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핑카 세계 여행 에세이 79 - 그리스 미스트라스
고대 올림픽 유적지 다음으로 방문한 목적지는 미스트라스. 14-15세기에 Byzantine의 수도였던 미스트라스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스파르타 근처의 Taygetos 산에 있다. 이 곳에서 내려다보면 스파르타 평야지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미스트라스는 '모레아의 경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한때 비잔틴 황제의 거주지이기도 했던 곳으로 여러 민족의 지배를 받았던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이 때문에 미스트라스 유적지는 대부분 비잔틴과 관련이 깊다.
어젯밤 해변에서의 편안한 정박을 마치고 스파르타로 향한다. 가는 길 중간에 고속도로를 탄다. 최근에 만들어졌는지 다니는 차가 거의 없다. 중간에 휴식을 위해 들른 휴게소에는 직원 두 명만이 잡담을 하고 있었다. 우리가 들어가니 각자의 위치로 돌아간다. 따뜻한 커피를 시키니 맛있는 깻 빵(터키의 시밋)을 덤으로 준다. 빵 맛이 좋다. 그 후로 우리는 이 빵을 자주 사 먹었다. 유료 고속도로라 화장실은 무료이다. 우리가 휴식을 취하는 동안에 기름을 넣기 위해 찾아오는 차 두대가 다녀갔다. 여기도 참 여유롭다.
"그런데 직원 월급은 어떻게 주지?"
스파르타 시내를 거쳐 산 길로 올라가면 우리의 목적지인 미스트라스이다.
미스트라스 성 아래쪽 주차장에 아톰을 세운다. 주차장은 성 위쪽에도 있다. 아래에 주차를 하고 위쪽에서는 걸어 내려올 생각이다. 입장하기 전에 간단히 점심을 한다. 성 입구에 작은 티켓 판매소가 있다. 오고 가는 사람은 많지 않다. 점심을 먹고 나서 티켓 판매소에 도착하니 1시가 되었다. 그런데 3시에 마감이란다. 그리스 비수기에는 유적지가 3시에 마감인가 보다. 당황스럽다. 서둘러 다녀야 한다.
이곳은 평지가 아니라 산의 경사진 비탈면에 세워진 도시이다. 안내소 아줌마는 2시간이면 충분히 돌아볼 수 있다면서 안내지도에 동선을 표시해준다. 아줌마의 친절이 고마운 일이지만 너무 시간이 없다. 그래도 출발해야지.
우선 폐허가된 유적지에 아직도 사람이 살고 있는 곳으로 가보자. 성 안의 가장 안쪽에 있다. 수도원이다(Peribleptos). 14세기에 지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는 이 수도원에는 작은 성당이 있다. 성당 안에는 작은 촛불이 켜져 있고 아직도 예배당으로 사용되고 있는 듯하다. 곳곳에 훼손된 곳들이 있지만 화려한 색상의 프레스코화 그림들이 그 옛날의 영광을 보여주고 있다.
시간이 없지만 성당에서 스파르타 평야를 내려다본다. 과거 이곳을 다스렸던 왕들도 저 땅을 내려다보며 하나님의 은총으로 왕국이 영원하기를 기원했을 것이다.
수도원에는 아직도 수돗물이 나오고 있다. 이런 수도시설은 수도원에만 있는 게 아니다. 척박해 보이는 이 도시 곳곳에 수도시설이 있다. 물론 지금처럼 물 사용량이 많지는 않았겠지만 골목골목 이어진 집들에 수도시설을 갖춘 것이 경이롭기까지 하다.
우리의 발걸음은 다시 산 위 궁전 방향으로 향한다. 지금 비수기라 문이 닫힌 곳이 많다. 궁전도 지금 재정 비중이라 출입이 안된다. 유적들의 흔적 사이로 좁은 골목길이 여기저기로 나 있다. 산비탈 전체가 도시 유적으로 덮여 있다. 골목길을 걷다 보면 이런 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살 수 있었을까가 궁금해진다.
궁전 방향으로 가는 길에 작은 박물관에 들어갔다. 이 건물은 1262년 정도에 세워진 Saint Demerios 교회로 이 지역 전체를 총괄하는 교구로서 역할을 했다고 한다. 잘 만들어진 문을 지나면 아담한 정원이 나타나고 절벽 위에 교회가 서 있다. 복원된 건물 입구에서 보면 스파르타 평야가 내려다 보인다.
산 위 성문 쪽에 있는 작은 그리스 정교회 건물. 수도원 성당에 비해 훼손 정도가 심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편안한 느낌을 준다. 갑자기 이 작고 훼손이 심한 수도원 내부에서 한동안 13세기 이곳에서 기도를 드렸을 사람들이 생각난다. 아마 그 사람들은 항상 전쟁이 끊임없이 일어났던 그 당시에 신들에게 간절한 기도를 올렸을 것이다. 지금 우리가 평화롭게 이 곳을 방문하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해야겠다.
시간이 많이 지나가고 있다. 산 위 꼭대기에 있는 성까지 다녀오려면 3시가 넘어갈 것 같다. 아래에서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 시간이다. 우리는 그렇게 갑자기 비잔틴 역사 시대에서 빠져나왔다.
성위 주차장에서 자동차 도로를 따라 아내로 내려간다. 그리스에는 길거리 개들이 참 많다. 그런데 이놈들 모두 순하다. 짓는 길거리 개는 없다. 집 안에 있는 개들만이 짖는다. 길거리 개들은 사람이 가면 조금 따라가다가 만다. 아마 먹이를 주고 가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런 거겠지라고 생각해 본다. 그러니 겁먹을 필요는 없다.
갑자기 한가지 생각이 난다.
"길거리 개들이 짓지 않고 사람들을 쫒아 다니는 것은 주인없는 개들이 살아가기 위한 생존전략일 거야!"
사람들과 친해져야 살 수 있는 환경. 아! 타인과 잘 지내는 것은 어려운 환경에서 살아남는 가장 효과적인 생존전략이었구나. 우리 인류도 이러한 전략으로 지금까지 살아오지 않았는가! 길가의 개들로부터 다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깨닫게 된다.
올리브 나무에는 아직도 올리브 열매가 달려 있고 한 농가에서는 수확한 올리브 열매를 포대에 담아 차에 싣고 있다. 한적한 집들이 길을 따라 있다. 조용한 마을이다.
한 집에 오렌지 나무가 보이더니 내려갈수록 점점 많아진다. 떨어진 오렌지가 여기 저기에 굴러다닌다. 떨어져 굴러다니는 오렌지는 줍지 않는 모양이다. 마치 발트해 3국 여행에서 떨어진 사과를 줍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아내보다 키가 큰 나는 욕심을 내는 아내를 위해 오렌지 몇 개를 따 주었다. 이렇게 오렌지 사냥이 시작되었다. 오렌지 사냥은 터키 안탈리아 여행까지 계속되었다.
아톰이 오늘 밤에 쉬어야 할 장소로 이동한다. 우리가 갈 곳은 유적지 아래 마을의 운동장 옆 공터. 이곳은 주민들이 운동하러 올 때 주차하는 곳이다. 물론 정식 주차장은 아니지만 우리 같이 가끔 들리는 여행객이 하루 밤 묵어가는 것은 가능한 곳이다. 놀던 아이들도 어두워지자 모두 집으로 돌아간다.
밤에 미스트라 유적지에 조명이 켜지자 칠흑같이 어두운 하늘에 성이 보석처럼 보인다. 과거 비잔틴의 수도였을 당시에 성을 지키기 위해 밝혔던 불빛도 지금처럼 보였을 것이다. 한때 화려하고 첨단 시설을 갖추었던 산 위의 도시. 그 당시에 왜 '모레아의 경이'라고 불렸을지가 이해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