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핑카 세계 여행 에세이 91 - 그리스 트리칼라
그리스 사람들의 친절함에 빠졌던 Anixis 호텔에서 Trikala로 향한다. Trikala는 마테오라 입구에 있는 도시이다. 아침에 출발해서 마테오라까지 갈 수는 있지만 늦은 오후에나 도착하기 때문에 이곳에서 정박하고 그다음 날 아침 일찍 마테오라로 갈 계획이다. 지금 겨울이다 보니 5시가 넘으면 해가 지기 때문에 하루 여행 시간이 짧아지는 문제가 있다.
평야지대를 잠깐 지나더니 차는 산길로 들어선다. 가끔 내비가 이상한 길로 안내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신경을 써야 하는 경우가 많다. 조금 불안하기는 하지만 2차선 포장 도로이니 그대로 가보자.
산길로 접어들면서 고도가 점점 높아진다. 처음에 비가 조금씩 내리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에 눈으로 바뀐다. 산 위에 있는 마을이 온통 흰 눈으로 덮여버렸다. 길에도 눈이 쌓인다. 우리 차에는 스노우 타이어가 없다. 길이 얼어버리면 큰일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 불안하기보다는 왠지 기분이 좋다.
'흰 눈이 펄펄 내리고 길을 덮어 버리는데 왜 불안하지 않을까?'
아내와 나는 차에서 내려 사진도 찍는다. 시원하고 아름답다. 그렇지만 계속 있을 수는 없다. 눈이 얼어버리기 전에 이 곳을 벗어나야 한다. 캠핑카 여행이 좋은 점도 있지만 이럴 때에는 아쉬운 여행이다. 눈 내리는 산속 풍경은 이번 여행 중에서 처음 맞이하는 것이다. 그러니 얼마나 우리 눈에 아름답게 보이겠는가. 그런 풍경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고 떠나야 하니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도 당연한 일일지 모르겠다.
조심조심 정속 운전하며 산을 넘는다. 다행히도 무사히 산을 내려오니 하얀 눈이 비로 변한다. 그리스에서의 첫눈을 아쉽게 그렇게 보냈다.
산속 눈길을 무사히 벗어난 아톰은 일반 도로로 계속 달린다. 그런데 아톰 여자 친구 시직이 고속도로를 찾지 못하고 있다. 새로 만들어진 고속도로가 옆에 있는데 말이다.
'그래 그냥 한번 가보자. 오늘 중에만 도착하면 되니까.'
고속도로를 찾지 못하는 내비게이션 때문에 그리스 시골 지역 이곳저곳을 다니기는 했지만 무사히 도착했다. 사실 중간에 도로 사정 때문에 차에 충격이 가해져서 수납장에 올려놓았던 그릇이 떨어져 내리는 사고가 있었다. 그 덕분에 러시아에서 산 유리 뚜껑이 깨졌다.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수납장 열쇠를 수리해야겠다. 이 문제는 터키 안탈리아에서 보완했다.
트리칼라는 관광지이기 때문에 가는 게 아니다. 오늘 정박 후보지로 정한 곳에 작은 성이 있을 뿐이다. 차를 트리칼라 성 앞에 주차시키고 올라가 본다. 조금 있으면 문을 닫는단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고 날씨도 좋지 않아서 다른 곳은 포기하고 시계탑으로 올라가 본다.
주변에 크고 작은 성당들이 많이 보인다. 시계 탑 위에서 트리칼라 시내가 한눈에 들어오는 것으로 보아 이 성이 과거에 매우 중요한 곳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바람이 너무 세게 분다. 바람을 피해서 도시 풍경을 보려고 하지만 너무 춥다. 빨리 내려가야겠다.
시계탑을 내려와 트리칼라 시내로 산책을 나서 본다. 대부분 식당이 오후 영업 전이다. 일부 식당들은 오후 영업을 시작할 준비를 하고 있다. 내일 메테오라로 타고 갈 기차 시간표를 알아보기 위해 기차역으로 향한다.
이곳에서 메테오라까지 기차로 갈 수 있다. 차를 놓고 기차를 이용해서 다녀오려고 하는 이유는 메테오라 여행을 마치고 나서 다시 트리칼라를 거쳐 다음 목적지로 이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기차역 앞에 넓은 주차장이 있다. 커다란 버스와 트럭도 서 있다. 나는 내일 가치를 탈 거라면 오늘 밤에 이곳에서 정박을 하는 게 좋겠다고 아내에게 말한다. 사실 트리칼라 성 앞의 주차장은 조금 좁기도 하고 무언지 모르지만 불안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톰을 데리고 와 기차역 앞 주차장 끝에 세운다. 해가 지자 서 있던 버스도 떠나가고 트럭도 떠나간다. 아톰만이 남아 있다. 가끔 지나가는 기차 소리가 정겹게 느껴진다. 늦은 밤이 되니 기차도 다니지 않고 자동차 소리도 나지 않는다.
참 조용한 도시다. 아톰이 넓은 주차장을 혼자 쓸쓸하게 지켰다.
지금까지 캠핑카 여행을 하면서 하루하루 일이 없는 날이 없었지만 잘 해결하면서 다니고 있고 아무런 불상사도 아직은 일어나지 않았다. 우리 부부는 오늘도 그것 만으로도 감사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