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할 수 없어질 뿐이다
내가 우울증을 겪으며 깨달은 사실이 하나 있다. 우울은 슬픔을 동반하지 않는다는 거다. 우울증이 오면 괴롭기보다 무력해진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손에 무엇도 잡히지 않는다. 무엇을 할 에너지가 0에 수렴한다. 사람마다 우울이 발현되는 양상은 다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랬다.
밤에 사람들은 센치해지곤 한다. 그런데 우울증에 걸리면 하루종일 울적하다. 길거리의 웃음소리마저 거슬린다. 나는 이렇게 하루하루를 보내기가 버거운데 저 사람들은 뭐가 그렇게 즐거운 건지 억울하다. 화가 난다. 나를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이, 나를 치고 가는 사람들이 뭐 같다. 그들의 고의가 아니었을지라도 참을 수 없어진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여유가 없어진다.
즐거운 것도 없고 무엇도 하고 싶지 않다. 그저 누워만 있고 싶다. 침대와 침대 아래의 바닥과 그 밑의 무언가와 하나가 되고 싶어 그저 가라앉기만 한다. 가라앉고 또 가라앉아서 지구의 핵에 닿을 것만 같다. 몸이 무겁다. 몸을 일으킬 수 없다. 그저 하루가 밤으로만 가득하길 빈다. 그래서 지구가 고요했으면 하고 바란다. 나처럼 모든 것들이 잠잠해져서 나를 평온하게 만들어주길 원한다. 세상의 잡음이 사라지면 내 뇌 속의 소란도 잠재워질 것만 같다.
우울해지면 하루종일 잠만 자거나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다. 그런 이상한 짓을 반복한다. 그게 밤이든 낮이든 말이다. 우울의 이유도, 내 삶의 가치도, 내 존재의 원리도 그 무엇도 생각하기 귀찮아진다. 눈을 감고 싶다. 계속해서, 하루든, 이틀이든, 영원이든.
나는 우울을 겪은 후로 누군가의 이야기를 쉽게 흘려들을 수 없다. 누군가 그따위 감정을 겪는 걸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슬프다는 말이, 괴롭다는 말이, 우울하다는 말이 더 크게 와닿는다. 사람들은 우울한 사람을 의지가 약한 사람 혹은 감성적인 사람으로 취급할 때가 많다. 하지만 그들도 그러길 원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렇게 되었을 뿐이다. 내가 나로 태어나고, 나로 살아가듯 그냥 그렇게 되는 일들이 있지 않는가.
그래서 하고픈 말은 주변의 작은 말들을 조금 더 바라봐달라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한 마디가, 한 음절이, 한 단어가 당신에게 닿기를 바란건지도 모른다. 알아달라는 외침일지도 모른다. 나를 알아주는 한 사람이 있다면 살아갈 에너지가 생길 수도 있는 일이다. 특히 소중한 사람의 말이라면 더 귀 기울여주길 바란다. 그가 당신 곁을 떠나면 당신도 아플 테니까. 당신이 그 마음을 들여다봐준다면 언젠가 그 사람은 당신에게 몇 배는 더 큰 무언가를 돌려줄 것이다. 당신은 은인이자 구원자였을 거다, 한 사람의.
우울이 그저 슬픔으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 힘이 빠진 사람이 있다면 기꺼이 그 사람의 힘이 되어줄 용기도 우리에게 필요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니까. 내가 그에게 손 내민다면 그는 그의 전부를 줄 테다. 그가 무뢰한인 것도, 당신을 감정 쓰레기통으로 여기는 것도 아니다. 그저 살려달라는 신호일 거다.
우리라는 단어를 모두가 잊지 않길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