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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시간, 놀라운 공간!

캠핑카 세계 여행 에세이 81 - 그리스 에피다우르스 원형 극장

by 류광민

거사를 치르다!

나플리오에서 30km 정도 동쪽으로 가면 나타나는 그리스 최고의 원형 극장 에피다우르스 로 가 본다. 오늘도 산길이다. 산길이지만 나름 도로 상태가 좋다. 우리는 문을 열기도 전에 유적지 앞 주차장에 도착했다. 조금씩 비가 내린다. 아무도 없는 주차장에 직원들 차량만이 오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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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시간이라 비어 있는 주차장과 주차장 주변을 배회하는 개들. 사람보고 짓지는 않는 착한 개들이다.

아침을 먹고 나서 공중 화장실에 들렀다. 깨끗하게 관리되고 있다. 그런데 아직 이용하는 사람들이 없다. 이탈리아 바리에서 그리스 파트라스로 넘어오는 배에서 샤워를 한 지 5일째. 머리가 조금 간지럽다. 용기를 내어본다. 화장실에 비치되어 있는 비누를 이용해서 머리를 감는다. 물론 찬 물만 나온다. 너무나 시원하다. 밖에서 기다리던 아내에게 나의 거사를 알린다. 여자 화장실 이용자는 남자 화장실보다 더 없다. 아내도 용기를 내어 거사를 치렀다. 서로 가쁜해진 마음으로 출발.


두 시간의 작은 음악회를 열다

우리의 첫 방문지는 박물관. 그러나 가장 우리의 관심 사항은 원형극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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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지의 명성에 비해 규모가 작은 박물관. 유적지 전체 지도를 보면 이곳에는 다양한 여가시설이 존재하였던 곳임을 확인할 수 있다.

원형극장은 박물관 위에 있다. 사진에서 많이 보았던 유적지라 새삼 새롭지는 않다. 그러나 극장의 좌석에 앉아보니 의외로 매우 안정감이 느껴진다. 고급 오페라 극장 의자에 앉은 느낌이다.

아내는 무대 가운데에 있는 원형 돌 위에 서 있다. 아침이라 오고 가는 사람도 별로 없다. 아내가 용기를 내어 노래를 한다. 정말로 잘 들린다. 나도 아내의 간청에 노래 한곡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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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형 극장 한 가운데 디딤돌 위에서 노래를 부르면 모두 가수가 된다. 팔걸이와 등받이 까지 있는 돌 의자는 특별석인 것으로 보인다.

잠시 후, 그리스 분들이 나의 노래에 박수로 화답해 준다.

그러더니 한분이 지갑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든다. 그리고 그 종이를 찢는다. 종이를 찢었던 분은 한국 회사에서 일한 적이 있다고 하며 우리를 반겨준다. 자기는 이곳에 세 번째 왔다고 하며 최고의 극장이란다. 종이 찢는 소리까지도 들린다고. 아까 종이 찢기는 데리고 온 친구에게 보여준 것이었다.

그분들은 갔지만 우리는 그곳에서 또다시 노래를 부르거나 다른 관광객들이 오면 박수로 노래를 청한다. 그중에 용기가 있는 몇 분들이 노래를 부른다. 노래 부르는 모든 사람이 훌륭한 가수가 된다. 노래가 끝나면 우리는 힘껏 응원의 박수를 친다. 이렇게 작은 음악회가 열린다. 그런 작은 음악회가 2시간 정도 열렸다.


또 다른 주인들

이 원형극장에는 또 다른 주인이 있다. 바로 그리스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개들과 고양이. 햇살과 아내의 노랫소리를 즐기며 원형극장 의자에 앉아 있는데 작은 고양이가 나의 무릎 위로 올라온다. 내가 가만히 있으니 무릎 위에 웅크리고 떠날 줄 모른다. 갑자기 서울 집에 있는 먼지(여행 떠나기 전에 들어온 작은 고양이)가 생각난다.

‘먼지도 잘 있겠지. 그런데 너 줄 먹이가 없다.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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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들과 개들이 사람들을 따라 다닌다.

점심이 아니면 더 있어도 좋을 것 같다. 정말 최고의 시간이고 장소였다. 다른 곳에서 만난 어떠한 원형극장보다 최고의 원형극장이었다. 지금도 이곳에서는 음악회가 열린다고 한다. 정말로 그 음악회에 참가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나를 놀라게 한 Katagogion

이제 나머지 유적지를 보러 가자. 복원 중인 멋있게 생긴 원형 신전도 나의 시선을 끈다. 그러나 어떤 것보다 나의 시선을 끌어당긴 것은 방문객들을 수용했던 시설 Katagogion 이다. 지금으로 말하면 호텔이나 리조트 같은 시설인데 방이 160개나 되었다고 한다. 이 규모면 지금도 꽤 규모가 있는 호텔이다.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2,500여 년 전에 이런 시설이 상설적으로 운영되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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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4세기에 지어진 치료 휴양시설이다. 160여개의 객실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니 그 규모에 놀라울 뿐이다. 내가 지금까지 본 가장 오래된 리조트 시설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런데 이러한 대규모 시설들은 왜 이곳에 있는 것이지 하는 의문이 든다. 바다 가도 아니고 주변에 넓은 평야가 있어서 큰 도시가 있었을 것 같지도 않은 이곳에 말이다. 관련 자료들을 찾아보니 이곳이 아폴로의 아들 아스클레피오스 신(Asklepios - 의술의 신)이 태어난 곳이란다. 그러니까 원형극장과 목욕탕, 숙박시설, 스타디움 등은 의술의 신의 힘으로 치료를 하기 위해 몰려온 사람들을 위한 시설인 것이다. 의술의 신의 힘을 빌어 목욕, 운동, 음악회를 통해 건강한 몸을 만들려고 했던 일종의 휴양 시설인 것이다. 다시 한번 신화의 땅 그리스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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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300여년에 만들어졌던 그리스 목욕탕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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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klepios(의술의 신)을 찬양하기 위해 축제를 벌였던 스타디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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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작업이 한창 진행 중인 Tholos. BC 4세기 중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고 사원의 중심지로서 역할을 담당하던 곳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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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유적들 대부분 복원작업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지만 이 유적들 만으로도 과거 이곳의 규모와 화려함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복원작업이 어느 정도 진척되면 그때는 또 다른 곳으로 변화되어 있을 것이다. 우리가 고대 시대라고 말하고 인식하는 시대에 정말로 어떠한 일들이 있었는지 가늠하기 힘들 것 같다.

화장실 수돗물로 캠핑카의 청수 통에 물을 보충하고 다시 힘차게 출발한다. 물이 바닥 나기 직전이었는데 다행이다. 캠핑카 여행에서 청수를 구하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캠핑장이나 캠핑카 지원 시설이 많지 않은 나라에서는 중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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