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 엄마가 들려주는 성경 이야기
노아 이야기 2; 창 9;18-29
하나님은 죄와 악으로 가득한 세상을 한탄하며 하나님을 바라보던 노아에게, 방주를 지어 대홍수에서 구원하시고, 첫 사람 아담에게 하신 ‘생육, 번성, 충만’의 복을 약속하셨어. 노아는 말씀대로 복을 누렸으나 술이 취하여 수치를 드러내 버렸고, 이 일을 함이 형제에게 누설함으로 함의 아들 가나안이 저주를 받게 되었단다. 오늘은 방주에 관한 영적 의미와 왜 함의 아들 가나안이 하나님의 저주를 받게 되었는지를 알아보자.
1. 방주와 방주의 출입에 대한 영적 의미
노아가 방주에 들어갔을 때의 순서는 노아, 그 아들들, 노아의 처, 자부들(창 7;13)이었고, 방주에서 나올 때의 순서는 노아와 아내, 아들과 자부로 부부가 짝지어 나갔어(창 8;6).
하나님은 왜 방주로 들어갈 때의 순서와 나올 때의 순서를 다르게 하셨을까?
방주로 들어가는 것은 ‘생명의 보호’였고, 나올 때는 다시 ‘복으로 충만’ 하게 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셨단다. 그래서 하나님은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창 9;1)” 하고 아담에게 선포하신 복을 다시 선포하셨어.
하나님은 이렇게 글자 하나, 순서 하나도 의미를 두어 행하게 하셨단다.
방주는 오늘날 교회를 상징하는 것이란다.
그러므로 우리가 교회로 가는 것은 우리의 생명의 보호를 위함이고, 교회에서 나와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은 복으로 충만하기 위함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
그렇다면 말이야.
교회 내에서는 생명의 말씀을 배우고, 기도와 찬양으로 하나님을 예배함으로 우리의 생명을 하나님의 사람과 은혜로 가득 채우는 것이라면, 일상으로 돌아가서 주어지는 일들이나, 만나는 사람들, 그리고 일어나는 상황들은 “생육, 번성, 충만”을 위한 의미 있는 일들이라 할 수 있을 거야.
그러므로 일상을 습관적으로 그냥 보낼 것이 아니라 사소한 일도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의미를 부여하며 살아간다면 우리를 축복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 실감하며 감사하는 하루의 삶을 살아갈 수 있지 않겠니?
엡 5;16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세월’은 헬라어 ‘카이로스’로 ‘기회, 때’라는 뜻이고
‘아끼라’는 헬라어 ‘엨사고라조’로 ‘사라, 확보하라’는 뜻이야.
앞, 뒤 문장을 살펴보면 모여서 술 취하여 방탕하는 어리석은 일을 할 것이 아니라 주의 뜻이 무엇인가를 인식하는 기회로 삼아서, 시와 찬미, 신령한 노래로 화답하고, 항상 감사함으로 서로 종속되어 있으라는 것이란다.
우리의 일상은 ‘생육, 번성, 충만’을 만들어가는 현장이란다.
특히 가정은 가족이 함께 행복을 쌓는 곳인데도, 성능 좋은 핸드폰 시대를 열면서 인터넷 검색, 유튜브 검색 등으로 각자의 시간을 보내고 있어.
가족과의 대화, 나눔의 시간들을 빼앗는 것과 비교할만한 가치 있는 것이며, 주의 뜻일까를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아.
도무지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시간 배정을 잘하는 것이 지혜겠지?
어리석은 일로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주의 뜻이 무엇인가를 살펴서 가정에서나 사회에서나 서로 섬기며 감사와 찬양으로 화답하는 일상이 되도록 우리 함께 노력하자.
2. 구원받은 노아의 술 취함
하나님이 언약하신 대로 노아는 복을 받아 포도원을 소유하게 되었는데, 어느 날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수치스러운 일을 하고 말았어.
21절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지라”
‘취하여’는 히브리어 ‘와이쉬카르’로 ‘고용당하다’라는 의미의 ‘취함을 당하다’라는 뜻으로 술의 노예가 된 것을 의미한단다.
영국의 기독교 변증가 ‘루이스’는 “하나님은 인간 안에 두 가지 가능성을 주셨는데 하나는 동물적 차원으로 전락할 가능성과, 또 하나는 하나님의 차원으로 올라갈 가능성”이라고 했어.
육의 욕구를 다스리지 못하면 짐승이라는 것이지.
심판 날에 하나님의 은총을 입어 구원받은 노아가 술에 빠져 수치스러운 일을 했다는 것은 곧 구원받은 우리도 육의 욕구를 다스리지 못하면 수치스러운 일을 범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어.
고후 13;5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
히 3; 13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강퍅케 됨을 면하라”
구원파들은 세례 받은 날자를 꼽으며 영원한 구원이라 노래하지만 세례를 받았다는 사실보다 세례 받은 자로서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단다.
3. 저주받은 노아의 손자 가나안
창 9;22 “가나안의 아비 함이 그 아비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두 형제에게 고하매”
‘고하다’는 히브리어 ‘나가드’로 단순히 말한 것이 아니라 수치를 적나라하게 드러내어 발설한 것을 말한다.
그런데 노아는 자신의 수치를 함이 발설했는데 왜 함의 아들 가나안을 저주했을까?
창 9;24 “노아가 술이 깨어 그 작은 아들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알고”
창 9;18 “방주에서 나온 노아의 아들들은 셈과 함과 야벳이며 함은 가나안의 아비라”
유대교 출판물 ‘모세오경과 하프 토라(J.H. 헤르츠 편. 런던. 1972.34 p)’에서 ‘작은 아들’은 손자를 일컫는 히브리적 표현으로 가나안이 연루되어 혐오스러운 행동을 했기 때문이라고 했어.
또 일부 학자들은 가나안이 술 취하여 인사불성인 노아를 상대로 변태적인 일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어. 그 근거를 ‘함은 가나안의 아비’라고 표현한 것에 두었단다. 히브리 문학의 특징으로 볼 때 함은 일련의 사건을 범한 가나안의 아비라는 표현이라고 말이야.
가나안은 술 취해 인사불성인 노아에게 모종의 행위를 시도했고, 함은 이 사실을 알고도 징계하지 않고 오히려 형제들에게 그 수치를 떠벌림으로 더 노아의 수치를 더 심각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란다.
하루가 멀다 하고 일어나는 범죄는 날로 극악해지고, 정치적 불의와 부패함은 경제적, 정서적 불안감을 더해주고 있는데, 세계의 정세마저 불안정한 시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어.
구원파들은 세례 받은 날자를 꼽으며 영원한 구원이라 노래하지만
구원의 은혜를 입은 의인 노아가 술에 취하여 수치스러운 일을 당한 것 같이 우리도 육의 정욕을 다스리지 못하면 수치스러운 일에 자신도 모르게 빠질 수 있다는 것을 배웠어.
갈 5;7 “너희가 달음질을 잘하더니 누가 너희를 막아 진리를 순종치 않게 하더냐”
빌 2;12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로 구원받은 우리에게 복은 이미 허락되었어. 다만 허락된 복을 누릴 수 있는 것은, 구원의 은혜를 쏟아버리지 않도록 우리 자신을 잘 다스려 경건함과 거룩함을 잃지 않는 것이란다.
그리고 일상에서 주의 뜻이 무엇인가를 분별하여 그 뜻을 좇는 기회를 잘 확보하는 데 있단다.
가족이 모여서 날마다 말씀을 묵상하고, 하루의 삶을 돌아보면서 주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마음을 합하여 기도할 때 정말 행복한 삶을 누리게 될 것이야. 우리 가족 모두 그렇게 되기를 소망하며 항상 기도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