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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즐겁꾼 Aug 09. 2021

내가 우울증에 걸릴 줄이야(2)

10개월 간의 길었던 치료가 드디어 끝났다


왜 우울증에 걸린 걸까? 처음에는 병의 원인을 찾고 싶어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반복했다. 하지만 그 병명은 산후우울증인지, 육아우울증인지 아니면 오래 묵혀뒀던 우울증인지 범주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삶의 어떠한 트리거로 인해 우울해졌고, 더 이상 우울하고 싶지 않아서 치료를 받기로 했을 뿐이다.


그렇게 나는 ‘폭세틴’이라는 항우울제 복용을 시작했다. 가장 적은 용량의 캡슐을 한 알 처방받았고, 이제 나의 일과는 매일 아침마다 그 약을 한 알씩 챙겨 먹게 될 것이다. 이 조그마한 약은 앞으로 나를 어떻게 바꿔줄까?



다행히도 나는 나와 맞는 약을 잘 만나서 별다른 부작용은 없었고, 괜스레 걱정했던 위장장애 등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서 약을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 모르겠는 느낌이었지만, 나의 신경 회로 속에서 어떠한 작용을 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기분이 묘했다.


초반에는 약을 먹을 때마다 낯선 기분이 들었는데, 매일을 반복해 먹다 보니 그마저도 아무렇지 않아 졌다. 왜 그렇게 약 복용에 거부감을 느끼고 미리부터 걱정했는지 모를 일이다. 심지어 장기 복용을 하다 보니 이제는 무의식에 약을 챙겨 먹게 돼서, 내가 먹은 약이 어제인지 오늘인지 헷갈리고, 기억이 안 나 종종 약을 빼먹는 일도 생겨났다. 어쩌면 이것은 나의 증상이 호전되었다는 반증일지도 모르겠다.


약을 2~3주 정도 복용했을 때부터 기분의 변화를 느꼈다. 치료 전에는 하루 종일 의식적으로 우울함을 생각했었는데 그러지 않게 됐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더 이상 울고 있지 않았다. 한 달도 되기 전, 그러니까 비교적으로 빠른 기간 내에 약 효과가 나오고 좋아진다는 건 그만큼 내가 가지고 있는 원래 자아가 건강해서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맞다. 내 자아는 꽤 건강했다. 바쁘게 움직였고, 성실하게 살았고, 부지런히 뭔가를 찾아다니며 배웠다. 그렇게 가꿔왔던 내 자아가 육아라는 삶을 만나며 와르르 무너져 내린 것이다.


다들 애 낳아서 잘만 키우는데 나만 유난스럽게 힘들어하는 건가 싶고, 다들 힘들고 우울한 감정들 쯤은 잘 이겨내는데 나만 나약해서 이렇게 병에 걸린 건가 싶어서 스스로가 한심하기도 원망스럽기도 했다. 그런 나에게 선생님은 병과 나를 동일시하지 말라고 해주셨다. 감기에 걸렸다고 내가 감기인 것이 아니듯, 우울증 역시 뇌의 균형이 무너진 증상일 뿐, 나와 우울증은 동일한 것이 아니라고 했다.




토요일 아침마다 아이를 남편에게 맡기고 병원에 가는 것이 일과가 되었다. 15분 남짓 병원으로 걸어가는 길, 한 주동안 있었던 일들이나 최근 느꼈던 감정들을 한 번씩 되짚어보기도 했다. 진료를 볼 때면 선생님은 매번 잠은 잘 자고 밥은 잘 먹는지, 요즘 기분은 어떤 지부터 체크해주셨는데, 가족도 친구도 아닌 누군가가 나의 사사로운 일상과 감정을 신경 써준다는 게 큰 위로가 됐다.


매주 가던 병원 진료가 2주 간격, 그리고 3주 간격씩 늘어나면서 어느덧 병원에 가는 건 아는 사람이랑 오랜만에 수다 떨러 가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이런 일이 있었는데 선생님한테 말씀드려야지, 이런 감정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여쭤봐야지 하는 생각들은 든든한 버팀목이 되기도 했다.


그렇게 약 10개월간 정신과 진료를 다니며 수십 번 되뇌었던 한 가지는 ‘진작 올 걸’하는 생각이었다. 회사를 다니면서 번아웃이 오고, 대인관계가 어려워지고, 스트레스가 극에 달해 벼랑 끝에 몰려 퇴사를 선택했다. 퇴사를 후회하는 건 아니지만, 만약 내가 직장생활 중 정신과 진료를 병행했더라면 마음이 조금은 덜 힘들었던 직장인으로 살아갈 수 있었을 텐데 진작 용기 내지 못했음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우울감이 걷히고 나니 그제야 주위가 보이기 시작했다. 가족, 친구, 아이 모두 나를 괴롭히는 존재 같았고 내 한 몸 추스리기도 매우 버거웠었다. 근데 이제는 아이가 얼마나 예쁘게 커가고 있는지 비로소 눈에 들어왔고, 남편과 대립하는 일도 현저히 줄어들었다. 또, 타인에 대해 신경 쓰거나 눈치를 보는 일도 많이 줄었다.


‘처음 왔을 때 제 상태가 얼마나 심각했었나요?’라는 질문에 선생님은 처음에 했던 검사를 다시 해보라고 권해주셨는데, 놀랍게도 ‘나는 우울하다’, ‘나는 슬프다’ 등의 항목들에 대해 자신 있게 ‘전혀 아니다’라고 대답할 수 있었다. 그 검사지를 토대로 처음 나왔던 내 점수는 20점대였는데, 이제는 6점이라고 하니까 그 갭이 상당하다. (10점 이상이 우울을 판단하는 기준 점수라고 했다.)


마침내 약을 끊어보자는 처방이 내려졌다. 마지막 진료를 받던 날, 선생님은 앞으로 잘 지낼 자신 있냐고 물어보셨다. 내가 복용 중인 약은 반감기가 길어서 일정 기간은 약효가 남아있겠지만, 시간이 점차 흐르면 내 몸 안에서 약의 흔적은 사라질 것이다. 약을 먹지 않는 내 삶은 또 어떤 모습으로 변화할까? 나는 다시 우울해지는 걸까?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다가도, 잘 모르겠는 기분이 이따금씩 든다.


우울증을 겪고 난 뒤 일종의 방어기제 같은 것이 생겨났다. 내가 가진 에너지를 전부 쓰지 않으려고 하고, 안 좋은 일이 생기면 다시 우울해질까 봐 겁을 먹는다. 그런데 선생님은 이를 오히려 긍정적인 사인으로 봐주셨다. 아프고 나니 비로소 내 마음에 귀 기울이게 됐고, 정신 건강의 중요성을 알게 된 것이니 좋은 일이라고 하셨다. 살아가면서 당연히 우울할 수도, 슬플 수도 있으니까 미리 겁먹을 필요는 없다고, 30년을 그렇게 살아왔 듯 앞으로도 살아갈 수 있다고 용기를 보태주셨다.




요즘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 피곤하고 졸리긴 하지만, 더 이상 절망적이지 않고 우울하지 않다. 그거면 됐다. 그렇기에, 사랑하는 나의 남편 그리고 나의 아이와 그럭저럭 괜찮은 나의 인생을 즐겁게 지내볼 것이다. 그러다 마음이 힘들어지는 날에는 주변 사람들도 좋고, 병원도 좋으니 나를 구원해줄 수 있는 무언가에 있는 힘껏 의지한다면 나는 또다시 살아갈 수 있다.



우울증을 겪은 나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은 너무 많이 애쓰지 않아도 되고 잘하지 않아도 충분하다는 것, 완벽하고 좋은 사람이 아니어도 괜찮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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