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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슬 Dec 16. 2019

DAY1. 인천에서 런던까지

1. 처음 타 본 국제선 비행기의 비행시간이 16시간 30분일 경우

 *) 정확히 2007년의 여행기로 아무런 정보도 없음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무뜬금으로 리무진 버스에서 질질짜면서(...) 도착한 인천공항. 친구는 집이 인천이라서 인천공항에서 만나기로 했다. 공항에 도착해서 친구를 만나러 가고있었는데 모르는 남자가 말을 걸었다. 혹시 Y친구세요? 헐? 어떻게 알았지? 했는데 친구와 같은 디자인의 색만 달랐던 캐리어 때문에 나를 알아 본 친구 일행. 나는 주황색 친구는 연두색. 둘이 좋아하는 색이 겹치지 않아서 사면서도 매우 만족했다. 에이 어떻게 캐리어만 보고 알아 봐 할지도 모르지만 아는 사람은 알만한 커플 캐리어.


이쯤에서 힘있게 다시 등장하는 캐리어 사진. 지금봐도 알 수 있는 커플 디자인.


 친구도 나도 생전 처음 타보는 국제선, 그것도 한번 갈아타서 총 16시간 30분의 비행을 해야하는 코스. 떨리고 설레는 마음으로 인터넷에서 본 대로 착하게 국제선을 타기 위한 권장 시간이 무려 4시간 전에 도착. 착한 어린, 아니 대학생. 햄버거라도 먹고 들어 가겠냐는 친구 일행의 호의를 뿌리치고(?) 게이트 안으로 들어왔다.



 처음 가는 장기여행 짐이 얼마나 많던지. 캐리어는 확장까지 해서 꽉꽉 채웠고 - 지금 생각해보면 쓸모없는 것들도 하나 가득- 작은 가방 안에 다 안 들어 가는 짐은 손에 바리바리 들고. 지금도 잘 소장하고 있는 일정이나 팜플렛등은 클리어 화일에 담아 놨었는데 가방이 작아서 어디에도 들어가지 않으니 무슨 보물이라도 되는 듯 소중히 끌어안고 다녔다. 물론 보물이기는 했다. 스마트폰도 없고 외국에서 컴퓨터로 인터넷을 하기도 어려웠던 그 때 그 시절. 가이드북이 없어서 못 나갔던 곳도 수두룩.



 게이트를 통과할 때 짐이 많아 힘들었지만 별다른 에피소드 없이 잘 통과했고, 그러고 나니 아무것도 할게 없었다. 정말 아무것도. 휴대폰도 두고 왔지 한국돈은 얼마 없지.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는 우리. 지금 사진을 다시 보니 8시 출발 비행기인데 게이트 앞에서 찍은 사진이 6시. 아마 이 보다 훨씬 전에 들어왔지 싶다. 출발 전에 아침먹고 아무것도 안 먹은 우리들을 주린 배를 부여잡고 아까 햄버거를 먹어야했어를 되뇌였다.


요즘 티켓들보다 훨씬 간단하게 쓰여진 보딩패스


항공사는 케세이 퍼시픽. 사실 처음에 여행사에서 예약을 할 때 일정이나 시간에 따라 케세이나 중국 항공사가 될 수 있다고 했었는데 맨 처음에 여행사에서 보내 준 일정에는 중국 항공이었다. 뭐 어쩔 수 없지 했는데 알고보니 우리는 29일 일정을 예약했는데 여행사 측에서 21일 항공권을 예약해줬고 다시 예약하는 과정에서 항공사가 바꼈다. 사실 여행 예약을 진행하는 과정에 이렇게 자잘한 사고가 몇 번 있어서 불안증 폭발인 내가 여행사 직원을 닦달...하는 메일이 아직도 내 메일에 남아있다. 이제 와서보니 새삼 죄송하기도 하고, 가기 전 주 금요일까지 기차 예약이 안 끝났으니 그 당시 내가 얼마나 초조했을까 싶기도 하고. 7월 3일 출발인데, 기차표 예약날짜가 6월 26일. 언제 전달 받았는지 이제 와서 기억하니 생각도 잘 안나고 그저 아련한 추억이긴하지만. 그리고 이 때 마일리지를 위해 가입해 놓은 케세이 퍼시픽 회원가입으로 인하여 나는 2018년 에어메일을 받게 되고, 그 내용은..... 검색으로. 물론 이 때는 아직 먼 이야기.


출발하는 비행기 일정


 

이렇게 보니 공항 화면도 낡았다(...)


어쨌든 우리의 여행 일정은 7월 3일 화요일 20시에 CX419편을 타고 3시간 40분을 날아서 홍콩에 22시 40분에 도착, 그리고 한시간 가량의 대기를 했다가 23:55분에 CX251편을 타고 12시간 50분을 날아 7월 4일 수요일 새벽 5:45분에 런던에 도착하는 코스. 16시간 30분을 날아가는 코스지만 시차 때문에 하루를 버는 느낌이 드는 일정. 그래서 실제로 영국에서 하루 더 묶게 되어서 포토벨로 마켓에 가게 되어서 다행이었다.


다행이 모니터는 개별 모니터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오가는 비행기 다 3-4-3 내지는 3-3-3 배열이라 당연히 제일 창가쪽이 2열일거라고 생각했던 비행초보들은 좀 당황. 지금이야 창가쪽이 어떻고, 복도쪽이 어떻고 따지며 미리 좌석 예약을 하지만 그 때는 둘 다 처음 비행기를 타보는 통에 아무 생각도 없었고 이게 뭐라고 무서워서 벌벌 떨면서 둘이 손을 꼭 잡고 이륙. 지금 생각해보면 웃길 따름.



 3시간 반, 그리 길지 않은 비행이지만 한 번의 간식과 한 번의 기내식이 제공되었다. 지금이야 사진찍는데 재미를 느꼈다지만 그 때는 찍히는 것도 찍는 것도 취미에 없어서 기록을 남겨야지 하는 의무감으로 사진을 찍었던 것 같다. 그래서 처음에는 정말 별의 별 쓸데없는 사진들까지 잔뜩 찍혀있고, 나중에는 그냥 사진이 없음.... 어쨌든 아직 열심히 사진을 찍을 때나 간식과 기내식 사진이 다 남아있고, 엄청난 기록 및 수집벽으로 인하여 당시에 받았던 기내식 메뉴판도 보관중임. 발견하고 나도 웃김.


무려 12년전 기내식과 간식



 처음에 홍콩가는 비행기에서 제공된 건 땅콩과 음료, 그리고 중국식 고기반찬에 밥. 아마 beef or chicken의 선택지가 있었던 것 같다 - 믿지 마시길, 12년전의 기억임. - 사진은 너무나 어둡지만 대충 이런 모양새의 기내식. 세 시간 반의 비행은 이륙하고 간식 먹고, 기내식 먹고 내림.



 그리고 생전 처음 해보는 환승. 특별히 연착같은 것 없이 잘 도착했음에도 뭔가 한 시간 정도 밖에 안되는 환승시간에 마음이 촉박해서 괜히 다급함에 제대로 안내문을 보고 가지 못하고 정신없이 가다가 밖으로 나가는 줄에 선 나를 친구가 구해줌. 여행 준비를 굉장히 많이 하고 갔지만 돌발 상황에서 엄청나게 당황하는 나의 모습을 알아 본 친구가 이 때부터 나를 추슬러서 데리고 다님.



 우여곡절 끝에 환승이 얼마남지 않은 시간에 게이트 앞에 도착했고 홍콩시간으로 11시가 넘었었는데 한국시간으로는 12시가 넘은 시각. 잠에 빠진 우리들은 게이트 앞에서 가방을 끌어안고 불쌍하게 졸다가 비행기를 탔고, 장거리 비행기인 만큼 타자마자 좌석에 담요 하나, 베개 하나씩 올려져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타자마자 이륙하는지도 모르고 잠에 빠졌다. 아까 손잡고 벌벌 떨면서 이륙했던 거는 어느새 멀리멀리 사라짐. 자다보니 어느새 하늘 위.


그리고 문제의 기내식 메뉴판. 홍콩-런던 비행기에 비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사육한다는 말이 딱 맞게끔 밤비행기다 보니 계속 불을 끄고 갔는데 불을 켜면 밥을 줬다... 뭔가 간식을 받았던 기억은 안나는데 화장실에 가다가 갤리에 가면 음료와 간식이 비치되어 있었다. 워낙 계속 자면서 가다보니 뭘 먹거나 할 일은 없었는데 다들 유럽가는 비행기에서 컵라면을 먹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오며가며 한 번도 못 먹어봐서 아쉽....

두번 째 기내식. 화이트 와인을 한 잔 받아 마셨는데... 인간은 그냥 살던대로 살아야 한다는 걸 깨달음.


유럽에 가든지 말든지 배꼽시계는 정확했고, 당시 도착 한 3시간 전부터 배가 고파 참을 수가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갤리에 가서 간식을 먹어도 됐고, 캐빈 크루에게 무언가를 좀 달라고 했어도 됐는데 꾹꾹 참고 밥 줄 때까지 버텼음.

오믈렛과 소세지, 영국식 아침. 짜고 또 짰다.


그래서 마주한 기내에서의 마지막 식사. 버틴 만큼 맛있게 먹어줘야지 했는데... 너무 짜서 제대로 못 먹고 빵만 너무 맛있어서 친구거까지 뺏어먹음.



 가장 최근에 탔던 장거리 비행기는 미국행이었는데 직항에 10시간 정도 였음에도 불구하고 정말 괴롭고, 겁쟁이는 한번 씩 흔들릴때마다 가슴이 철렁해서 괴로웠던 기억이 나는데 이상하게도 이 때 생각을 해보면 저렇게 오래 비행기를 탔음에도 그냥 잤던 기억 밖에 안난다. 특히 홍콩-런던 구간은 자고 또 자고, 또 잤던 기억. 파리에서 인천으로 돌아오는 길에 낮 비행기를 타서 계속 낮이고, 또 낮이고 또 낮인 상황을 겪어보고 나니 장거리일수록 밤비행기를 타야겠다 다짐했었던 아련한 기억.



 외항사다 보니 제공되는 영상이 대부분 영어 아니면 중국어여서 익숙한 디즈니 영화를 그냥 영어로 보거나 한국 노래만 찾아서 듣곤 했었는데 이것저것 채널을 돌리는 중 만나던 한국 영화가 얼마나 반갑던지. 아직도 기억나는 그 영화는 '미스터 로빈 꼬시기'였다. 물론 기내에서도 돌아와서도 보지는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날고 또 날아서 도착한 런던은 어렴풋이 새벽빛이 돌고 있었고, 충격적인 것은 런던의 날씨. 비행기에서 제공해주는 영국의 날씨는 섭씨 14도. 네? 내 눈을 의심하게 된 기온. 분명 한국은 7월 3일, 한 여름 날씨. 출발하기 전 남유럽은 이상기온 현상으로 사람이 몇 명 죽었다는 기사를 보고 출발했는데? 나 긴 옷은 긴 바지 한벌, 트레이닝복 저지 한 벌, 기내가 추울까봐 입고 있던 얇은 니트 가디건이 하나인데?망했다. 뭐 애초에 유럽 여행은 버릴 만한 옷을 입고 가서 버리고 오세요! 라는 멘트를 그대로 믿고 가서 거지같은 옷만 잔뜩 싸가지고 간 나에게 멋진 풍경 속에서 나만 이상해 사진 속에서 파버리고 싶었던 유럽 여행 사진의 역사는 런던에서부터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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