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U정 May 27. 2024

내 사춘기는 매웠다, 눈이

따뜻하고 다정한 세상이 오길

 사춘기는 맵다. 그러니까 뭐랄까 쉽지 않다. 혀가 고통스러워 몸이 뒤틀리듯 자아를 향해 다들 움틀거리기 시작한다. 내 사춘기도 매웠다. 근데 혀가 아린 게 아니라 눈이 매웠다. 그래서 자꾸 눈물이 났다. 등교를 하다가도 학교에서 수업을 듣다가도 툭하면 눈물이 났다. 열네 살 나는 우울했다.




 사춘기는 뭘까. 몸과 마음이 어른으로 성장해 나가는 과정이라는데 사실 잘 모르겠다. 나는 사춘기 때 몸만 성장했고, 마음은 성장하지 못했다. 오히려 무너져 내렸다. 사춘기가 오면 내가 멋져 보이고, 반항적이며 오늘만 사는 것처럼 사는 줄 알았다. 근데 나는 내가 못나 보였고, 순종적이었고 오늘만 살고 싶었다. 


 우리 집은 정신 사나웠다. 뭔가 어지러웠다. 어려서 이유는 잘 알지 못했으나 조용한 날은 없었다. 우린 집이 없었기에 매해 새로운 집을 맞았고, 주말이 아니면 가족들이 다 같이 만나는 일은 없었다. 아빠는 집에 안 온 지 몇 년이 되었고 엄마는 밤늦게까지 일을 했다. 학교에 가서 온종일 아이들의 부모님 얘기를 듣는 게 괴로웠다. 엄마랑, 아빠랑 다퉜다며 투정 부리는 아이들이 부러웠다. 나는 엄마랑 싸운 적이 없었다. 엄마랑 싸울 일도 없었다. 붙어있어야 싸우지. 엄마 얼굴을 보는 순간은 내게 너무 소중했고, 엄마도 그랬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에겐 싸울 만한 여유가 없었다. 


 내가 집에서 싸우는 유일한 인물은 오빠였다. 우린 붙어있었으니까. 우린 밥 먹을 때도, 티비를 볼 때도, 자기 전에도 다퉜다. 그리고 다투면서 느꼈다. 그 '다툼'이 너무 좋단 걸. 내가 소리를 치고 난리를 피워도 오빠는 날 싫어하지 않았다. 나도 오빠가 나에게 뭐라고 해도 그가 밉지 않았다. 그를 사랑했다. 나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주는 오빠가 너무 좋았다. 오빠한텐 미안한 일이지만 난 오빠가 정말 든든했다. 어릴 때 늦은 밤이 찾아와도 오빠랑 있으니 무섭지 않았다. 집에서 벌레가 나와도 손을 벌벌 떨며 벌레를 잡아주는 오빠가 있어서 두렵지 않았다. 


 그래도 내게 사랑은 모자랐다. 받을 것도, 줄 것도 말이다. 




 그런 결핍에서 내 사춘기는 우울로 발현됐다. 엄마에게, 아빠에게 더 사랑받고 싶었고 엄마랑 더 함께 있고 싶었다. 그리고 나도 엄마한테 무언갈 해주고 싶었다. 일이 끝나고 피곤해하는 엄마를 보면서 하고 싶은 사사로운 얘기들은 눌러두고 엄마가 더 쉬길 바랐다. 엄마만큼은 내가 우울한 걸 모르길 바랐다. 난 엄마한테 줄 게 없는데 그딴 거나 줄 순 없었다. 


 처음엔 학교에서 무슨 설문지를 하라고 했었다. '우울하다'라고 나와서 학교 상담실에 불려 갔다. 어린 나는 경계했지만 예쁘고 다정한 선생님은 내가 남 앞에서 울게 했다. 아무도 몰랐으면 좋겠으면서도 누군가는 제발 알아줬으면 했던 내 손목의 밴드도 가족보다 많이 보는 친구 중 한 명만이 알았다. 선생님은 병원에 가보는 게 좋겠다고 말했고, 나는 엄마한테만은 말하지 말라고 했다.(계속 그 말만 했던 것 같은데..) 


 그리고 집에 가서 엄마랑 나는 거의 처음으로 다퉜다. 선생님은 내가 어리기만 했나 보다. 내 말은 그리 진지하지 않았던 걸까. 바로 엄마한테 연락을 했던 거다. 엄마는 놀랐을 거다. 그래서 내게 그렇게 말했을 거다. 근데 나는 지금도 그 순간이 명확히 그려질 정도로 그때가 참 마음이 아프다. 그 당시의 나보다 엄마의 마음이 얼마나 아렸을지가 말이다. 


 매일 밤 맞은편 방에서는 오빠가 색색거리며 잠을 잤고, 나는 잠들지 못한 채 스스로 상처를 냈다. 그러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었다. 그리고 글을 썼다. 원망과 슬픔에 가득 찬 글들을. 참 왜 그렇게까지 했을까 싶지만 그땐 아무 방법을 몰랐다. 그 상황에서 내 힘으로 벗어날 순 없었고, 내가 가족들에게 줄 도움이 아무것도 없었다. 어른이 되려면 아직 6년은 기다려야 했다. 6년 동안 지금처럼 살라고 하면 자신이 없었다. 


 나는 지금도 나 같은 아이들이 그런 고민을 하며 괴로워할까 봐 너무 무섭다. 다들 행복만 했으면 좋겠다. 살면서 여러 경험을 해보면 좋다지만 그런 기분 따위는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보다 더 마음이 쓰라렸을 엄마가 안쓰럽다. 가장 사랑하는 나 때문에 엄마가 아팠을 거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습이 답답해진다. 


 세상이 더 따뜻해져서 그런 모든 아이들을 돌봐줬으면 좋겠다. 아이들의 작은 변화를 알아차려 주면 좋겠다. 지금은 내 힘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내가 되었다. 그래서 그 아이들에게도 그런 미래가 있다는 걸 확신시켜주고 싶다. 어리고 예쁜 아이들이 나처럼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냥.. 따뜻하고 다정한 세상이 되길 계속 바라만 본다. 


 

이전 02화 3년 전, 극심한 우울증을 앓았을 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