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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의 미스터리

캠핑카 세계 여행 에세이 82 - 그리스 미케네

by 류광민

달빛 기행

그리스 최고의 원형 극장 에피다우르스를 떠난 우리는 다음 목적지 미케네 문명의 발생지로 향한다. 원래 계획은 어제 머물렀던 나플리오에서 하루 더 정박하고 나서 아침에 미케네로 가는 것이었다. 그 계획을 직접 미케네로 가자는 아내의 희망대로 바꾸었다. 그런데 미케네도 다른 유적지와 마찬가지로 11월 이후에는 3시까지만 문을 연다. 그러나 우리가 도착한 시간은 벌써 4시.

산 위에 있는 미케네 유적지의 넓은 주차장에는 아무도 없다. 표 판매소 앞에 차 한 대만이 서 있다. 직원들 대신에 고양이들과 개들이 우리를 대신 반겨준다. 우리처럼 왔다가 고양이와 개들에게 먹이만 주고 가는 분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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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없는 텅 빈 미케네 유적지 주차장. 비수기 철에 3시면 문을 닫는다.

주차장 언덕 위에 올라가면 저 아래 넓은 평야지대가 보이고 그 아래 어제 우리가 편하게 잠을 잤던 나플리오가 보인다. 젊은 시절 교과서에나 보았던 미케네 문명의 발생지에서 하루 밤을 보내야 한다. 서쪽으로 해가 지기 시작하면서 따사로운 붉은 햇빛이 유적지를 밝혀준다. 그리고 유적지에 조명이 켜진다.

나는 아내와 서울의 창덕궁 달빛 기행 프로그램에 참가한 적이 있었다. 그때 조명이 비친 창덕궁에서 조선시대로 들어간 것 같은 미묘한 감정을 느낀 적이 있다. 오늘 밤이 바로 그런 느낌을 받는다.

산 위로 바람이 세게 불었는데 밤이 될수록 바람도 잦아들고 우리 주변을 서성이던 고양이도 개도 집으로 돌아간다. 정말로 주차장에 아톰과 우리 이외에는 아무도 없다.


소박한 박물관

전날 매표소 앞 주차장에서 정박을 했기 때문에 문을 열자마자 표를 사서 들어갔다. 입구에서 왼쪽으로 가면 박물관이 있고 오른쪽으로 가면 성의 정문인 유명한 사자의 문이 나온다. 우리는 박물관으로 들어간다. 박물관에는 반드시 화장실이 있다. 아침에 해결하지 못한 일도 해결해야 하니까 말이다.

교과서에 실린만한 유명한 문명의 발생지이지만 박물관은 소박하다. 그럴 만도 한 게 여기에서 발굴된 주요 유적물은 아테네 고고학 박물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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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한 느낌의 박물관이다. 화려한 미케네 황금 마스크는 아테네 박물관에 있다.


원형 무덤의 발견

박물관을 나와 사자의 문 방향이 아니라 성 외부 쪽으로 나 있는 작은 도로를 따라 올라가 본다. 성 밖에는 달걀 모양의 원형 무덤이 있다. 어떻게 이런 무덤을 만들 수 있었을까가 궁금해진다. 그 건축 기술의 정밀함에 감탄이 저절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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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문 앞에 있는 원형 무덤. BC 15세기 초에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요새 같은 왕궁 터

원형 무덤을 뒤로하고 산 위로 올라가면 유적지를 둘러싸고 있는 산과 유적지 사이에 깊게 나 있는 계곡이 보인다. 험하고 높은 산을 배경으로 하고 언덕 산 사이로 협곡이 있는 곳. 이곳에서 보면 바다와 넓은 평야가 한눈에 들어온다. 멀리서 보면 산자락에 쉽게 접근이 가능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협곡이 성 뒤를 지키고 있다. 한마디로 요새로서의 모든 조건을 갖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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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의 뒷부분은 집단 주거지이다. 그 공간을 지나면 왕궁터가 나온다. 평야지대를 내려다볼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이 왕궁터를 중심으로 다양한 건물들이 들어서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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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은 어떤 의미일까?

왕궁 터를 지나 지그재그로 나 있는 탐방로를 따라 내려오면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유적이 나온다. 커다란 돌판이 2중으로 원형을 만들고 그 아래는 넓은 공간이 있다. 왕족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이런 무덤은 처음 보는 것 같다. 사자의 문 근처에 있는 원형 무덤과 더불어 이중 원을 가진 원형 무덤. 이 무덤의 완전한 모습은 지붕까지 원형이었을 것이다. 돌만으로 그런 모양을 만드는 것은 그리 쉬운 것이 아니다. 미케네 문명에서 원은 어떠한 의미를 지녔기에 이토록 힘든 무덤을 만들었던 것일까? 아마 죽은 이후의 세상에 대한 세계관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라고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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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천 년이 넘은 사자의 문

그 원형 무덤을 지나오면 미케네 유적지를 상징하고 있는 사자의 문이 나온다. 문을 만들었던 돌기둥이 웅장하다. 문 위에는 두 마리 사자가 조각되어 있다. 3천 년이 더 된 지금도 그 자리를 튼튼히 지키고 있다. 사자의 문 Lion Gate 위에는 두 마리 사자가 제단 위에 발을 올려놓고 머리는 기둥을 받치는 모습의 조각이 올려져 있다. 사자는 많은 문화에서 방어를 상징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니 아마 이 조각상은 왕국을 의미하는 제단과 기둥을 영원히 지키라는 뜻 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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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자의 문 근처 땅 속에 원래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는 원형 무덤이 있다. 미케네 유적 중에서 나의 관심을 가장 끈 무덤이다. 무덤 안에서 보면 커다란 돌들을 쌓아 올려 위 부분이 좁아지도록 만들었다. 마치 계란 모양이다. 2중의 석판이 둘러쳐져 있는 무덤도 원형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원형 무덤에서 여러 구의 유해와 함께 황금 가면과 황금장식들이 나온 것으로 보아 왕족들의 무덤이었을 것이다. 이 무덤들을 보면서 이 시대 사람들은 왜 이렇게 만들기 힘든 무덤을 만들었을까 라는 의문이 든다. 지금의 기술로 시멘트나 철을 사용하지 않고 똑 같이 만들라고 하면 쉬울까? 내 생각에는 그렇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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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사라진 왕국

이 유적지의 역사가 궁금해진다. 청동기 문명의 국가였던 미케네는 기원전 12세기 철기 문명의 도리아인의 이주와 해상 민족의 침입으로 멸망한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일부에서는 기후 변화로 인한 가뭄이 멸망의 원인이라고도 한다.

어찌 되었든 멸망 이전까지 화려했던 문명의 한 역사를 이끌었던 도시이다. 현재 남아있는 유적지 대부분 그 터들만 남아 있어서 과거 이 도시가 얼마나 화려했던 문명의 중심지였는지를 실감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원형 무덤이나 사자의 문이나 발굴된 유물을 보면 분명 이곳이 이 지역을 오랜 세월 다스렸던 왕국이었고 그 왕국의 건축 기술이 매우 뛰어났음은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왕국이 갑자기 역사 속에서 갑자기 사라진 이유를 아직도 분명하게 알지 못하고 있다. 인류의 문명과 운명은 힘의 역사만으로 설명되는 것은 아닌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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