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아빠만 힘들었지 뭐
곰팡이가 피고 쥐가 갉아먹은 캠핑용품
출산과 육아로 당분간 사용할 일이 없어진 캠핑 장비들은 시댁의 시골집 창고로 모조리 들여보냈다. 그들은 그 속에서 자그마치 1년 반을 머물렀고, 이제 그만 나와도 된다는 우리의 부름을 받은 장비들이 마침내 세상 밖으로 나왔다.
캠핑 장비들은 여기저기 먼지가 쌓이다 못해 곰팡이가 피기도 했고, 심지어 설거지통은 창고에 드나들던 쥐가 갉아먹었다. 1년 반, 애를 낳고 키우느라 바빠서 순식간에 흘러간 세월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공백이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었나 보다.
우리가 캠핑을 갈 수 있을까?
임신 기간 때도 그랬고, 아기를 낳고도 줄곧 언제쯤 다시 캠핑을 갈 수 있을지 궁금했다. 정확하게 얘기하면 궁금했다기보다 ‘가긴 갈 수 있나?’ 정도로 의문을 품었다는 표현이 더 맞겠다. 가끔 캠핑 카페에 들어가서 보통 언제쯤 아기와 캠핑을 다니기 시작하는지 검색해보면 백일 지나고 갔다는 사람도, 돌 지나고 갔다는 사람도, 세돌은 지나야 편하다는 사람도 모두의 이야기는 제각각이었다.
나는 뭘 기대하면서 ‘아기 몇 개월 캠핑’, ‘아기 캠핑 밤잠’ 등의 단어들을 조합해가며 산증인들의 글을 찾고 있던 것인가. ‘지금 당장 떠나세요!’라고 용기를 얻고 싶었던 걸까. 당연히 아기마다 성향이 다르니 아기를 가장 잘 아는 엄마 아빠가 적당한 때를 결정해야 한다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는 정답이었다.
우리 아이의 경우 잠에 예민한 편이라 잠자리가 바뀌면 자지러지게 울기도 하고, 잠투정이 심해지면 토를 할 지경으로 울 때가 있어서 여기가 우리 집이란다~ 하고 텐트를 펼쳐 들어가서 자라고 한다면 날 어이없게 쳐다볼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우리 아이는 순순히 그리고 호락호락하게 낯선 텐트 안에서 하룻밤을 보내주지 않을 것이다. 나는 꽤 확신에 가득 찬 추측을 하며 우리에게 캠핑은 아직 때가 아니라고 고개를 절레절레 젓기를 몇 차례 반복해왔었다.
아침에 한 번, 점심에 한 번, 저녁에 한 번 매일같이 외출을 재촉하는 아이 덕에 힘든 육아가 이어지고 있었다. 무더운 여름날 마스크를 끼고 땡볕의 놀이터를 누비다 보면 정녕 여기가 지옥인가 싶고, 그렇게 놀았는데도 집에 안 간다는 아이를 보면서 ‘너는 놀이터에 텐트라도 쳐놓고 자야 만족하겠니?’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때 ‘아아아니! 그게 캠핑 아냐???!’라고 새삼스러운 깨달음을 얻은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임신 16주를 끝으로 접어뒀던 캠핑을 아이가 태어난 지 16개월이 되어서야 다시 시작하게 됐다. 캠핑에 적당한 때를 잡았다기보다 육아에 지쳐 에라 모르겠다 하는 무모함이 이상한 추진력을 발휘한 것 같다.
캠핑은 트렁크 한가득 짐을 싣고
캠핑 장비들도 시댁에 있고, 만약 아이가 텐트에서 잠을 못 자고 심하게 울면 철수해야 하기 때문에 캠핑장은 시댁이 있는 충북 단양으로 정했다. 코로나 시국에 사실 캠핑을 가는 게 조심스러운 부분이라, 가급적 많은 사람들과 마주칠 일이 적은 평일로 캠핑 일정을 잡았다.
날짜와 장소는 정했는데, 뭐부터 준비해야 할지 약간 막막했다. 캠핑을 너무 오래 쉰 탓에 감이 떨어지다 못해 없어졌다. 임신했을 때 커플로 캠핑의자를 구입하면서 아기가 태어나면 아기 것도 사주자고 남편과 약속을 했었는데, 먼저 그 약속부터 이행하기로 했다. 두 살 베기 아기가 의자에 얌전히 앉아있을 리 없지만, 그래도 의자는 예쁘니까 괜찮다(?)
기존에 우리가 사용하던 텐트는 백패킹용 텐트라서 셋이 잠을 자고 생활하려면 조금 더 넓은 텐트가 필요했는데, 그렇다고 섣불리 텐트를 사기에 아이가 앞으로 캠핑을 잘 다닐 수 있을지 확실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래서 오래돼서 잘 쓰지 않지만, 기능은 멀쩡한 텐트부터 일단 가지고 가보기로 했다.
그 외에도 타프, 매트, 침구류, 테이블, 의자, 가스버너, 코펠 등 필요한 물건들을 챙겼고,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아이의 옷가지와 장난감 등도 넉넉히 준비했다.
음식은 간단하게 구워 먹을 수 있는 소고기와, 아이 밥으로 간단하게 뎁혀 먹일 햇반+짜장을 준비했다. 매번 캠핑 때마다 간단하게 가자고 말은 해도 실제로 짐을 싸다 보면 짐은 몇 배로 늘어난다.
특히 아이를 데리고 외출 또는 외박을 할 때면 ‘혹시 모르니까’ 하는 생각으로 뭐든 넉넉하게 준비하다 보니 아이의 것들이 짐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래서 아기를 데리고 놀러 간다는 건 상당한 부지런함을 요하는 일일 수밖에 없다. 그렇게 우리는 결국 오늘도 트렁크에 짐을 한 가득 채워 부지런히 길을 떠났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