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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차 Jun 07. 2022

사랑은 자꾸만 나를 어린아이로 만든다(1)

기다림

아무도 없는 카페였다. 나는 말 한마디가 끝나기도 전에 울음을 토해냈다. 단어와 단어, 문장과 문장 사이가 제대로 이어지지 않았다. 앞에 앉아 있던 그의 표정은 안쓰러움이었다. 미안하다며 자신이 잘하겠다 말하던 그에게 나는 시간을 가지자고 말했다. 그날 나의 목표였다. 거리두기. 



그리고 그는, 다시금 노력해보자는 우리의 결론에 환승이별이란 마침표를 찍었다. 




개자식. 개같은 놈. 개보다 못한 호로자식. 그와 나는 사내연애였다. 고로 헤어진 뒤에도 매일 얼굴을 봐야만 했다. 다행이라면 나는 그의 얼굴이 보이지 않고, 그는 내 뒷통수가 보이는 자리였다. 나는 내 스스로 직감이 좋다 생각한다. 어느 날이었을까. 퇴근하는 그의 얼굴이 상기되어 있었다. 야근을 밥 먹듯 하던 그가, 신나서 가방을 챙기는 게 내 뒤통수에서부터 느껴졌다. 부산스러운 소리가 거슬렸다. 내 옆자리 팀장님께 '먼저 갑니다!' 인사하며 나가는 목소리와 발이, 얄미웠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그렇게 신나게 만나러 간 상대가 누군지 알게 되었다. 연애 도중 유난히 거슬렸던 그의 여사친이었다. 






그제서야 비상계단에서 느껴졌던 미묘한 공기가 떠올랐다. 시간을 갖자 말한 후 내가 먼저 그를 불렀다. 그는 자신의 힘든 상황을 설명했다. 나는 그의 말을 계속 들었다. 그리고 오만한 판단을 내렸다. 이렇게 혼자서 힘든 사람을 버리고 갈 수 없다는. 이 사람이 내 남자친구가 아닌 친구였다면 매정하게 버리고 갈 것이냐는 물음 또한. 내 대답은 '아니'였다.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내린 내 결론이 비인도주의를 이끌 거라곤 생각도 못 했지만. 나는 그에게 다시 잘 노력해보자 말했다. 그는 알겠다 답했지만, 그 주 주말내내 연락이 되지 않았다. 나는 답장이 오지 않는 내 노란 말풍선을 보며 마음을 정리했다. 그가 빌려준 닌텐도를 종이백에 챙겼다. 





그리고 예상대로 그가 나를 비상계단으로 불렀다. 헤어지자는 말이었다. 얼굴은 보고 얘기를 해야 할 것 같았단다. 실소가 나왔지만 참았다. 이럴 거면 잘하겠다는 말을 왜 했니?와 같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내 마음은 이미 전원이 꺼진 컴퓨터나 다름없었다. 고요 그 자체였다. 거기에 돌멩이를 던진 건, 그의 새로운 연애 소식이었다.





전보다 널 좋아하지 않는 건 사실이야. 





시간을 가지자는 말을 하기 전. 울면서 감정을 토로하던 내게 돌아온 말이었다. 그때는 몰랐다. 비교지표가 가까이 있었기에 나를 덜 좋아함을 깨달았다는 것을. 뭐든지 처음은 새롭고 가슴 뛰기 마련이니까. 헌 것이 되어버린 나와 새로운 존재의 대결은 이미 승패가 정해져 있기 마련인데. 나는 그의 말에 더 울었다. 카페에 아무도 없어서 다행이라는 듯 더 크게 울었다. 멈추는 법을 모르는 것처럼, 그렇게 그냥 울었다. 우는 것 말고는 표현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어쩌면 그는 이미 새로운 연애를 준비 중이었지 않았을까. 우는 얼굴은 아랑곳 않고 송곳 같은 말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말이다.




그는 자주 그랬다. 뾰족한 말로 나를 난도질했다. 나는 그 말에 너덜너덜해져 엉엉 울다보면, 어느새 어린아이가 되어 있었다. 언제나 사랑 앞에서 기다린 아이. 기다림이 사랑의 기본이 되어버린 아이. 그럴 때마다 그는 내가 범접할 수 없는 어른이 되어 있었고, 나는 버려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휩싸이곤 했다. 


버려짐에 대한 두려움을 느낀 어느 날. 횡단보도 앞에서 엉엉 울던 나는 한 가지를 깨달았다.



사랑은 자꾸만 나를 어린아이로 만든다,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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