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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왜 싸웠을까?

캠핑카 세계 여행 에세이 85 - 그리스 아테네

by 류광민

무료 정박지 찾아 떠나는 고난!

코린토스를 오후에 출발한 아톰은 고속도로를 신나게 달린다. 고속도로를 빠저 나와 이제 그리스 수도 아테네로 들어가려나 보다. 오늘 정박하려고 한 아테네 도심까지 10km가 남았는데 차가 움직이질 않는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다 겨우 도심 가운데로 진입했다. 아테네 도심에는 차들이 엄청 많은데 도로까지 복잡하다.

IMG_1915.jpg 아테네 도심의 교통 혼잡. 길가 주차와 많은 차량으로 도로가 혼잡하다.

고속도로를 빠저 나온 지 한 시간 넘게 걸려 국립정원 입구 주차장에 겨우 도착했다. 이곳을 선택한 이유는 아테네 주요 관광지로 걸어서 접근이 가능한 곳이며 밤에 조용한 곳이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공원 주차장에는 캠핑카를 정박시킬 만한 곳이 없다. 해가 지기 전에 서둘러 제2의 후보지로 다시 출발해야 한다.

날이 밝을 때 정박지를 찾아야 한다. 제2의 후보지는 아테네 국립정원 입구에서 도시 외곽 쪽으로 4km 정도 가야 한다. 다행히 20여분 안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4시가 되었다. 조금 있으면 해가 진다.

무료 정박지인 공용 주차장은 큰길에서 1km 정도 들어온다. 들어오는 길에는 그리스 정의부(Department of Justice- 우리의 법무부)와 같은 행정부가 있어서 치안 문제는 걱정 안 해도 될 듯하다. 이곳 주민들이 주차해 놓은 캠핑카도 보이고 장기 주차해 놓은 트럭들도 보인다. 큰 도로에서 가로등이 없는 길을 10여분 들어와야 하는 불편은 있지만 차 소리가 안 나고 가끔 산책하는 주민들의 이야기 소리만 들릴 정도로 조용하다. 공공 화장실은 없지만 이 정도면 도심의 무료 정박지로서는 O.K. 우리는 이곳에서 3박을 보냈다. 이렇게 복잡한 아테네 도시에서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조용한 주차장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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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늦은 시간에 도착한 아테네 무료 정박지의 저녁 풍경

저녁에 아레이오스파고스 언덕을 가자는 아내

해가 지기 전에 정박지에 도착한 나는 마음이 놓인다. 항상 대도시에 들어갈 때에는 신경이 엄청 쓰인다. 오늘 다행히도 큰 문제없이 좋은 곳에 도착했다. 이제 조금 쉬어야겠다.

그런데 아내는 바울이 선교활동을 했다는 아레이오스파고스 언덕에 다녀오자는 것이다. 오늘 날씨가 좋으니 석양을 보잔다. 내 마음이 복잡해진다. 이제 30분 있으면 해가 진다.


"아니 지금 거길 어떻게 가냐고요!"


내 머릿속에서 일단 그곳까지 가는 버스표나 전철표를 어디에서 사야 하는데 이곳에서 걸어 나가 알아보고 또 표를 사고 나서 버스나 전철을 타고 가서 또 언덕까지 올라가야 하는데 이게 30분 안에 가능할까?

지금 출발해서 30여분 안에 도착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든다. 왠지 아내의 석양을 보고자 하는 이야기가 '석양 타령'으로 들린다. 왜 아내의 제안이 내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지 모르겠다. 그냥 자기의 희망을 이야기한 것인데 말이다.


슈퍼를 찾아라!

일단, 아내에게 오늘 석양 보러 가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니 슈퍼에만 가자고 설득했다. 다행히도 그렇게 해서 슈퍼에서 필요한 물건만 사러 나가기로 했다. 그런데 주차장에서 1km 정도 떨어져 있는 큰 길가로 나와보니 슈퍼 간판이 보이지 않는다. 주변에서 찾아야 한다. 나는 위로 가자고 하고 아내는 아래로 가자고 한다. 이탈리아 아웃렛에서 벌어졌던 일이 또 한 번 발생했다. 아내가 강하게 주장하니 아래로 내려가 본다. 그런데 슈퍼는 나타나지 않는다. 주민들이 살 것 같은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 보아도 신선식품을 구입할 수 있는 슈퍼는 보이지 않는다.

아테네로 들어오기 전에 검색해 두었던 아시아 슈퍼가 근처에 있어서 그곳으로 방향을 틀었다. 아내가 조금 불평을 했지만 귀한 한국 라면과 일본 갓츠오브시를 포함해서 자그마치 25유로 어치나 샀다. 나는 기분이 좋다. 일단 급하게 저녁은 할 수 있다는 마음이 든다.


부탄가스 캔을 발견하다

다시 아톰에게로 돌아오는 길을 잡는다. 이때 갑자기 우리에게 선물이 나타났다. 그토록 찾아 헤매었던 부탄가스캔(러시아를 나와서부터 지금까지 약 70여 일 이상)이 진열장에 있는 가게가 있는 게 아닌가? 가정용 LPG 가스통을 교환하여 판매하는 곳이다. 20캔에 50유로라는 것을 깎아서 44유로(개당 2.2유로 약 3천 원)에 합의했다. 별도 주문해야 하기 때문에 내일 오란다. 뜻하지 않게 부탄가스 캔을 사게 되어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모르겠다. 신나는 마음으로 아톰이 있는 주차장으로 향한다.

이제 큰길의 신호등을 건너면 아톰으로 가는 길이다. 그런데 아내가 왜 슈퍼 안 가냐고 화를 낸다. 아내는 내가 자기의 의견을 무시하고 인상을 찌푸리고 있다고 화를 내는 게 아닌가.


' 아니, 지금 늦은 밤이 되었고 자기가 가자고 한 방향으로 갔었지만 슈퍼를 찾지 못했잖아. 그럼 어떻게 하란 말이야?'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꾹 참고 다시 말한다.


"그래, 그럼 저 쪽으로 다시 가보자."


아내의 독특한 걱정

그 방향은 아까 내가 가자고 한 방향이었다. 다행히도 100미터 정도 올라가니 커다란 슈퍼가 나타난다. 신선식품을 많이 파는 우리가 원하는 바로 그 슈퍼였다.

그 슈퍼로 들어가려 하는데 아내의 제안이 나를 당황스럽게 한다.


"자기야, 지금 사 온 물건을 아톰에게 가져다 놓고 다시 오자!"

"아니, 왜 아톰에게 갔다 오자는 거야?"

"이 슈퍼에서 사야 할 배추나 무, 감자 등이 무거울 거잖아!"


참, 내. 무거우면 얼마나 무겁겠는가. 아내는 무거운 짐 때문에 나를 걱정해서 하는 제안이지만 나에게는 그런 제안이 더 힘들게 한다. 사실 아내의 무거운 짐(?)에 대한 이상한 걱정은 여행을 떠나기 전에도 있었지만 평상시 상황에서 큰 문제를 일으킨 적은 없었다.

그러나 오늘은 나에게 상황이 다르다. 아톰까지 갔다 오려고 하면 최소한 2km를 걸어야 한다. 빨리 걸어야 30분이다. 오늘 오전에 코린토스 여행을 하고 나서 장거리 주행, 복잡한 도심에서 신경 쓰이는 운전, 정박지 찾는 문제로 신경을 많이 썼던 하루이고 조금 전까지 한 시간 가량 슈퍼를 찾아 돌아다닌 후가 아닌가. 나는 빨리 돌아가서 쉬고 싶다. 나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아니 왜 30분을 더 걸어 다니라는 말이야?'


이런 생각에 저절로 한숨이 나왔을 것이고 불편한 내 심기가 얼굴에 드러났을 것이다. 그런 내 얼굴을 보고 아내가 정색을 하고 화를 낸다.


"왜 자기는 나를 무시해?"

" 내가 언제 자기를 무시했다는 거야?"

"아니 지금 얼굴에 나를 무시하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잖아?"


나는 내 기분이 안 좋은데 밝은 얼굴로 이야기할 수는 없지 않겠느냐고 항의해본다. 다행히도 아내가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어서 슈퍼에서 야채 같은 무거운(?) 물건을 사들고 아톰에게로 돌아왔다. 무거운 비닐 백만큼 오늘 우리 마음도 무겁다.

사실 이번 부부 싸움의 근본 원인은 무거운(?) 야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소한 차이에 대하여 수용할 수 있는 여유가 나도 그렇고 아내에게도 없었다는 점에 있다. 부부가 장기간 여행을 잘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적절한 기간에 적절한 휴식을 취해야 하는데 그동안 그렇지 못했던 것이다. 여행 계획을 세울 때부터 적절한 휴식의 중요성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지만 실제 여행에서는 일정에 매몰되다 보니 무리한 여행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그날 밤까지도 나는 우리 부부가 하찮은 일로 감정을 드러내 놓고 싸웠는지에 대하여 깨닫지 못했다. 그 깨달음은 며칠 후 아테네 여행 과정에서 일어난 몇 차례의 더 큰 부부 싸움을 하고서야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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