 것만 같았는데, 어느 곳에서는 밝은 햇살 아래 사람들이 활기차게 움직이고 있음이 새삼스럽게 보인다. 전 지구에서 일어나고 있는 신선한 변화를 목도하는 것은 건강한 자극이 된다. 기사가 던지는 질문에 마음을 빼앗기게 되고, 시대적 요구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이런 과정에서 줍줍 해둔 주제들을 활용하며 유용함을 경험해 본다면, 이 과정은 더욱 즐거운 수고가 될 것이다. 테오도르 루즈벨트 대통령의 표현처럼, "땅을 딛고 서되, 눈은 별들을 바라보는" 기쁨을 알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