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보면 뭐 하고 노냐고요?
저번 주 금요일, 나는 오랜만에 혼자였다. J가 31년 간 함께한 진짜 가족을 만나러 갔기 때문이었다. 혼자 보내는 밤은 이상했다. 할 거라곤 없었다. 출판사 재택 작업도 끝냈고, 영어 회화 공부도 끝냈다. 구인구직도 몇 바퀴를 돈 후였고 책상에 엉덩이를 붙이고 있은 지도 거의 12시간이 되었다. 나는 내 집에서 길을 잃었다.
요즘 곁에 J가 없으면 시간이 가질 않는다. 나름 할 걸 다 해도 말이다. J랑 있으면 시간이 아까워 죽겠는데 혼자 있으면 다른 행성에 온 것만 같다. 그래서 일찍 자길 택했다. 다음날 친구들과의 약속이 끝나고 저녁 6시가 다 되어서야 J를 만났다. 어제 아침에 본 사람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있나. 서로를 부둥켜안은 우릴 본 사람들은 '오랜만에도 만났나 보다.'라고 생각했을 거다.
우리는 평일과 똑같은 저녁을 보냈다. 우리가 좋아하는 '맵슐랭'에 맥주를 더한 흔하디 흔한 치맥 말이다. 내가 술을 이렇게 자주 마시는 사람은 아니었는데 J랑 술을 마실 땐 그 무엇보다 술이 맛있다. 그날은 내가 좋아하는 영화를 보기로 했다. 난 영화 취향이 참 까다롭다. 이건 이래서 싫고 저건 저래서 싫어서 영화를 고르는 데 1시간은 걸린다. 그런 내가 좋아하는 영화는 내게 특별한 의미다.
우리는 <이미테이션 게임>을 봤다. 운 좋게 J는 배네딕트 컴버배치를 좋아했고, 다행히 그는 컴공 개발자였다. 앨런 튜링의 이야기는 분명 그의 흥미를 끌 법했다. 그리고 그는 영화를 정말 즐겁게 봤다. 그가 나를 위해 즐기는 건지 그를 위해 즐기고 있는 건지는 이제 내게 보인다. 둘 다 기쁘지만 나는 그가 그를 위해 즐길 때 행복을 느낀다. 그래서 토요일 저녁 영화로 <이미테이션 게임>은 딱이었다. 그 후 우리는 앨런 튜링의 삶에 대해 논했다. 엄마랑 오빠랑 본 영화를 J와 또 보다니 이 영화는 내게 더 특별해졌다.
다음날 우리는 남산으로 향했다. 남산돈가스를 먹고, 남산타워에 자물쇠를 채우는 로망 때문이었다. 그는 31년을 살았지만 남산에서 자물쇠 따위를 채워본 적이 없었다. 그에게 자물쇠는 '따위'였으니까. 나는 스무 살 교환학생 친구들과 채운 열쇠고리가 다였다. 사랑이 우릴 미치게 한 건지, 우리는 안 하던 짓을 하러 남산까지 갔다.
돈가스는 맛이 없었고, 어제는 매우 더웠으며, 물을 사던 중 새치기를 당했고, 내려오는 길은 여기가 서울이 맞나 싶을 정도로 험했지만 우리는 웃었다. 웃겼다 그 모든 상황이. J랑은 맛없는 걸 먹어도 먹을 만했고, 더워도 몸보다는 가슴이 뜨거웠다. 새치기를 당해도 우린 그녀를 함께 욕할 수 있었고, 내려오는 길엔 사자인 줄 알고 놀랐던, 사실은 귀여운 강아지와 우리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네는 대한외국인을 만났다.
땀을 흠뻑 흘리고는 이태원에서 시원한 맥주를 마셨다. 우리들을 둘러싼 영어가 우리를 낯설게 만들어줬다. 우린 또 특별한 순간을 그리고 있었다. 그리고는 아주 소소하게 오락실에서 틀린 그림 찾기에 3,000원을 날리고 농구 내기를 했다. 저녁 식사가 될 짜파게티를 끓이는 내기였다. 난 조그맣지만 운동 신경 하나엔 자신 있다. 농구로 J를 이긴 적도 많다. 하지만 역시 내기란 제안하는 사람이 지는 걸까. 난 J에게 참패했다. 승부욕이 센 나는 금방 열이 받았지만 열이 받음과 동시에 그의 예쁜 입고리에 마음이 가라앉았다. 가라앉는 걸 넘어 최고의 짜파게티 요리사가 되리라 다짐했다.
우린 그렇게 집으로 돌아와 짜파게티에 매운 파김치를 먹었다. 행복했다. 12,000원짜리 돈가스보다 한 봉에 1,000원밖에 하지 않는 짜파게티가 더 맛있었다. 우리만의 공간에서 흐트러진 채 먹는 라면은 세상 그 화려한 음식보다 맛있다. (둘이서 4봉이나 먹었다) 그리곤 둘 다 지쳐 쓰러지듯 잠들었다.
우리의 주말은 다른 커플들과, 다른 가족들과 다를 바 없다. 그저 같이 하는 모든 것들이 즐거울 뿐이다. 물론 별 것도 아닌 걸로 말다툼을 하기도 하지만 금세 풀어져 그런 걸로 싸우냐며 웃어넘긴다. 평범함을 꿈꾸는 많은 사람들이 이해되는 매일이다. 평범한 주말은 덥지도 춥지도 않고 따뜻했다. 그렇게 우리의 주말이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