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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유사색가 Nov 02. 2021

싫다는데 왜 억지로 술을 권하는 것일까

자신의 존재가치를 입증하고 싶은 영혼들의 아우성

"어? 아직도 술잔 안 비웠어?"


김부장은 오늘도 어김없이 나의 술잔을 수시로 체크한다. 다음 번 건배할 때 나눠 마시려고 몰래 남겨두었던 소주잔에 남은 술을 입 안에 털어넘긴다.


쓰다. 김부장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술이 더 쓰다.

억지로 술을 삼켜내고 빈 잔을 내민다. 김부장은 그렇게 술 잘 마시는데 왜 안 마시고 있었냐며 만족스런 표정으로 내가 힘들게 비운 잔에 다시 술을 채워준다.


혹시라도 술이 남았다고 거부를 하면 김부장은 정색을 한다.


"후배한테 술 한 잔 따라주려고 하는 건데 설마 거부하는 건 아니지?"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 않아서 술 잔을 내민다. 김부장은 기분이 좋은지 얼굴에 미소를 띄우며 술을 따라준다. 난 내 잔이 비어있을 때 가장 아름다워 보이던데 김부장은 그렇지 않나 보다.


그렇게 반강제로 술잔을 비워내고 다시 채우는 과정을 반복되었다. 나의 표정은 점점 어두워졌고, 김부장의 표정은 점점 밝아지고 목소리도 커졌다. 그 날 나는 평소 주량보다 많은 술을 먹었고 그 다음날까지 숙취에 시달렸다. 역시 억지로 마시는 술은 맛있지도 않고 기분도 좋아지지 않는다.




몇몇 사람들은 왜 억지로 술을 먹으라고 강권하는 것일까.


처음엔 그것이 하나의 집단 문화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문화라고 하기에는 받아들이지 못 하는 구성원들이 너무 많았다. 강권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나이가 많은 차장,부장들이었고 후배 사원들은 마지 못 해 술을 마셨다.


이러한 술자리를 여러 번 경험하고 지켜보면서 술을 왜 억지로 먹이려고 하는지 나름 분석해보았다.
나의 개똥철학을 곁들여 그 이유를 정리해보았다.



첫째, 그들은 외로워서 술을 권한다.


주위 사람들에게 술을 억지로 먹이는 사람들에겐 공통점이 있었다.

그들은 대부분 40대 이상의 남자들이다. 그 중에서 기러기 아빠도 상당히 많다. 그들과 개인적으로 이야기를 나눠보면 가정에서 환대받지 못 하는 경우가 많다. 회사 사람들 외에는 교류하는 사람들도 거의 없다.


이러한 요소들은 그들을 외롭게 만든다. 그래서 술을 통해서라도 사람들과 접촉하면서 외로움을 이겨내고 싶어한다. 하지만 외롭게 지낸 시간이 많아서 술자리에서 사람들과 어떻게 친해져야 하는지 모른다. 그래서 일단 주위 사람들, 특히 후배나 동생들에게 술을 먹이면서라도 상호 접촉을 이어가려는 것이 아닐까.

술을 많이 마셔야 같이 있을 수 있는 시간이 길어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옆에 있는 사람이 술을 덜 마시면 술자리는 빨리 끝나고, 그러면 다시 또 외로워진다. 한 잔이라도 술을 더 권한다면 지금 이 사람들과 조금이라도 더 같이 있을 수 있을까...

옆자리에 앉은 사람의 빈 술잔에 또 다시 술을 채워준다.  



둘째, 자신의 존재가치를 증명하고 싶어한다.


상사가 술을 권하면 후배들은 대부분 거절하지 못 하고 술을 마신다.
상사 입장에서는 자신의 요구를 상대방이 수락하여 행동에 옮기는 것이다. 그것도 바로 내 눈앞에서.


내가 말하는대로, 원하는대로 내 눈앞에서 즉시 이뤄지는 것이다.
얼마나 뿌듯하고 기분좋은 일인가. 이 과정에서 술을 권하는 사람은 자신의 존재가치를 스스로 입증할 수 있다고 느낄 것이다. 다른 곳에서는 나의 존재가치를 입증하기 어려웠다. 또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술자리에서 후배에게 술을 권하면 그 자리에서 바로 결과가 나타난다. 


이런 경험이 반복되면 사람들은 뭔가 일이 잘 안 풀릴 때 술자리를 찾는다.

내가 주는 술을 공손하게 잘 받아마시는 후배가 있다면 그 술자리의 가치는 배가 된다. 오늘 보고자리에서 내가 하는 말이 씨알도 안 먹혔는데, 내 앞에 앉은 후배는 내가 술을 권할 때마다 너무나도 잘 마신다.
지금 이 자리에서만큼은 내가 중요하고 대단한 사람인 것 같은 착각이 생긴다.


셋째, 취하고 싶은데 나만 취하는 건 싫다.


술을 권하는 사람은 술을 좋아하고 많이 마시기 마련이다. 그런데 같이 마시는 사람이 술을 덜 마셔서 멀쩡하면 분위기상 마음껏 마시기가 쉽지 않다. 무엇보다도 흥이 나지 않는다. 아무튼 술자리에서 적당히 마시는 것은 용납이 되지 않는다.

내가 실컷 먹고 취하기 위해서 옆에 앉은 사람도 취해야 한다.
옆사람을 취하게 하려면 내가 술을 많이 따라주고 마시도록 계속해서 권하면 된다. 한 잔, 두 잔 마시다 보면 옆사람도 취하고 나도 취한다.


처음엔 술잔을 거절하던 옆사람이 막상 취하고  기분이 좋아 보인다. 내가 그 사람을 기분좋게 만들어 준 것이 같다. 갑자기 뿌듯해진다.
옆사람이 취했으니 이젠 나도 실컷 먹고 취할 수 있다.




사실 나는 술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술을 권하는 사람이 있는 술자리는 정말 가기가 싫다.


외로운 사람끼리, 술을 좋아하는 사람끼리, 서로 마음껏 권하면서 마시면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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