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 이야기 I

친정엄마가 들려주는 성경 이야기

by 찐니
롯 이야기


창 13;1-13, 창 19;12-16


창세기 10장~11장 대부분의 배경은 BC 3500년경의 수메르 시대란다.

‘세메르’에서 유래된 ‘셈의 나라’라는 뜻으로, 홍수에서 구원받은 노아의 아들 ‘셈의 후손’들이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남부에 도시를 건설하고 상업을 위한 10진법과 60진법, 쐐기 모양의 설형문자를 만들어 역사시대를 열었어.

수메르 도시국가들이 왕정시대로 들어가면서 왕이 신의 대리자로서 제의적 기능도 담당했는데, 이것이 점점 왕을 신격화하는 문화로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단다.


수메르의 도시들을 우상의 본고장 바벨론이 장악하게 되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불러내셨어. 그 시대의 죄악을 안타까워하며 하나님을 바라보던 노아를 구원하여내신 것 같이, 하나님은 우상으로 가득한 수메르의 도시에서 아브라함을 불러내신 것이란다. 이때가 BC 2000년경 이야.


아브라함은 조카 롯도 함께 데리고 나왔어. 그런데 롯은 나중에 아브라함과 헤어졌고, 자신의 딸들과 동침하여 모압과 암몬을 낳았는데, 훗날에 모압 암몬은 끊임없이 이스라엘을 괴롭히다 멸망하고 역사에서 사라져 버렸지.

아브라함과 함께 하나님의 언약 안에 있던 롯이 왜 요단들로 갔고, 왜 딸과 동침해야 했고, 모압과 암몬은 왜 역사에서 사라져야 했는지 롯 이야기를 통해서 알아보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도록 하자.


1.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은 롯


롯은 아브라함의 형 하란의 아들(창 11;27)인데, 하란이 갈대아 우르에서 사망했기 때문에 아브라함이 롯을 거두었고, 갈대아 우르를 떠날 때도, 하란을 떠날 때도 아브라함과 함께했단다.

아브라함과 롯은 하나님의 축복으로 식솔들과 가축들이 점점 늘어나서 함께 동거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어. 땅이 이 두 족속들을 수용하기에는 너무 좁았던 거야(6절). 가축에게 먹일 물과 풀로 인하여 서로 다툼이 생기기도 했단다.

오늘날 한국 사회도 경쟁 속에 있어.

언젠가 홍정욱 전 국회위원이 대학교에서 강연을 할 때 앞으로 8% 정도의 인력만이 살아남고 나머지는 다 도태된다고 하면서 얼마나 노력해야 하겠느냐고 하더라고.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 다투고, 시기하고, 모함하며, 불법을 저지르는 분위기 안에서 우리 기독교인이 ‘남을 더 낫게 여기고(빌 2;3)’ 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 같아.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자로서 올바른 방법으로 살아내는 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라고 난 생각해..


2. 하나님과의 언약을 떠난 롯


아브라함은 롯과 헤어지기로 결단을 했어.

아브라함이 롯을 떼어 내는 것이 아니라 롯을 족장으로 하는 또 하나의 부족으로 독립시킨 것이란다.

아브라함은 롯에게 원하는 땅을 먼저 선택하라고 선택권을 주었는데(창 13;9), 롯은 보기 좋은 요단 들을 선택했어(창 13;10).

얼마나 비옥해 보였던지 에덴동산 같고 이집트 땅 같았대.

사실 하나님이 약속한 가나안 땅은 우기 때 외에는 물이 없어 건조한 돌밭인데 비해 요단 들은 물이 풍부하여 비옥했기 때문에, 롯은 척박한 가나안 땅을 떠나 요단 들로 갔단다.

창 13;11 “롯이 요단 온 들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

동으로 떠났다는 것은 부정적인 의미란다.

아담이 죄를 범하고 에덴에서 쫓겨나 에덴의 동편에 거했고, 가인이 범죄하고 동편 땅에 거했고, 바벨탑 사건도 동쪽으로 옮긴 사람들이었어.

롯이 동쪽으로 옮겼다는 것도 하나님의 보호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의미한단다.

다시 말하면 가나안 땅은 사람의 눈에는 척박한 것 같으나 하나님의 보호가 있는 땅이고, 요단 들은 사람의 눈에는 풍요로워 보이지만 하나님의 보호에서 벗어난 땅이란다.

하나님의 보호에서 벗어난 롯은 결국 이방인의 성 소돔으로 들어가 정착해 버렸어. 문화적 혜택이 없는 황량한 들 보다 도시가 더 좋아 보였던 것이겠지?

그러나 성경은 이 소돔성에 대하여 “소돔 사람은 악하여 여호와 앞에 큰 죄인이었더라(창 13;12)”라고 설명하고 있어.

하나님은 어떻게 하셨을까?

롯이 소돔 성으로 들어간 후에 아브라함과 다시 언약을 세우셨어.

롯은 이제 하나님과의 언약에서 완전히 멀어져 버렸단다.


창 13;14-15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3. 롯은 왜 요단 들에서 소돔성으로 들어갔을까?


왜 롯은 요단 들에서 계속 거주하지 않고 소돔 성으로 들어갔을까?

사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은 인간의 오감을 자극하는 흥미로운 일이 별로 없어. 경건과 거룩함이 젊은이에게는 따분할 만도 하지.

소돔성은 하나님을 떠난 자들이 만든 문화였으니 얼마나 쾌락적이었겠니?

창 19장을 보면 소돔성의 문화는 타락의 극치였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어.

롯의 부족은 결국 하나님을 떠나 타락한 도시 소돔성 거민에게 동화되어 버렸단다.

자 우리 한번 생각해 보자.

우리가 롯과 같은 입장이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하나님이 약속한 돌밭은 고생을 사서 해야 하고, 요단 들은 물과 풀이 넉넉하여 고생 없이 잘 살 수 있어.

갈등 없이 돌밭을 선택할까?

사실 우린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서 요단 들과 같은 풍요로움을 원하지.

마치 가나안 땅에서의 이스라엘이 하나님도 섬기고, 바알도 섬기듯이 말이야.

약 1;14-15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우리의 눈에 좋을 대로가 아니라 하나님 말씀의 경계를 벗어나지 않는 길을 선택할 수 있는 믿음이 있기를 바란다.


4. 소돔성의 멸망과 롯의 구원


요단 들에 있는 성읍들은 메소포타미아의 왕들에게 조공을 바쳤는데, 이를 거부하자 공격당하여 소돔성에 거하던 롯도 붙잡혀 갔어. 이 소식을 들은 아브라함은 장정들을 데리고 가서 롯을 구해왔지.


자 그럼 아브라함의 도움을 받은 롯이 소돔성을 떠났을까?

그렇지 않았어. 롯은 여전히 타락한 소돔성에 거했단다.

그런데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말했어.

벧후 2;7 “무법한 자의 음란한 행실을 인하여 고통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

약속의 땅을 떠나 타락한 소돔성에서 살았던 롯을 의로운 사람이라 평가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나그네를 보호하기 위해 딸을 내어주었기 때문이라면 행위 구원이 될 것이고, 딸을 강간하라고 내어 준 것이라면 딸의 인권, 존엄성을 하나님이 무시한 것이 되겠지.

베드로의 증언은 롯이 무법한 자의 음란한 행실로 인해 괴로워했던 롯의 중심을 보고 구원했다는 것이란다. 노아가 괴로워한 것처럼 말이야.

그러면 딸을 내어준 롯의 행위는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창 19;14을 보면 이미 정혼한 사위도 있었어.

아버지라도 정혼한 딸을 강간하라고 내어줄 권리는 없단다.

그러므로 우리는 롯이 천사를 보호하기 위해 딸을 내어주는 것이 의로운 행동인가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

사실 롯은 노아 때와 상황이 완전히 달라.

영어로 소도미(sodomy)는 남색을 의미하는데 소돔에서 비롯된 말이야.

남색 하려고 나그네에게 달려드는 급박한 상황이었어.

이런 급박한 상황에서 롯은 딸을 내놓았어.

만약 롯이 딸을 내놓지 않았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딸을 지켜주신 하나님이 나그네도 지켜주지 않았을까?

롯이 소돔성의 사람들의 음란한 행실로 괴로워했지만 자신도 모르게 소돔적 가치관이 들어와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단다.

이후 롯과 두 딸은 어떻게 되었을까?

당시에는 하나님이 딸들을 지켜 주셨지만 정혼 한 사람과 결혼하지 못하고 아버지 롯과 관계를 맺어 큰 딸은 모압, 작은 딸은 암몬을 낳았단다.

결국 딸들도 소돔적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지.


결론

롯은 하나님의 약속의 땅에서 벗어나 무법한 자들의 행실을 괴로워하면서도 그곳을 벗어나지 않았던 것은 자신도 모르게 세속적인 가치관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란다.

롯은 겨우 구원은 받았지만 아브라함과 함께 약속의 땅에서 받았던 축복은 다 잃고, 훗날 역사에서 사라지고 말았어.

우리는 소돔의 악으로 인하여 한탄하지만 소돔의 가치관에 동화되어 소돔을 떠나지 못하는 롯과 무엇이 다를까?

세속적인 가치관으로는 결코 하나님의 언약 안에서 온전한 복을 누릴 수 없다는 것을 롯을 통해서 배워야 한단다.

한국 교회의 젊은이들이 경건함과 거룩으로 자신을 지켜나가는 것이 육체의 즐거움을 주는 일이 아닐지라도 그것이 진정한 행복임을 믿고 그 길을 기꺼이 선택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




대한예수교장로회 새순 장로교회 장정숙 목사님의 설교말씀을 친정엄마가 딸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체로 편집한 내용입니다. 인용하실 때는 출처를 명시해 주세요

keyword
이전 11화아브라함 이야기 I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