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nna Aug 31. 2023

[안나의 습작노트] 3. 엄마머리


 엄마머리



 #1. 영안실. 밤


 특별할 것 없는 영안실 안, 시체 보관함에서 꺼내진 침대를 둘러싸고 선 지영(,31)기태(,62) 그리고 형사(,41)의 옆, 뒷모습. 세 사람의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바뀌는 카메라 시점) 천장에서 내려다보는 것처럼 하얀 천이 덮인 불룩한 침대와 비스듬하게 고개를 숙인 세 사람의 정수리가 보인다. 침대를 내려다보는 세 사람 모두 움직임이 전혀 없는 정지상태. 형사가 로봇처럼 손을 들어(오직 형사의 손만 움직이고, 공간 안에 모든 것은 여전히 정지상태) 하얀 천을 걷어낸다. 


 시체의 겨드랑이까지 천을 걷어내자, 곳곳에 멍과 핏줄이 투명하게 비치는 몸과 그 옆에 가지런히 놓인 잘린 미숙(, 57)의 머리. 감겨 있지 않은 두 눈. 한쪽 눈은 검은 눈동자가 반쯤 돌아갔다. 미숙의 머리는 젖었었는지 군데군데 살짝 성에가 맺혀 있다. 물에 퉁퉁 불은 미숙의 얼굴은 섬뜩하다 못해 우스꽝스럽기도 하다. 


 지영:     (과장되게 입을 틀어막으며) 엄마…….

 기태: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으며 조금 어색하게) 여보!

 형사:    오늘 새벽, 물왕 저수지에서 발견됐습니다. 사망추정시간은 어제 오후 4시에서 6시 사이, 정확한 사인은 조사 중입니다. 절단된 부위가 고르지 않고 감염 소견이 있는 걸로 봐서 녹슨 흉기로 여러 번 내려친 거 같습니다.


 지영이 기태의 어깨를 감싸며 옆에 앉는다.


 형사:     (기태를 향한 의심 섞인 눈초리를 숨기려고 노력하며) 두 분 어제부터 오후 4시부터 오늘 아침까지 어디서 뭘 하셨고, 그걸 증명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선뜻 입을 열지 못하는 기태. 지영은 그런 기태의 어깨를 감싼 손에 힘을 준다.


 지영:     (기태를 일으켜 세우며) 아빠, 저랑 같이 있었어요. 


 지영의 거짓말에 고개를 숙이고 있던 기태의 눈이 살짝 커진다. 기태는 형사가 눈치채기도전에 순식간에 표정을 바꾸고 결단코 그랬다는 듯 고개를 과장되게 끄덕인다.




 #2. 지영의 회상


 항상 절은 행주냄새가 날 것만 같던 미숙의 거친 손에 새빨간 매니큐어가 칠해진 것을 보고. 어? 엄마 매니큐어 발랐네? 다른 색 바르지, 너무 빨갛다 안 어울려. 하며 의아해하는 지영. 


 정신없는 출근시간, 헤어드라이어를 찾아 미숙의 화장대를 뒤적이는 지영. 서랍 안에 숨긴 듯 안 숨긴 듯 애매하게 놓여 있는 포장을 뜯지도 않은 향수와 화장품, 못 보던 주얼리 선물상자를 보고 얼굴을 굳히는 지영.


 한 끼 때우기식의 형편없던 저녁밥상이 점차 미숙의 화려해진 외모처럼 다채로워진다. 당신 요즘 뭐 좋은 일 있어? 밥상 부러지겄네! 하며 작업복도 벗지 않고 미숙이 차려준 밥상을 게걸스럽게 먹는 기태. 그리고 못마땅한 표정으로 음식을 깨작거리는 지영. 


 집 근처 카페에서 순정만화 주인공처럼 서럽게 울며 통통 뛰쳐나오는 미숙. 지영이 엄마, 부르려는 찰나 뒤이어 미숙을 뒤쫓아 나오는 멀끔한 모습의 안경 쓴 중년 남성. 지영이 살짝 벌렸던 입을 닫으며 무서운 표정을 짓는다.


 지영:     (요상한 색색의 크리스탈이 회전하는 화면 중앙에서 뱅글뱅글 돌며 허공에 포효하듯) 다 알고 있어! 정말 작작 좀 해!




 #3. 차 안. 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초록불이 노란불로 변한다. 벌써부터 속도를 줄여 정차선보다 한참 뒤에 차를 세우는 기태. 동시에 노란불이 빨간불로 변한다. 


 기태:     (주저하는 목소리로) 지영아…….

 지영:     (기태의 말을 가로막으며) 아빠, 우리 저녁 뭐 먹을까? 배고프다.


 기태가 다시 뭔가 말하려는 듯 입을 벌렸다 크게 숨을 내쉬며 닫는다. 착잡한 표정으로 정면을 응시하는 기태. 이내 무언가 심경의 변화가 생긴 듯 운전대를 깊게 감아쥐는 기태의 손. 빨간불이 파란불로 바뀌고 기태가 평소와 달리 엑셀을 부앙 거칠게 밟아 출발한다. 관성으로 뒤로 쏠리는 기태와 지영의 몸. 


 지영:     (살짝 이중턱이 된 얼굴로) 근데 아빠.

 기태:     (지영과 같은 얼굴로) 응 우리 딸.

 지영:     (순수하게 그냥 궁금하다는 듯이) 엄마 이름으로 든 보험이 있었던가?


 기태의 차가 중앙선을 살짝 넘은 채로 빠르게 달려 나아간다.








2023.08.17

Photo l Abi and Oriana. From the series Mothers + Daughters © Rohina Hoffman



매거진의 이전글 [안나의 습작노트] 2. 당신에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