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핑카 세계 여행 에세이 86 - 그리스 아테네
아테네 도착 2일째 날, 아침에 비가 내린다. 오늘 일정을 어떻게 하지. 비와 상관없이 관람할 수 있는 그리스 최고의 고고학 박물관인 그리스 고고학 박물관으로 향한다. 구글 지도에서 검색된 대로 전철을 타고 신티그마 광장에서 버스를 갈아탄다.
구글 덕분에 무사히 잘 도착했다. 박물관 문이 열리려면 아직 5분 남았다. 문이 열리자 아내는 입구부터 안내 설명문을 정독한다. 전시관 1개도 다 둘러보지 못했는데 들어온 지 30분 이상이 지나 가고 있다. 아내와 관람 속도를 맞추어 보려고 노력하지만 계속 아내와 서로 떨어져 관람 중이다. 아내와의 관람 속도를 맞추기 위해 설명문을 열심히 읽으려고 노력해 본다. 그런데 허리가 아파온다. 다리를 최대한 벌려 가면서 설명문을 읽어 내려간다. 커다란 효과는 없다. 그런데도 아내는 저 멀리에서 아직도 열공 중이다. 박물관 관람 내내 아내와의 이 차이는 좁혀지지 않았다.
1층에 있는 미케네 시대의 황금 마스크와 황금 장식품들이 반갑게 느껴진다. 아마 며칠 전에 미케네 유적지를 다녀와서 그런 것이겠리라.
전시관 한쪽에서는 미에 관한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이 중에서 가장 눈길을 끌었던 것은 비너스 조각상이었다. 정말 살아있는 듯한 얼굴 표정과 자연스러운 근육과 자세, 진짜 천과 같은 옷감의 표현. 고대 시대의 조각품이 현대에 만들어졌다고 해도 놀라울 일이 아니다. 조각 도구들이 지금보다 덜 발달했을 텐데 말이다.
아내의 열공 덕분에 박물관 2층까지 보고 나니 벌써 점심시간이 넘어서고 있다. 지하에 있는 박물관 카페에서 샌드위치와 커피로 점심을 해결했다. 가지고 온 빵도 곁들여 먹으면서. 카페 창문 너머 정원에도 고대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고고학 박물관을 나와 걸어서 아크로폴리스와 아테네 시내를 조망할 수 있는 Lycabettus hill까지 가기로 아내와 합의했다. 오후 2시가 넘었기 때문에 아크로 폴리스를 보러 가기에는 늦은 시간이다. 갈 수는 있지만 충분히 둘러볼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그 대신에 선택한 장소이다.
아테네 시내에서 언덕길로 올라가니 좁은 도로는 전부 일방통행로이다. 모든 길이 자동차로 꽉 막혀 있다. 정말 교통 대란 수준이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Lycabettus 언덕으로 가는 갈림길이 나온다. 한 방향은 케이블카를 타러 가러 가는 길이고 한 방향은 걸어 올라가는 길이다.
아내에게 묻는다. 어떤 길로 가면 좋겠느냐고. 그런데 오늘 또 사도 바울이 설교를 했다는 아레이오스 파고스 언덕에 가서 석양을 보잔다. 지금 4시다. 박물관을 나와 한 시간가량 걸어왔다. 지금까지 힘들게 왜 이곳으로 걸어온 거지. 화가 난다. 분명 아까 언덕에 가자고 했는데 말이다. 그러면서 자기가 한 말에 내가 화를 낸다고 화를 낸다. 정말 화 낼 사람이 누구인데.
어제저녁에 아내와 부부 싸움을 했었기 때문에 더 화를 내면 안 될 듯하다. 화를 참으며 서로 합의한 내용을 정리해 본다.
"박물관 나올 때 Lycabettus 언덕에 가기로 합의했는데 이곳과 파고스 언덕이 같은 방향인 줄 알았어"
"내일 아크로폴리스 갈 거잖아. 그러면 자연스럽게 파고스 언덕에 갈 수 있어. 오늘 무리하게 갈 필요는 없지 않을까?"
"아니야. 나는 한 지역을 여러 번 가보는 게 좋아. 그러니 오늘 가고 또 내일 또 가고 싶어!"
"아니 그러면 처음부터 파고스 언덕에 가자고 했어야 하지?"
"그래, 미안해. 내가 방향 감각이 없어서 그런 것이지 화를 풀어. 응--"
아내가 평상 시 하지 않던 애교로 나보고 화를 풀라고 한다. 그러나 어찌 화가 쉽게 풀리겠는가. 그래도 아내가 가자고 하는데 가야지. 긍정적으로 생각해보면 아내 덕분에 아테네 시내 이곳저곳을 잘 다녔다.
신티그마 광장을 거쳐 파고스 언덕에 올랐다. 작은 돌 바위이다. 날씨가 좋지 않아 바람이 세차다. 아내가 생각하던 석양이 비추는 풍경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오랜 시간 서 있기 힘이 든다. 지금 시점에 여행하기 힘든 시점인지 아니면 대도시 여행이 힘든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제부터 우리 부부는 작은 일로 싸우고 있다. 이런 힘든 일을 통해 부부가 서로 상대방의 깊은 마음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힘을 키우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오늘도 힘든 하루였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들었지만 아내의 소원을 풀어주고 기다리는 아톰에게로 돌아왔다. 내일은 서로 행복하게 여행하고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