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의 손톱깎이
외로움은 이길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신체의 일부다. 손톱이다. 다행이지 않나. 외로움이 심장이었다면 내 심장이 뛰는동안 외로움도 같이 널뛰었을 테다. 외로움이 폐였다면 숨을 쉴 때, 내쉴 때 외로움도 안으로 밖으로 무한 반복이었을 거다. 누군가에겐 외로움이 심장이고 폐일 수도 있다.
나에게는 손톱이다.
사람은 언제나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다. 내 손톱이 얼만큼 길었는지 수시로 확인하지 않는 것처럼, 외로움은 특정 상황에 밀려나온다. 혼자일 때다. 나밖에 없다고 느껴질 때다. 그때 사람은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내가 혼자일 수밖에 없는 이유, 사람들에 둘러쌓여 있었던 어느 과거, 그리고 다시금 혼자인 상황의 나를. 괜찮다. 상황을 둘러보았다면, 내 외로움이 어느 정도인지 알게 되었다면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다. 어떨 때 외로움을 느끼는지 알게 된다는 건 바꿔 말하면 어느 상황에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지 유추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나에겐 글쓰는 시간이 그렇다. 모든 외로움을 당연하게 여길 수 있는 시간. 내 글에 온전히 빠져들 때 세계엔 글자와 나만이 있다.
타자를 치다보면 자연스레 손톱에 눈이 간다. 손톱이 길면 타자를 치는 데 불편함을 겪는다. 그래서 손톱깎이로 잘라낸다. 똑, 똑 소리가 나며 바닥으로 손톱이 떨어진다.
내겐 글이 그러했듯 당신에겐 어떤 것이 손톱깎이일지 궁금하다.
기억하자. 외로움은 이기려고들 대상이 아니다. 죽을 때까지 나와 함께 갈 나의 일부다. 체념에 빠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돌파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란 걸 아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괜한 것에 힘을 빼지 않아도 되므로. 나는, 당신이 겪을 외로움이 또각또각 잘려나갈 수 있음을, 손톱깎이를 쥔 주체가 당신임을 말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