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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소망의 기도!

캠핑카 세계 여행 에세이 89 - 테르모필레 노천온천

by 류광민

땀을 흘리다

신과 인간이 대화를 나누는 그리스 신화의 땅, 델피 여행을 마치고 난 이후 우리 목적지는 마테오라이다. 그러나 오늘 중에 마테오라까지 갈 수는 없다. 당연히 마테오라 가는 길에 하루 밤 휴식을 취해야 한다. 다행히도 해가 지기 전에 도착 가능한 적당한 휴식처가 있다. 그 휴식의 장소는 마테오라 가는 길 중간에 있는 노천 온천. 며칠 동안 못했던 목욕도 해야 하지만 경험하기 힘든 노천 온천에 대한 기회를 그냥 보낼 수는 없다. 바로 그곳은 테르모필레 노천 온천.

델피 유적지에서 시직에 좌표를 찍고 출발한 차는 일단 급경사 산길을 내려온다. 산을 내려와 서쪽 방향으로 조금만 더 가면 코린토스만의 해안가이다. 그러나 테르모필레는 코린토스 만과 반대 방향으로 험한 산을 다시 넘어 에게해 바다 쪽까지 가야 나오는 곳이다.

오늘은 그리스 국토의 대부분이 산악지대라는 것을 실감하게 하는 길만을 주행하고 있다. 가는 길에 만날 수 있는 깊은 계곡 사이에 있는 마을들, 산에서 양 떼를 모는 목동, 간혹 길을 막아서는 구름들, 길 옆으로 떨어지는 폭포들은 이 길을 가는 사람들만이 받을 수 있는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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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피를 벗어나면 저 멀리 코린토스만이 눈앞에 보이고 급한 경사의 산길을 내러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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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넘어가다 보면 만나는 산골 마을, 도로 옆으로 떨어지는 폭포, 도로 위로 흘러 다니는 안개들을 만나게 된다.

캠핑카 아톰이 힘들어했던 길이었지만 다행히도 해가 지기 전인 4시에 도착했다. 노천 온천에는 먼저 와 있는 캠핑카도 있고 물속에서 온천을 즐기는 분들도 있다. 노천 온천을 즐길 수 있는 곳으로 따뜻한 물이 꽐꽐 쏟아져 흘러내린다. 그 온천수가 하천을 따라 내려가면서 하얀 수증기를 하늘 위로 뿜어 올리면서 다른 세상 풍경을 만들어 낸다.

주변 상황 파악을 마치고 나서 우리는 온천 앞에 주차를 하고 이탈리아 노천 온천에서 한 것처럼 노천 온천 준비를 한다. 수영복 대신에 반바지 차림으로 출발. 그런데 물에 녹색 조류가 떠 내려온다. 따뜻한 물속에 녹색 조류가 잘 자라고 있는 언덕이 있다. 그 언덕에서 녹색 조류 일부가 물에 떠 내려오는 것이다. 그 덕분에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물 색깔을 만들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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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색 녹조가 이색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노천 온천 풍경

조금 한적하고 깊은 곳에 몸을 맡겨 본다. 가져온 온도계를 담가 보니 38도를 가리킨다. 외부의 차가운 공기 때문인지 우리 대중목욕탕의 열탕과 온탕의 중간 온도 정도로 느껴진다. 물속은 따뜻하고 머리는 차가운 그 느낌이다. 몸을 담그고 있으니 얼마 지나지 않아 얼굴에서 땀이 나기 시작한다. 온몸 이곳저곳을 마사지해서 벗겨진 피로를 물과 함께 흘러 보낸다.

어느덧 해가 지고 있다. 젊은 친구 한 명이 호루라기를 불어댄다. 아마 나가라는 신호인가 보다. 다른 사람들도 한 둘씩 자리를 떠난다. 온천에 미리 담가 두었던 청수 물통이 따뜻해졌다. 그 물로 머리도 감고 몸에 남아 있는 온천수의 짠 기를 가볍게 씻어 낸다. 따뜻한 물로 샤워하는 기분이다. 어제 아테네에서 여행 일정 때문에 다투었던 아내와 의 힘들었던 일도, 오늘 하루 종일 산길을 주행했던 힘들었던 여행도 다 잊히는 순간이다. 온천 앞 길가에 서 있는 큰 트럭 뒤에서 따뜻하고 편안한 밤을 보냈다.


몰랐던 사실

노천 온천으로 따뜻해진 몸으로 편안한 밤을 보낸 다음 날 아침에 마을 산책에 나섰다. 노천 탕 위쪽으로 올라가 본다.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길이 있다. 숲 속에 들어가 보니 캠핑카에서 장기 거주하는 분도 보인다. 그 왼쪽 길로 들어가니 물속에 사각형 구조물이 보인다. 그 안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땅 밑에서 물이 뽀골 뽀골하면서 올라온다. 이곳이 온천물이 나오는 원천인 것이다. 이 곳에는 파란 녹조도 없다.

물속에 손을 넣어보니 어제 온천물보다 훨씬 뜨겁다. 알았으면 '어제 이곳에서 목욕할 걸'이라고 후회하고 있는데 승용차 한 대가 들어온다. 한 가족이다. 아빠, 엄마와 다 큰 두 딸들이 차에서 수영복 차림으로 나오더니 원천으로 돌진한다. 우리도 이곳에서 다시 한번 목욕하고 갈까. 그런데 우리는 아침에 인근 지역에 작은 호텔 예약을 해 놓은 상태이다. 조금 아쉽지만 그만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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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이 노천 온천의 원탕이다. 바닥에서 솟아 나오는 물이 매우 뜨겁다.

마을로 내려오니 어제 보았던 이 마을의 다세대 주택이 다시 눈에 들어온다. 무언가 '정리가 안된 집' 같은 분위기. 차분하게 정리되어 있는 어느 그리스 가정집과 분위기가 매우 다르다. 그 다세대 주택 앞에 깨끗한 컨테이너 박스가 몇 대 설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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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들 수용소로 사용되고 있는 다세대 주택과 시설들

이것도 조금 이상한 구조물이다. 컨테이너 한 개에 사람들이 안에 들어가 있다. 빈 컨테이너 안을 들여다보니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는 부엌 시설이 되어 있다. 혹시 이 컨테이너는 난민들이 함께 쓰는 공용 주방은 아닐까 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국제난민기구 깃발이 보인다.


"아. 어제 우리는 난민 보호소 앞에서 온천을 즐겼던 것이구나."


사용하지 않고 있는 주방 컨테이너가 있는 것으로 보아 여기에 수용되었던 분들 중에 상당수가 떠난 모양이다. 남아 있는 분들도 하루빨리 정착해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해본다.

우리가 유럽을 여행할 당시에 도시마다 난민들이 자주 눈에 들어왔다. 그분들 모두가 하루빨리 안정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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