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즐겁꾼 Sep 19. 2021

인생 16개월 차 아들의 첫 캠핑 데뷔기(1)

엄마 아빠만 힘들었지 뭐


곰팡이가 피고 쥐가 갉아먹은 캠핑용품


출산과 육아로 당분간 사용할 일이 없어진 캠핑 장비들은 시댁의 시골집 창고로 모조리 들여보냈다. 그들은 그 속에서 자그마치 1년 반을 머물렀고, 이제 그만 나와도 된다는 우리의 부름을 받은 장비들이 마침내 세상 밖으로 나왔다.


꾸깃한 가랜드가 마치 그 세월을 증명하듯…


캠핑 장비들은 여기저기 먼지가 쌓이다 못해 곰팡이가 피기도 했고, 심지어 설거지통은 창고에 드나들던 쥐가 갉아먹었다. 1년 반, 애를 낳고 키우느라 바빠서 순식간에 흘러간 세월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공백이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었나 보다.



우리가 캠핑을 갈 수 있을까?


임신 기간 때도 그랬고, 아기를 낳고도 줄곧 언제쯤 다시 캠핑을 갈 수 있을지 궁금했다. 정확하게 얘기하면 궁금했다기보다 ‘가긴 갈 수 있나?’ 정도로 의문을 품었다는 표현이 더 맞겠다. 가끔 캠핑 카페에 들어가서 보통 언제쯤 아기와 캠핑을 다니기 시작하는지 검색해보면 백일 지나고 갔다는 사람도, 돌 지나고 갔다는 사람도, 세돌은 지나야 편하다는 사람도 모두의 이야기는 제각각이었다.


나는 뭘 기대하면서 ‘아기 몇 개월 캠핑’, ‘아기 캠핑 밤잠’ 등의 단어들을 조합해가며 산증인들의 글을 찾고 있던 것인가. ‘지금 당장 떠나세요!’라고 용기를 얻고 싶었던 걸까. 당연히 아기마다 성향이 다르니 아기를 가장 잘 아는 엄마 아빠가 적당한 때를 결정해야 한다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는 정답이었다.  


우리 아이의 경우 잠에 예민한 편이라 잠자리가 바뀌면 자지러지게 울기도 하고, 잠투정이 심해지면 토를 할 지경으로 울 때가 있어서 여기가 우리 집이란다~ 하고 텐트를 펼쳐 들어가서 자라고 한다면 날 어이없게 쳐다볼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우리 아이는 순순히 그리고 호락호락하게 낯선 텐트 안에서 하룻밤을 보내주지 않을 것이다. 나는 꽤 확신에 가득 찬 추측을 하며 우리에게 캠핑은 아직 때가 아니라고 고개를 절레절레 젓기를 몇 차례 반복해왔었다.


아침에 한 번, 점심에 한 번, 저녁에 한 번 매일같이 외출을 재촉하는 아이 덕에 힘든 육아가 이어지고 있었다. 무더운 여름날 마스크를 끼고 땡볕의 놀이터를 누비다 보면 정녕 여기가 지옥인가 싶고, 그렇게 놀았는데도 집에 안 간다는 아이를 보면서 ‘너는 놀이터에 텐트라도 쳐놓고 자야 만족하겠니?’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때 ‘아아아니! 그게 캠핑 아냐???!’라고 새삼스러운 깨달음을 얻은 것이다.


캠핑이 별 건가요!


그렇게 우리는 임신 16주를 끝으로 접어뒀던 캠핑을 아이가 태어난 지 16개월이 되어서야 다시 시작하게 됐다. 캠핑에 적당한 때를 잡았다기보다 육아에 지쳐 에라 모르겠다 하는 무모함이 이상한 추진력을 발휘한 것 같다.



캠핑은 트렁크 한가득 짐을 싣고


캠핑 장비들도 시댁에 있고, 만약 아이가 텐트에서 잠을 못 자고 심하게 울면 철수해야 하기 때문에 캠핑장은 시댁이 있는 충북 단양으로 정했다. 코로나 시국에 사실 캠핑을 가는 게 조심스러운 부분이라, 가급적 많은 사람들과 마주칠 일이 적은 평일로 캠핑 일정을 잡았다.


날짜와 장소는 정했는데, 뭐부터 준비해야 할지 약간 막막했다. 캠핑을 너무 오래 쉰 탓에 감이 떨어지다 못해 없어졌다. 임신했을 때 커플로 캠핑의자를 구입하면서 아기가 태어나면 아기 것도 사주자고 남편과 약속을 했었는데, 먼저 그 약속부터 이행하기로 했다. 두 살 베기 아기가 의자에 얌전히 앉아있을 리 없지만, 그래도 의자는 예쁘니까 괜찮다(?)


앙증맞은 사이즈의 헬리녹스 체어원 미니


기존에 우리가 사용하던 텐트는 백패킹용 텐트라서 셋이 잠을 자고 생활하려면 조금 더 넓은 텐트가 필요했는데, 그렇다고 섣불리 텐트를 사기에 아이가 앞으로 캠핑을 잘 다닐 수 있을지 확실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래서 오래돼서 잘 쓰지 않지만, 기능은 멀쩡한 텐트부터 일단 가지고 가보기로 했다.


그 외에도 타프, 매트, 침구류, 테이블, 의자, 가스버너, 코펠 등 필요한 물건들을 챙겼고,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아이의 옷가지와 장난감 등도 넉넉히 준비했다.


체크리스트


음식은 간단하게 구워 먹을 수 있는 소고기와, 아이 밥으로 간단하게 뎁혀 먹일 햇반+짜장을 준비했다. 매번 캠핑 때마다 간단하게 가자고 말은 해도 실제로 짐을 싸다 보면 짐은 몇 배로 늘어난다.


특히 아이를 데리고 외출 또는 외박을 할 때면 ‘혹시 모르니까’ 하는 생각으로 뭐든 넉넉하게 준비하다 보니 아이의 것들이 짐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래서 아기를 데리고 놀러 간다는 건 상당한 부지런함을 요하는 일일 수밖에 없다. 그렇게 우리는 결국 오늘도 트렁크에 짐을 한 가득 채워 부지런히 길을 떠났다.



(다음 편에 계속)

작가의 이전글 맘마는 과학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