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고1 독서 흙수저의 전략 투자
독서의 중요성을 모르는 엄마는 없다. 그 귀한 독서를 자녀에게 권해보지 않은 엄마도 없다.
다만 스스로 잘 읽게 된 아이와 그러지 못한 아이가 있을 뿐이다.
이미 스스로 잘 읽는 아이들의 독서는 크게 걱정할 것이 없다. 원양어선의 저인망그물엔 큰 물고기도 작은 물고기도 담기는 것처럼, 많이 읽고 넓게 읽고 계속 읽는 아이들의 마음밭에는 다양한 분야의 다채로운 주제들이 자라나고 있다. 어른들의 투자로 비유하자면 두둑한 종잣돈으로 장기 투자를 잘 해온 포트폴리오랄까. 아기 돼지 삼형제로 비유하자면 튼튼한 벽돌집을 지은 막내 돼지 되겠다.
스스로 잘 읽지 못하는 아이들의 독서가 문제다. 초등학생이라면 지금 시작하면 된다. 중학교 1~2학년도 늦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고입을 앞두고 있는 중학교 3학년이라면? 초등학교 때처럼 전집이 있으면 풀세트라도 사줄 테지만, 고등학교부터는 그렇게 정해진 독서맵도 마땅히 없다. 물론 고등학생 추천도서 목록은 차고 넘친다. 하지만 당장 3월부터 시작할 수행평가, 동아리, 창체 및 각종 탐구 활동을 시작하기 전 다 읽긴 어려워 보인다.
쪽배에 돛 달고 나서긴 했으나 시간이 부족한 이 아이들은 아무 데서나 그물을 내릴 수 없다. 언감생심 벽돌집은 못 짓더라도 나무집 기틀이라도 세워야 할 터. 자금이 빠듯한 투자자라면 그러하듯 전략적 투자가 필요한 셈이다.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까? 전공 소개서 읽기부터 시작할 것을 권한다.
“가장 열심히 공부했던 과목은 무엇이며,
그 과목이 지원한 본 전공과 어떤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나요?”
“저는 수학이 가장 재밌어서 열심히 해왔습니다. 경영학도라면 수학적 재능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고2 진로상담 및 모의면접 체험 때 선우가 했던 답변이다. 누구보다 수학을 좋아한 선우에겐 진정성 100%의 답변이었다. 하지만 선우의 역량을 더 끌어내고 싶었던 나는 선우의 말을 끊었다.
“선우야, 이 질문은 작년 S대학 면접에서 실제로 물었던 질문이야. 그 교수님은 이 질문을 왜 하셨을까?”
“음, 수학을 잘하는지 보고 싶어서?”
“아니지. 경영 면접 대상자라면 이미 수학을 잘했기 때문에 서류를 통과한 거야. 그 속에서 막연히 수학을 잘해서 경영에 지원한 애들과, 수학 과목을 통해 경영학이란 학문에 대해 이해를 심화한 아이들을 구별하고 싶은 거지. 너가 수학 수업이나 관련 활동에서 재밌게 했던 것들을 떠올려봐. 그 속에서 경영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갖게 해 준 의미 있는 것들은 뭐였니?”
“음, 회계통계 활동에서 재무상태표 보는 법 배웠던 때요. 부채도 자산의 일부로 포함하는 대차평균의 원리가 너무 신선했어요.”
“좋아, 그럼 그 생각을 정리해서 다시 답변해 봐.”
“저는 수학을 가장 열심히 해왔습니다. 어떤 난제라도 수학적으로 접근하면 막연한 걱정을 떨치고 논리적 분석이 가능했기 때문입니다. 회계통계 활동에서 재무상태표를 보는 법을 배우면서 부채도 자산의 일부로 바라보는 경영적 사고에 매료되었습니다. 수학적 분석을 통해 위험을 정확히 산정하되 그것을 통해 이룰 수 있는 잠재적 가치를 찾아내고 실현하는 경영 전략가가 되고 싶습니다.”
“그래, 나쁘지 않아. 앞으로 공부할 땐 계속 생각해, 이 활동이 경영과 어떤 접점이 있을까. 경영학에 대한 너만의 통찰을 재정의해보는 게 생기부와 면접의 화룡정점이 될 거야.”
중학생에게 과목이란 재밌는 것과 지루한 것, 그 이상이 아닐 것이다. 고등학생이 되어도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 이상이 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탐구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이제 각 교과목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렇기에 많은 대학들은 학생의 진로역량 중 계열적합성 혹은 전공적합성을 평가할 때 관련 교과의 학업성취도를 근거로 삼는다. 선우가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처럼 수학을 잘해야 경영학부나 경제학과에 진학하기 쉬운 것이다. 또한 관련 교과의 수행평가나 활동들에서 해당 전공 관련 탐구가 얼마나 폭넓고 깊게 이뤄졌는지를 평가한다.
내가 공부하는 과목과 전공하고 싶은 학문이 만나려면 먼저 해당 학문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무엇을 다루는 학문인지, 어떤 역사를 거쳐 학문으로 자리 잡게 되었으며, 어떤 세계관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며, 어떤 쟁점들을 어떤 방식으로 다루고 있는지를 이해해야 해당 전공을 염두한 탐구를 할 수 있다.
이를 위해 고입 전 부드럽게 읽을만한 전공 소개서부터 시작해 보자. 서점에서 “청소년을 위한”, “10대를 위한”, “중학생을 위한”, “고등학생을 위한” 등의 표현과 함께 해당 전공 이름을 검색하면 중학생도 쉽게 읽을 수 있는 말랑말랑한 전공 소개서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 대부분 시리즈물의 형태로 출간되기 때문에 한 권을 찾으면 확장도 쉽다. 평소 독서가 잘 되어있어 이 정도 책이 시시한 친구들은 전공개론서에 도전해 보자. 교보문고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예시들이다.
『MT 약학』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3436534
『청소년을 위한 법학 에세이』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001026095
『이야기 한국문학사』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000879692
『청소년을 위한 세계사: 서양 편』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000879856
『영국문학개관』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001052852
고등학교에서 기본적으로 배우게 되는 과목에 관계된 전공은 모두 한 번씩 읽어보면 좋겠다. 그래야 각 과목의 탐구 활동에 필요한 사고와 제재들을 준비할 수 있다. 진학 희망 학과가 막연하다면 더욱 필요한 탐색 과정이다. 진학 희망 학과가 확고하다고 해도 수시에선 합격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전략적 지원 학과가 있으면 좋기 때문에 열린 마음으로 모든 학과를 탐색할 것을 권한다.
이 책들을 읽는 목표는 독서감상문 작성이 아니다. 탐구를 위해 해당 학문의 스키마(schema), 즉 지식의 표상 구조를 익히고 자신의 것으로 소화하기 위함이다. 다시 집 짓기로 비유한다면 모델하우스를 둘러본 후 해당 모델하우스의 형식으로 집을 짓기 위한 토대를 다지고 설계도를 그리는 과정이라 할 수 있겠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들을 읽으며 해야 할 일은 마인드매핑(mindmapping)이다.
『처음 커뮤니케이션학』이라는 책을 예시 삼아 설명해 보자.
목차를 기준으로 이 책의 구성을 크게 마인드매핑해 본다면 다음과 같다.
이제 책을 읽으면서 마인드매핑에 가지를 더해나간다. 모든 내용을 더할 필욘 없다. 중요하다 느껴지는 내용들, 흥미로워서 더 알아보고 싶은 내용들을 마인드맵에 더해나간다. 위계나 순서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어차피 이걸 이해하는 사람도 나고, 활용할 사람도 나다. 내 집의 중심은 나인 것처럼, 내 공부의 중심도 나다.
중요한 것은 나에게 세상을 내다보는 창문이 하나 더 생겼다는 점이다.
새로 낸 창문 너머로 들어오는 신선한 공기에 감각이 살아나듯,
세상을 바라보는 눈길이 달라지고, 공부의 즐거움이 살아난다.
뿌듯한 마음에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해보고 싶다면? 희망 대학의 해당 학과 홈페이지를 찾아가 보자. 대부분의 대학이 해당 학과에서 배우게 되는 교과과정을 게시하고 있다. 고려대학교의 미디어학부를 예로 살펴보자.
‘다문화사회와 미디어’, ‘미디어경제’, ‘미디어법과 윤리’, ‘미디어비평’ 등의 과목에서 해당 전공이 사회의 다양한 분야와 어떻게 접목되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향후 탐구의 융합 포인트가 될 중요한 지점이니 마인드맵에 추가해 둔다. 이렇게 하면 생활과 윤리 과목을 들으면서도 미디어 관련 탐구가 가능한 것이다. ‘미디어데이터사이언스’, ‘애널리틱스프로그래밍’ 등의 과목 역시 최근 더 중요해지고 있는 커뮤니케이션학 연구의 방법론을 보여준다. 향후 해당 접근을 활용한 탐구 활동을 준비해 봐야겠다는 생각도 함께 메모해 두자.
이렇게 더욱 풍성해진 마인드맵을 고등학교 교과서와 연계하여 정리해 두면 해당 단원의 활동 시 확장 및 심화가 더욱 손쉬울 수 있다. 수행평가 과제가 나왔을 때, 동아리 탐구 주제를 정할 때, 애꿎은 검색창에서 아까운 새벽잠을 낭비하는 아이를 보며 속 태우지 않아도 된다. 고1말이 되어서야 생기부에 적힌 탐구 기록을 보며 좀 더 깊이 있는 탐구가 될 순 없었을까 아쉬워하지 않아도 된다.
물론 이건 시작, 아니 기초 다지기에 불과하다. 우리의 독서 흙수저들은 이제 겨우 나무집의 설계도를 그렸을 뿐이다. 집의 기틀을 세우려면 이제 뭘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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