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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의미의 조각일 뿐이다!

캠핑카 세계 여행 에세이 87 - 그리스 아테네

by 류광민

그리스의 자부심

아테네 여행 3일째. 첫날부터 어제까지 계속되었던 아내와의 싸움을 잊어버리라고 하는 듯 오늘은 날씨가 매우 좋다. 날씨와 일정 때문에 미루어왔던 아크로폴리스를 가는 날이다. 오늘은 아크로폴리스 밑에 있는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을 오전에 가고 오후에는 아크로폴리스를 다녀오는 일정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하루 종일 아크로폴리스이다.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은 유적지 위에 세워져 있는 박물관이다. 그리스의 자랑 고대 그리스 유적지를 품고 있다는 말이 더 적합할 듯하다. 왜냐하면 아크로폴리스, 특히 파르테논 신전을 품을 수 있도록 건물이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느낌은 입구에서부터 느낄 수 있다.

표를 끊고 박물관 입구에 들어가면 큰 회랑 같은 공간이 나오는데 바닥이 유리로 되어 있다. 그 양 옆으로 많은 유적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 회랑 끝 쪽에는 조명을 가득 받아 빛나고 있는 대형 전시물이 있다. 그 회랑을 지나갈 때면 아크로폴리스 유적들이 왕이 지나가는 길을 호위하는 듯한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관람자는 왕을 알현하러 지나가는 방문객이 된다. 그래서 박물관은 전시 공간 자체가 일종의 아크로폴리스이며 왕궁 혹은 신전처럼 느껴진다. 이 건물을 지을 때 건축가가 가장 심혈을 기울여 디자인 한 곳이 있다면 바로 이곳일 것으로 생각이 들 정도다.

따라서 내 눈에 이 박물관은 아크로폴리스의 유적을 최대한 느낌을 유적지 위에 세워진 또 하나의 아크로 폴리스이며 박물관 건물 자체가 그리스를 대표하는 기념물이자 예술품이다. 그럼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이 생긴다.


"그리스는 돈이 정말로 많이 들었을 텐데 박물관 건설에 이렇게 많은 정성을 들였을까?"


나의 결론은 훌륭한 고대 유적지를 가지고 있는 그리스의 자존심을 높여야만 하겠다는 의지의 산물이 바로 이 박물관이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유적지 위에 아크로폴리스를 품은 박물관을 지은 것이리라. 이것은 전적으로 나의 혼자 생각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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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내부와 2층의 카페에서 만난 참새들. 새들이 테이블까지 와서 먹을 것을 달라고 한다.

아크로폴리스는?

우리에게 민주주의 공간으로 알려져 있는 아크로 폴리스는 정말 어떤 곳이었을까? 아크로폴리스의 역사를 보여주는 모형을 보면 초기에는 주로 군사적 목적의 성곽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 시기를 거쳐 성 안에 신전들이 들어서고 기존의 성곽 외부로 외성이 다시 만들어진다. 그리고 다양한 건축물이 추가로 들어서고 외성 구역에 원형 극장을 포함한 다양한 시설이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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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크로폴리스 발전사를 잘 보여주는 모형

박물관을 나와서 처음 마주하게 되는 작은 원형 극장 디오니소스 극장과 성벽 아래 공간에 세워진 신전 터를 지나 경사를 올라가면 원형을 제대로 볼 수 있는 헤로데스아티쿠스 음악당을 만나게 된다. 디오니소스 극장이 소극장이라면 헤로데스아티쿠스 음악당은 대형 극장의 역할을 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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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곽 하단에 세워진 신전 터와 디오니소스 극장. 등받이까지 있는 대리석 의자가 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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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로데스아티쿠스 음악당과 니케 신전이 있는 입구와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문

헤로데스아티쿠스 음악당을 뒤로하고 아크로폴리스로 올라가기 위한 입구로 올라가 보면 왼쪽에 승리의 여신으로 유명한 니케(혹은 나이키) 신전이 눈에 들어온다. 군사적 목적의 성에 승리의 여신 니케이 있다는 것은 자연스러워 보인다.

성이 만들어졌을 초기에는 많은 군사들과 무기가 드나들게끔 만들었을 문이지만 아크로폴리스가 발전하면서 들어가는 문은 고급스러운 대리석으로 변화된 듯하다. 아직도 매우 세련된 느낌을 유지하고 있는 문과 거대한 기둥 사이의 길을 따라 아크로폴리스로 들어간다.

아크로폴리스 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파르테논 신전이 한눈에 들어온다. 파르테논 신전은 고대 아테나의 수호 여신에 봉헌된 신전이다. 파르테논 신전의 뛰어난 예술성으로 그리스를 상징하는 유적물이다. 지는 해가 비추는 있는 파르테논 신전은 매우 신비로운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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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크로폴리스로 들어가는 입구와 파르테논 신전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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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렉토니우스 신전과 바람의 탑 설명문

12월이라 해가 일찍 지기 시작한다. 파르테논 신전 앞에 6명의 처녀 여신상이 기둥으로 조각되어 있는 에렉토니우스 신전에도 석양의 햇살이 가득하다. 무언가 완성되지 않은 듯한 신전이 오히려 이색적으로 보이는 곳이다.

아크로폴리스는 군사용 성곽에서 수호신을 모시는 신전의 공간이 정치적인 공간으로 발전한 곳 그리고 지금은 그리스의 자긍심이며 자부심인 곳으로 발전한 곳이었다. 나에게 공간은 시대에 따라 그 용도와 사회 정치적 의미가 이렇게도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잘 보여주는 곳이었다. 민주주의 정치적 공간이라는 의미는 아크로폴리스가 가질 수 있는 의미 중 아주 작은 조각일 것이다.

오늘은 부부 싸움 없이 아테네 여행을 잘 끝냈다. 이제부터는 어제 주문한 부탄가스 캔을 받으러 가야 한다. 아크로폴리스를 내려오다 만날 수 있는 바람의 탑이 우리의 발걸음을 잠시 붙들었다. 이 탑은 풍항계, 해시계, 물시계 역할을 했다고 하는데 대리석으로 만든 팔각형 건물로 매우 보기 드문 양식의 건축물이다..

이제 내일이면 아테네를 떠나 다음 목적지로 가야 한다. 그러나 아직 우리는 다음 목적지를 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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