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갈 이야기

친정엄마가 들려주는성경 이야기

by 찐니

하갈의 엘로이 하나님 이야기 창 16;4-16

문명사적으로 볼 때 성경은 참 독특한 책이야.

세상의 책들은 대부분 강자들, 지배자들의 사적 기록이나 전쟁사가 영웅담으로 살아남아 오늘날까지 읽히고 있는데, 성경은 약자들이 경험한 하나님 이야기를 경전으로 삼아 읽고 있으니 말이야.


사실 하갈 이야기는 주인을 멸시하다가 쫓겨난 하찮은 이집트의 여종 이야기란다. 대수롭지 않게 넘어갈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그 이야기를 살려 정경에 기록한 것은, 하찮은 여종의 생명도 보살피시는 하나님이심을 증언하고 있는 것이야.


1. 아브라함의 후처가 된 사라의 종 하갈

‘하갈(הגר/하가르)’은 ‘도망하다’라는 뜻으로, 아브라함이 기근을 피해 이집트로 갔다가 돌아올 때 함께 나온 이집트 여인이야. 사라의 몸종이었던 하갈이 아브라함의 후처가 된 배경은 이러하단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처음 후손을 언약하실 때는 ‘너로 큰 민족을 이룬다’고 하셨고, 롯과 헤어졌을 때는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게 하겠다’하시며 좀 더 구체화하셨지. 소돔성을 친 그 돌 라오 멜의 손에서 롯을 구원하여 왔을 때는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창 15;4)’고 확실하게 ‘네 몸’이라 꼬집어 말씀하셨어. 사라가 불임이었기 때문에 양자로 삼은 엘리에셀을 후사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야(창 15;2-3).


고대사회에서는 본처가 10년 동안 불임일 때 친정으로 쫓겨나거나 여종에게서 아들을 얻어 본처의 아들로 삼는 것은 일반적인 일이었어. 마침 사라가 자신의 여종과의 동침을 허락하자 아브라함이 하갈을 후처로 들인 것이란다(창 16;2).

2. 하갈의 범죄


그러나 아브라함이 하갈을 후처로 들인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어.

‘네 몸에서 날 자’라는 ‘네 몸’의 히브리적 의미는 아브라함과 사라 둘을 지칭하는 것이란다.

창세기 2;24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하나님은 부부를 한 몸이라 하셨어. 그러므로 ‘네 몸에서 날 자’라는 뜻은 사라에게서 아들을 볼 것이라는 말씀이셨단다.

그러나 사라는 자신이 불임이었던 까닭에 여종과의 동침을 허락했고, 아브라함은 사라의 말을 받아들인 것으로 하나님의 뜻을 사람의 방법으로 이루려고 한 것이었어.

아마도 오늘날도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이 아니라 사람의 방법으로 이루고자 하는 일들이 많이 있을 것 같아. 그러면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라 사람의 방법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노아 때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니?

창세기 6;5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하나님의 생각은 선한 결과를 낳지만 사람의 생각은 악한 결과를 낳는단다.

하갈이 임신을 하자 사라를 멸시하기 시작했어.

함무라비 법전에 ‘아내가 자녀를 낳지 못하면서 첩을 얻어주지 않으면 남편은 스스로 첩을 얻을 수 있으나 첩은 아내와 같은 지위에 처할 수 없다’고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보면 임신한 후처가 자신의 위치를 망각하고 본처를 업신여기는 경우가 허다했기 때문이겠지?

하갈 역시 예외일 수 없었던 것이야.


3. 사라의 학대로 인한 하갈의 고통

사라가 억울하여 아브라함에게 항의했더니 아브라함이 “당신 종이니 당신이 좋을 대로 행하라”라고 하네?

보통 사람이라면 자기 아이를 가진 자의 편을 들어 본처를 나무라거나, 달랠 것 같은데 아브라함은 그렇게 하지 않았어. 이것이 공의로운 판단임을 하나님이 다시 확인시켜 준단다.

사라가 하갈을 학대하자 하갈이 견디지 못하고 이집트로 도주하다가 뜻밖에도 여호와의 사자를 만나게 되었는데 그가 이렇게 말했어.


창세기 16;9 “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네 여주인에게로 돌아가서 그 수하에 복종하라”

문자대로 해석하면 “사래의 학대 밑으로 다시 들어가라”라는 뜻으로 여주인을 멸시한 대가를 치르라는 것이야.

이것이 하나님의 공의란다.

하나님은 가난한 자와 약자의 편이 되어 주셨지만 부자들의 강포와 권력자들의 약탈에서 보호하신 것이지 공의를 굽게 하지는 않으셨어.

출 23;3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편벽되이 두호 하지 말지니라”

오늘날 노동자들과 고용된 자들의 권익을 위한 조합들이 자본가들의 착취에서 보호하려는 차원을 넘어서서 자신들의 유익을 위해 사용하거나, 또 하나의 기득권이 되어 권력을 행사한다면 하나님의 뜻에서 반하는 것임을 오늘날 젊은이들은 알아야 한다.

계급사회였던 구약시대의 일이라 치부할 수도 없어.

그리스도 안에서는 자유자이건 종이건 평등하게 여겼지만 사회의 질서는 무너뜨리지 않았단다.


골로새서 3;22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

골로새서 4;1 “상전들아 의와 공평을 종들에게 베풀지니 너희에게도 하늘에 상전이 계심을 알찌어다”


사람이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 하나님이 금한 선악과를 취하는 죄를 범한 것과 같이, 자신의 한계와 분수를 넘어서는 것은 죄란다. 하나님은 그 죄를 간과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하갈을 통해서 다시 배울 수 있어.


4. 하갈의 엘로이 하나님


창세기 16;10 “여호와의 사자가 또 그에게 이르되 내가 네 자손으로 크게 번성하여 그 수가 많아 셀 수 없게 하리라”

하나님은 본처를 업수히 여기다 본처의 학대를 피하여 도망하던 하찮은 여종도 간과하지 않으시고 복을 허락하셨어.

하갈은 감격하여 하나님을 ‘엘 로이’이라 불렀어.

엘 로이(אל ראי )는 ‘보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이야.

사실 하갈이 잉태한 것은 하갈이 선택한 길은 아니었어.

분수를 넘어서는 잘못은 범했지만 아브라함의 씨였기에 그에게도 복을 허락하셨단다. 그러나 그들로 인한 역사적인 분쟁은 끊임없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하나님이 말씀하셨어.


창세기 16;12 “그가 사람 중에 들나귀 같이 되리니 그 손이 모든 사람을 치겠고 모든 사람의 손이 그를 칠찌며 그가 모든 형제의 동방에서 살리라 하니라”

가나안의 동방은 아랍인들의 거주지로 이스라엘과의 분쟁은 이미 예고되어 있었어.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의 방법으로 이루려고 했던 죄의 결과란다.

하갈의 ‘엘로이 하나님’ 이야기는 하찮은 여종의 아픔도 살피시는 사각지대 없는 하나님을 우리에게 알게 해. 그리고, 우리의 분수를 넘는 교만함은 죄를 불러일으킨다는 것도 알게 했지. 그리고 오늘 나의 선택이 훗날 어떤 결과를 낳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깊이 묵상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단다.

오늘도 사각지대가 없으신 ‘엘로이 하나님’을 깊이 묵상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 샬롬! 샬롬!




대한예수교장로회 새순 장로교회 장정숙 목사님의 설교말씀을 친정엄마가 딸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체로 편집한 내용입니다. 인용하실 때는 출처를 명시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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