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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 존재에 대한 의존

캠핑카 세계 여행 에세이 84 - 그리스 고린토스

by 류광민

환락의 도시 고린토스

고대 고린토스 뒤에는 아크로(도시의 가장 높은 곳이라는 의미) 고린토스 산이 있고 그 아래로는 펠로폰네소스 반도가 시작되는 고린토스 운하를 두고 양쪽에 바다가 있다. 터키 방향의 에게해와 이탈리아 방향의 이오니아 해로 직접 연결되는 고대 시대에 해상 교통의 길목이었던 곳이다. 이러한 위치 때문에 인구 7만 5천여 명이 살았을 정도로 최고의 번영을 누려 환락의 도시로 알려졌던 도시가 바로 고린토스이다. 고린토스는 로마에 의해 파괴되었다가 다시 로마에 의해 재건될 정도로 정복하고 싶은 곳이기도 하였지만 번영을 향한 욕망의 도시이기도 했다. 현재 고린토스 운하 근처에는 과거 배를 운하로 이동시켰던 흔적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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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니아 해까지 연결되었던 성곽 유적지. 그리고 두 바다를 연결하려고 했던 운하 유적지와 설명문


무심한 인연들

고대 고린토스 유적지에는 아침 일찍부터 관광객들이 들어오고 있다. 그중에 상당 수가 한국 관광객이다. 그동안 이탈리아 품페이부터 이곳까지 한국분을 만나지 못했던 것 같다. 괜히 반갑다. 그렇지만 서로 무심한 채 지나가는 인연들이다.

과거의 고린토스를 만나기 위해서는 먼저 박물관에 들어가야 한다. 박물관에는 다양한 조각상과 그림들도 볼 수 있다. 동시에 고대 고린토스 도시 모형도 볼 수 있다. 아크로 고린토스 산에는 난공불락의 성이 있고 그 산 아래 경사면을 따라 해안가 항구 앞까지 도시 성곽으로 길게 둘러싸인 도시가 바로 고대 고린토스다. 지금 박물관이 있는 유적지는 고대 고린토스 도시의 상부 지역 정도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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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에 대한 강한 의존의 무서움

박물관 입구에서부터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기원전 6세기경에 만들어진 아폴론 신전이다. 아폴론 신전에는 위에서 아래로 바위를 파서 만든 여러 개 긴 줄이 새겨져 있는 도리아식 기둥 7개 만이 남아 있는데도 불구하고 뭔가 시선을 잡아 끄는 매력이 있다.

20181212_103955.jpg 고린토스의 아폴론 신전은 매우 정결하고 단정하지만 화려해서 무엇인지 모르는 매력이 있다. 그 매력 때문인지 유적지 내에서 항상 시선을 끈다.

이 기둥은 여러 개의 원형 돌을 쌓아 올린 것이 아니라 하나의 돌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스 첫 여행지였던 고대 올림픽 유적지의 제우스 신전의 기둥은 모두 여러 개 원형 돌을 쌓아서 기둥을 만드는 방식이었다. 그런 점에서 보면 하나의 돌로 거대한 기둥을 만든 것은 대단한 일이다.

대형 기중기도 없던 옛날에 그 큰 돌을 어디에서 구했으며 어떻게 가공하고 운반하고 세우고 했는지 상상이 안 간다. 그런 점에서 고린토스에 살았던 사람들의 신을 향한 또는 신에 의존하고자 하는 열망이 얼마나 강했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무엇인가에 강하게 의존하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해 준다. 신에 대한 강한 신념이 이러한 상상할 수 없는 유적을 만들었겠지만 그 또한 사람들의 생각을 고정시키는 역할 또한 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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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지 어디에서나 잘 보이는 신전인 아폴론 신전

아폴론 신전은 고대 고린토스 도시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며 가장 높은 곳에 있다. 이러한 위치와 높이 때문에 유적지 어디에서나 시선을 사로잡는다. 참, 절묘한 위치이다. 그 아폴론 신전 주변에 화려한 상가와 도로들이 빼곡하게 자리 잡고 있다.

박물관을 빠져나오면 여기저기에 화려한 문양의 고린토스식 문양이 새겨져 있는 파편들을 발견할 수 있다. 마치 교과서 속으로 들어와 있는 듯하다.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누나인 옥타비아에게 헌정된 옥타비아 신전이 박물관 뒤로 보인다. 그 외 많은 가계나 아고라의 흔적들이 옛날의 모습을 상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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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하지만 웅장한 느낌의 옥타비아 신전과 옛날 가계들

시지프 신화의 땅

지진으로 폐허가 된 이곳에 아직도 화려한 옛날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유적지가 있다. 마르지 않는 샘으로 알려져 있는 페이레네 샘이다.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지만 아직도 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샘 안에는 6개의 물 저장소가 있고 샘에서 나오는 물이 어딘가로 흐른다. 이 페이레네 샘은 시지프의 아들 벨레로폰테스가 괴물을 무찔러 영웅이 될 때 탔던 하늘을 나는 천마 페가수스를 만났던 자리라는 설화를 가지고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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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리레네 샘. 아직도 물이 흐른다.

고린토스는 다른 고대 그리스 도시들처럼 신화의 도시이다. 고린토스를 뒤에서 막아주고 있는 산은 바위 산에서 굴러 떨어진 돌을 끊임없이 산 위로 올려야 하는 벌을 받은 시지프스 신화 속의 산이다. 그러니까 고린토스의 시조는 시지프스인 것이고 시지프 손자의 땅인 것이다. 샘물이 아직 흐르고 있듯이 시지프의 신화 또한 이 유적지에 계속 살아있는 듯하다. 그리스는 신화와 함께 숨 쉬는 땅이다.

아폴론 신전, 시지프스 신화가 아직도 존재하는 땅에서 나는 어쩌면 인간은 나약하기 때문에 항상 강한 존재에 의존하며 살아온 존재인지도 모르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화려한 레카이온 도로

페이레네 샘 앞에는 아주 반듯하게 생긴 돌로 잘 포장된 도로가 있다. 이 길 이름이 레카이온 도로인데 이 도로 옆으로 화려했을 상점들이 있었을 유적이 줄지어 서 있다. 지금으로 치면 화려한 아케이드와 같은 성격의 공간이다. 그 길을 따라 나가면 밖으로 나가는 문이다. 과거에는 그 길을 따라 가면 항구로 연결되었다. 이 길을 따라 많은 상인들과 물건들이 드나들었을 것이다. 우리도 그 길을 걸어 나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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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로 잘 포장된 도로 주변에 화려한 상점들이 있었던 레카이온 도로. 페이레네 샘 앞에 있다.


고린토스 운하를 만나다!

고린토스의 또 다른 명물과 인사하기 위해 길을 나선다. 세계 3대 운하라고 하는 고린토스 운하가 바로 그 주인공. 운하의 길이는 6.5km 정도 되고 물까지의 높이는 약 80미터 정도 된다. 과거에는 수많은 배들이 다녔지만 지금은 큰 배들이 다닐 수 없어서 작은 배들만 다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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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로 운하를 건너는 다리 중 신 고린토스로 갈 수 있는 길로 향한다. 다리를 건너자 주차장이 있는 식당이 나타난다. 이곳에서 토스트와 커피로 간단하게 점심을 해결하고 운하까지 걸어간다.

차가 다니는 도로 옆으로 인도가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걸어 다닌다. 우리도 아니 아내가 용기를 내어 건너가기로 했다. 이 다리에는 성수기 때 번지점프도 하는 곳이 있다. 지금은 영업하지 않는다.

다리 가운데에서 바라보면 양쪽 바다가 다 보인다. 2천 년 동안 이 운하를 파려고 했던 이유가 이해되는 장면이다. 이렇게 쭉 오면 되는데 운하가 없었을 때에는 뽕나무 잎 모양의 펠로폰네소스 반도를 돌아다녀야 했을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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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고 있지만 공포에 떨고 있는 아내.

나의 고향에 있는 안면도가 생각난다. 사실 안면도는 섬이 아니었는데 고린토스 운하와 같은 위치 때문에 잘려 섬이 된 곳이다. 무서움을 참고 있는 아내와 함께 기념사진 찍고 다시 출발해 보자.

이제 고속도로를 타고 아테네로 출발한다.

일주일간의 펠로폰네소스 여행이 마무리되는 순간이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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