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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인간과 이야기하는

캠핑카 세계 여행 에세이 88 - 그리스 델피

by 류광민

노을마다 탄성!

그리스 여행에서 가보고 싶었던 목적지 중 하나였던 델피는 아테네에서 북쪽 방향의 산길로 200km 정도 가야 한다. 아쉽게도 델피에는 캠핑카가 정박할 만한 장소가 없기 때문에 델피를 방문하고 나서 다른 장소로 또다시 이동해야 한다. 오늘 일정에 무리가 없도록 하기 위해서 아침 일찍 서둘러 길을 나선다.

정박지를 벗어나 아테네 도심을 빠저 나올 즈음 동쪽 하늘에 노을이 아름답게 펼쳐진다. 아내는 붉은 노을을 만나면 항상 탄성을 지른다. 오늘도 어김없이 탄성이 차 안을 채운다. 이른 아침에 출발할 덕분에 시내를 교통체증 없이 잘 빠져나왔다. 이제 신나게 산길로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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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 새벽 노을과 델피 가는 산길 풍경

Arachova를 지나서

아테네를 빠져나와서 험한 산길을 한 참 달리다 보면 Arachova라는 작은 마을을 지나가게 된다. 이 도시는 그리스 사람들이 많이 찾는 산악 휴양도시인데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태양의 후예 촬영지로 알려져 있는 도시이다. 관광객들을 위한 이쁜 카페와 식당들이 있는 좁은 시내 도로를 따라 줄지어 서 있다.

도로가 좁고 이미 많은 승용차들이 길가 주차장을 차지하고 있어서 아톰과 같이 큰 캠핑카가 정차할 만한 곳이 없다. 잠시 정차하고 싶지만 여건이 안된다. 조금 더 가면 우리의 목적지 델피가 나오기 때문에 그냥 지나치기로 한다.

IMG_2070.jpg Arachova 길가 풍경

델피를 소개합니다!

델피는 그리스 신화에서 세계의 중심이라고 생각했던 곳이다. 제우스가 세상의 양 끝에서 두 마리 독수리를 날려 보냈는데 두 독수리가 만난 곳이 바로 델피이다. 그러니까 그리스 신화의 세상에서 델피는 세상의 중심인 곳이다. 그 때문에 세상의 중심 옴파로스(배꼽이라는 의미)가 델피에 있다.

아폴로는 이곳의 아름다움에 반해 이곳에 살고 있던 뱀 피톤을 무찔러 자신의 땅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따라서 델피는 아폴로가 거주하는 승리 땅이다. 이 곳이 유명한 이유는 위대한 승리의 신인 아폴로에게 신의 계시(즉 신탁)를 들을 수 있는 땅이었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도 델피의 아폴론 신전에 새겨져 있는 신탁과 관련된 말이란다. 따라서 델피는 세상의 중심, 위대한 승리의 신의 세상, 신탁의 세상으로 신과 인간이 대화를 나눈 세상이다.

이 신성한 땅, 델포이에서는 기원전 586년부터 4년마다 그리스의 운동선수들이 모여 피티아 경기를 개최하였다. 우리의 그리스 첫 번째 여행지였던 고대 올림픽 유적지와 마찬가지로 위대한 신의 신전과 운동경기가 함께 존재하는 곳이다. 그리스 고대 유적지의 특징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내가 델피에 가보고 싶었던 이유는 델피 유적의 화려함보다 델피는 과연 어떠한 곳에 있을까 라는 궁금증 때문이다. 어떠한 위치이기에 2,600여 년 전에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가 되었을까?

IMG_2092.jpg 옴파로스 모형과 신전 봉헌물을 보관했던 '아테네의 보물 창고'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잘 알려져 있는 연구방법 중 델파이 기법의 어원이 되는 지역 또한 이곳이다. 델피에는 인간이 해결할 수 없는 어려운 문제에 대한 신의 응답을 받던 아폴론 신전이 있다. 델파이 기법은 이 신탁과 관련되어 있다. 델파이 기법은 잘 알지 못하는 현상이나 미래에 대하여 답을 구하고 할 때, 전문가들의 주관적 의견을 물어 그 결과를 답으로 추론하는 기법이다.


박물관부터

델피 또한 유명 관광도시이지만 메인도로가 일방통행 도로일 정도로 Arachova보다 훨씬 작은 도시이다. 많은 관광객이 찾음에도 도시 확장이 힘든 도시이다. 도시 확장이 힘든 이유는 경사가 매우 심한 포키스 협곡의 바위 산에 있기 때문이다. 사실 델피 유적지도 마찬가지이다. 다행히 박물관 앞에 캠핑카나 관광버스와 같은 대형차들이 주차할 장소가 마련되어 있다.

델피는 박물관을 보고 유적지를 보는 게 좋은 곳이다. 왜냐하면 이곳 유적지 특징을 알 수 있는 유물들이 박물관에 다 있기 때문이다. 세상의 중심인 옴파로스, 하늘로 올라갈 것 같은 날씬한 몸매를 가진 ‘낙소스의 스핑크스’도 눈길을 끌지만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델피에서만 본 ‘춤추는 댄서’라는 조각상이다.

높은기둥 위에 올려져 있던 이 조각상은 다른 여인상이나 여신상과 다른 점이 있다. 그리스에서 만난 여신상 대부분이 발까지 완벽하게 가리는 긴 옷을 입고 있는 것에 반해 이 춤추는 댄서는 치마가 무릎 아래까지 올라가 있다. 그리고 약간 춤추는 듯한 몸동작을 하고 있다. 기존의 여신상과 분명 다르다. 아내와 나는 이 조각상이 설명문 대로 정말 댄서일까 아니면 승리의 여신상일까 등등을 놓고 한참이나 토론을 했다. 그렇다고 답이 나오지는 않는다. 그냥 추론해보는 것이지. 우리 마음대로.

다만 확인 가능한 것은 이 조각상은 물론 매우 화려한 느낌의 낙소스 스핑크스 등이 높은기둥 위에 세워져 있어서 이 도시가 매우 화려한 도시였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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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 댄서와 낙소스의 스핑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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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내부 전시 유적물과 박물관 앞 풍경

박물관을 나와 유적지로 올라가 본다. 비가 조금씩 내린다. 지금은 12월이고 높은 산 위라서 기온도 많이 내려가 있다. 원형 극장은 공사 중이라서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 대부분의 건물들이 터 만 남아 있어서 그 옛날의 모습을 제대로 확인하기는 어렵다. 다만, 아폴로 신전 기둥 몇 개가 아직도 원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아테네 인들이 받쳤던 봉헌물을 보관하던 보물 창고라고 하는 ‘아테네의 보물 창고’는 원형이 어느 정도 복원되어 그 모습을 추론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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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폴로 신전과 원형 극장
20181215_135600.jpg 델피는 매우 깊은 산속에 자리하고 있다. 신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여기까지 어떻게 왔을까 라는 궁금증을 낳게 하는 곳이다.

터키 이스탄불 광장에 가면 만날 수 있는 세 마리 뱀이 서로 꼬며 올라간 기둥이 저 멀리 보인다. 이 기둥은 청동으로 만들어져 있는데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 것이란다. 그중 한 개가 이스탄불에 있다.

신에게 봉헌할 보물들을 들고 와 줄 지어 서 있었을 많은 사람들, 보물로 가득 차 있는 창고들, 춤추는 댄서 조각상이 높게 서 있었을 그 당시를 생각해본다. 얼마나 신과 대화를 하고 싶었으면 이 깊은 산속에 화려한 신전을 짓고 아테나에서 그 험하고 먼 길을 달려왔을까.

델피 유적지는 2,457m의 파르나소스 산의 포키스 협곡을 한눈에 바라 볼 수 있는 위치에 있다. 그리고 유적지에서 산을 내려가면 코린토스 만으로 연결된다. 아마 고대 그리스인들은 배를 타고 와서 위대한 신을 만날 수 있는 산 언덕까지 올라와야 했을 것이다. 이 정도면 그리스 곳곳에서 신을 만나기 위해 올 수 있는 적절한 위치이다. 내가 이번 여행에서 궁금해했던 의문이 풀린다. 이게 현지 여행을 통해서 알 수 있는 느낌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비가 오는 날씨에 기온도 빠른 속도로 내려가 추워진다. 게다가 신발에 물이 조금씩 젓어 든다. 아직 정박지를 정하지 못해서 마음이 조금 급하다.


유적지를 나와 박물관 앞을 지나는데 견학 온 그리스 학생들이 우리에게 “곤니찌와” 한다. 아내가 대답한다.


“I am not Japanesse. Korean.”


학생들 왈, ‘와 - 우’

IMG_2120.jpg 우리에게 인사말을 건넨 그리스 학생들과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개들과 고양이들

여행지에 만들 그리스 학생들은 아직도 동양인이라면 일본이나 중국인으로 먼저 생각하는가 보다. 나플리오에서도 그렇고 이곳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리스 학생들아!

이제 조금만 기다려봐. 중국인 아니면 한국인 중에 한 명이라고 생각할 날이 금방 올 거야.

이제 곧 한국 관광객들이 델피에도 넘쳐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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