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U정 May 24. 2024

3년 전, 극심한 우울증을 앓았을 때

3년 후의 나는 우울을 컨트롤하고 있다. 

내가 우울증을 앓았을 때의 글이며 지금의 나와는 무관하다.
그때의 내 모습이 안쓰럽지만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 올려본다.

우울증은 치료할 수 있으며, 지금의 내가 무던하게 살아가듯 누구든 그럴 수 있다.


2021.12.17.

    사람이 우울한 데에는 명확한 사건이나 계기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근데 내가 직접 겪어 보니 우울은 생각보다 갑작스럽게 찾아오며 그 이유도 찾아내기 힘들었다. 원래도 자책과 스스로에 대한 비난을 달고 살았던 터라 그게 문제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근데 이게 꽤나 스스로를 오랜 시간, 꾸준히 괴롭혀 왔던 것 같다.

 

      그렇게 평소처럼 스스로를 탓하고 있을 때 문득 이제 내 마음을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수준에 다다랐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을 멈출 수도, 비난을 멈출 수도 없었고 누굴 만나든 어딜 가든 부정적인 생각들만 가득했다. 그렇게 나도 모르는 새에 우울이 들어섰다. 스스로 마음을 통제할 수 없게 되자 아무것도 할 수 없어졌다. 공부를 하려고 앉아도 눈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고 집안일이나 그 어떤 것에도 집중할 수 없었다. 바로 몇 분 전에 내가 무엇을 했는지 기억하지 못했고, 무엇을 하려고 했는지도 떠올리지 못했다. 하늘은 너무 맑고 밝은데 뭐든 뿌옇고 어둡게 보였다.

 

 공허한 마음을 달래는 방법은 먹는 것과 자는 것. 오직 내가 집중할 수 있는 게 그거뿐이었다. 눈을 뜨면 아침, 간식, 점심, 간식, 저녁, 간식 이렇게 최소 6끼를 먹었다. 배가 고파서가 아니었다. 배는 너무 부르고 위가 찢어질 것 같은데 먹지 않으면 그저 누워 있었기에 그런 내가 한심스러워서 견딜 수 없었고, 사실 먹으면서도 먹고 있는 내가 한심했다. 그래도 공허한 마음이 채워졌고 먹지 않으면 잠들 수 없어서 먹는 걸 택했다.

 

 무기력과 폭식, 설치는 잠과 부정적인 생각들, 자기혐오까지 이 모든 것들이 나를 지배하고 있었다. 며칠을 그렇게 보내고 나서야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그렇게 손을 떨면서 병원에 전화를 했던 것 같다. 그 부분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가장 빠른 예약이 이틀 후였고 그 이틀을 어떻게 견뎌야 할지 너무 두려웠다.

 

 그래도 병원에 가면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을 걸면서 어떻게 이틀을 보냈다. 중학교 때 찾아간 상담실에서는 내 이야기가 지켜지지 않았고, 스무살에 갔던 대학병원에서는 내가 차려 입고 향수를 뿌렸다는 이유로 스트레스 받지 않는 사람 취급을 당했다. 그래서 다시는 상담센터나 병원을 찾지 않겠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의 상태는 상담이나 위로가 아니라 치료가 필요하다고 느껴졌다.

 

 병원에 도착해서 여러 검사를 했다. 스스로를 우울하게 만들고 불쌍한 척하는 내가 역겨워서 덤덤한 척 검사에 임했는데 선생님께서 결과를 보고 놀라셨다고 했다. 검사에서 10점까지를 정상으로 20점까지는 위험으로 그 이상은 일상생활이 거의 불가능하며 50점 이상인 사람들은 실제로 자살을 하기도 한다고 했는데 나는 37점이었다. 거의 40점에 가까운데 어떻게 버텼냐고 생활이 가능했냐고 물으셨다.

 

 그 말을 듣고 내가 우울증이라는 거에 놀란 것보다도 너무 안도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내가 너무 한심해서 화가 났는데 내 상태면 아무것도 못하는 게 정상이었던 거라니 다행이었다. 시험 전날까지도 공부를 하지 못했고, 시험 당일에서야 시험 시간 1시간 전에 겨우 공부한 채 시험을 쳤다. 내가 아무리 게으르고 미루는 사람이었다고 해도 그렇게 미루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는데.. 선생님께서 시험을 본 것만으로 대단하다고 해주셨다.


 나는 누군가에게 위로받고 싶지도 않았고 그냥 내가 이렇게 무기력한 이유를 알고 싶었으며 그에 대한 처방을 받고 싶었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적당한 위로와 나를 나아지게 할 수 있다는 확신을 보여주셨다. 그 순간이 최근 들어 느낀 유일한 행복과 희망의 순간이었다. 나도 행복해질 수 있다는 희망, 예전 같아질 수 있다는 기대를 느꼈다.


 내가 나를 죽이고 싶진 않았지만 누군가에 의해서 혹은 자연스럽게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런 기대가 생기니 살고 싶어졌다. 시간이 조금 걸리겠지만 나아지고 싶다. 그리고 나는 나아질 것이다.



그리고 나는 나아졌다. 내가 나를 믿으려고 애썼고, 나의 의지와 무관한 것이기에 나를 탓할 필요 없다고 되뇌었다. 지금의 나는 작은 것에도 행복을 느낄 줄 안다. 자주 다운되고 가끔 우울해지기도 하지만 어느 정도 나의 마음을 컨트롤할 수 있다. 


그건 나여서 가능했던 것이 아니다. 나여서 우울했던 것이 아니다. 어느 순간 몸이 아프듯 나는 아팠고, 시간이 지나 극복했을 뿐이다. 다른 누구여도 해낼 수 있는 일이다. 우울한 누군가 내 글을 본다면, 공감했다면 자기도 나아질 수 있음을 굳건히 믿었으면 한다. 스스로를 탓하지도 말고 그저 잠시 아픈 것이라고 달래기만 해주었으면 좋겠다. 

이전 01화 우울도 기질인가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