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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한잔의 깨달음!

캠핑카 세계 여행 에세이 80 - 그리스 나플리오

by 류광민

온통 올리브 나무

비잔틴의 역사를 간진한 '경이의 도시' 미스트라를 떠난 아톰은 잘 정돈된 스파르타 시내를 거쳐 나플리오로 향한다. 오렌지 나무가 가로수로 심어져 있는 스파르타가 이색적이다.

스파르타 시내는 대부분의 가로수가 오렌지이다. 도로와 길거리가 잘 정돈된 느낌을 준다.

스파르타를 벗어난 아톰은 험한 산길을 한참 달린다. 다행히 산길 도로는 스위스나 이탈리아에 비해 넓다. 날씨도 따뜻해 눈은 없다. 이 산길에 눈이 내리면 매우 위험할 듯하다.

달리는 차 밖 낭떨어러지 아래로 올리브 나무로 덮여 있는 넓은 계곡이 펼쳐 보인다. 산 위도 올리브 나무, 아래도 올리브 나무다. 온통 바위산인 이곳은 올리브 천지이다. 올리브는 척박한 땅에도 잘 자란다고 한다. 척박한 산이 많은 그리스 땅에 어울리는 나무이다. 이 올리브로 기름도 만들고 다양한 올리브 피클도 만든다.

스파르타에서 나플리오로 가는 산길. 넓은 갓 길도 있어서 운전은 안전하다. 산에 큰 나무는 보이지 않고 척박한 땅에 잘 자라는 올리브가 심어져 있다.

풍경이 바뀐다

산을 넘어가기 위해 고도를 계속 높이다 고도를 낮추게 되면 저 멀리 나플리오가 보인다. 이제부터 우리 몸의 소장이 잘 접혀 있는 듯한 경사가 심한 커브길을 내려간다. 캠핑카처럼 무거운 차는 엔진 브레이크를 사용해야만 할 것 같은 길이다. 조심조심 산길을 내려오니 올리브 나무는 사라지고 대신에 오렌지 나무 농장이 펼쳐지고 해안가 도로에는 잘 자라나고 있는 야자수가 우리를 반긴다.

가운데 사진의 오른쪽을 보면 커브 길이 살짝 보인다.

그리스의 첫 수도 나플리오

오토만 제국의 지배에서 해방된 그리스가 왕정 민주주의 국가를 수립할 당시 첫 수도로 삼았던 나플리오. 오늘 나플리오 항구의 대형 주차장에서 정박할 예정이다.

이미 여러 대의 캠핑카가 항구 화물 처리장 펜스 옆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캠핑카들과 함께 있으면 마음이 한결 놓인다. 아톰도 그 줄에 함께 선다.

조용한 부두 앞에 있는 대형 주차장 한 쪽이 자연스럽게 캠핑카 정박지가 된다. 아침 비가 내린 후, 무지개가 떳다.

12월인 지금도 나플리오는 관광객들로 붐빈다. 항구를 바라보는 도로가의 식당에도 사람들이 많다. 조금 안쪽으로 들어가 본다. 도시 안은 이쁘고 작은 도시 느낌이 난다. 꽤 괜찮다. 건물 위에서 내려오는 꽃들이 골목길을 더욱 아름답게 만든다.

항구 큰 길가에서 골목 안으로 들어오면 갑자기 예쁜 마을이 나타난다.

식당에서 물도 준다!

골목길 안쪽에 오래돼 보이는 식당이 눈에 들어온다. 손님이 없지만 주인 아저씨의 호객에 넘어간다.


"그런데 무엇을 시켜야지?"


식당에 갈 때마다 힘든 일이다. 주문을 힘들어하니까 홀 담당 주인이 아내를 주방에 데리고 가서 음식을 직접 보여준다. 우리는 밥이 곁들인 양고기와 커다란 생선구이를 주문했다. 그리스 여행 첫날부터 느꼈던 그리스 사람들의 친절이 느껴진다.

유럽 여행 중 식당에서 힘들어 하는 일이 또 하나 있다. 음식 값도 만만치 않은데 음료수까지 꼭 주문을 해야 하는 문화가 바로 그것이다. 그래서 식당에서 물 서비스를 당연한 것으로 살아온 우리에게 유럽 식당에서 주문할 때마다 음료수를 시켜야 하는 것은 항상 부담감으로 다가 온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물을 그냥 준다. 유럽이라고 생각했던 그리스는 다른 문화권이었다.


식당에서의 물 한잔이 '이제부터 유럽이라고 퉁 쳐서 말하고 생각하면 안 되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잠시 후에 나온 음식 또한 너무 맛있고 고기도 두툼하다. 가격, 맛, 질 모두 합격. 그리고 친절함까지. 오래간만에 맛있는 음식을 배부르게 실컷 먹은 느낌이다. 그리스 음식에 빠져든다. 우리가 식사를 마칠 즈음에 식당 안은 손님들로 가득 차 있었다.

한산했던 식당이 우리가 나갈 때 쯤에 손님들로 가득찼다. 맛집이었나 보다.

차 한잔의 유혹이 넘치는 곳!

안전한 정박지에 캠핑카도 주차시키고 점심도 먹었으니 이제부터는 자유시간이다. 이 도시의 중심 광장인 신타그마 광장에는 저녁때 행사를 위한 무대 장치 작업이 한창이다.

관광객들로 항상 붐비는 신타그마 광장

광장을 지나 15세기 때 항구를 보호하기 위해 지어진 바다 위에 떠 있는 작은 섬 위의 요새 부르치 Bourtzi를 보기 위해 해안가로 나왔다. 요새는 파도가 거의 없기 때문에 마치 호수 위에 떠 있는 성처럼 보인다. 작은 트라카이 같은 곳이다. 성수기 때는 그곳까지 가는 배가 운행된다고 하는데 지금은 다니지 않는다.

부르치 요새. 바다 한 가운데를 지키고 있다.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해안 절벽길을 따라 난 산책로가 있다. 이 산책로 입구에는 파도가 치면 금방 삼켜질 것 같은 곳에 차도 마실 수 있는 레스토랑이 있다. 깊숙하게 들어와 있는 항구이기 때문에 파도가 사실 거의 없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리라. 카페 옆 바닷속에는 작은 수영장도 있다. 날씨가 따뜻하면 이곳에서 수영도 하면서 차도 마실 수 있겠다. 참, 낭만적인 곳이다. 차 한잔 할까 하는 유혹이 드는 곳이다.

따뜻한 햇살과 바닷물이 함께 어우러진 카페가 맥주나 커피 한잔을 유혹한다.

낭만의 유혹을 뒤로하고 가던 길을 따라 가면 잘 포장된 좁은 산책로가 나온다. 이제 나플리오 시내는 보이지 않고 탁 트인 바다가 보인다. 이곳이 이제 바다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한다. 바람도 조금 세게 불고 파도도 친다.

산책로를 따라가다 보면 나플리오 시내에서 보였던 팔라미디 요새가 한눈에 보인다. 해안가 산책로를 걷다 쉬었다 하면서 따뜻한 오후 햇살을 즐긴다. 산책로에 아애 누워 자는 커플도 있다.

"바로 눈 앞에 보이는 팔라미디 요새로 올라가기에는 힘들겠지."

벌써 문 닫을 시간도 되었다. 자연스럽게 팔라미디 요새 반대편 요새로 올라가 본다.

겨울의 따뜻한 햇살을 즐기기 너무 좋은 산책로

요새 위에는 별다른 유적은 없지만 ‘Nafplia Palace’라는 고급 호텔이 있다. 비수기라 문을 닫았다. 최고의 전망을 가진 곳이다. 문을 열었으면 아내를 설득해 차 한잔 하자고 졸랐을지 모르겠다. 다시 왔던 길로 내려오면 나플리오 시내로 들어가는 길이 나온다. 그러니까 나플리오 뒤의 요새를 두고 한 바퀴를 돈 셈이다.

나플리오 요새로 올라가는 길과 그 길에서 바라다 본 팔라디미 요새
Nafplia Palace 호텔에서 내려다 본 나플리오 항구 풍경

이제 아톰에게 가보자. 부두 쪽 창문 커튼을 활짝 열어 놓고 저녁 식사를 했다. 밤이 되자 주차장을 가득 채웠던 자가용들이 대부분 집으로 돌아갔다. 오늘도 이곳에서 또 하루 밤을 보낸다.

아내는 이곳에서 하루 더 있다 가자고 한다. 그런데 우리에게 쉥겐 협정 90일의 제한이 있다. 아내를 설득해서 내일 아침에 출발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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