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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a Oct 19. 2023

사람들이 나를 찾지 않게 될까 봐 두려운 미니에게

사람들에게 내가 잊혀질까 두려운 안나가


 사람들이 나를 찾지 않게 될까 봐 두려운 미니에게

 


 안녕 미니.

 

 자칭/타칭 ‘종이인형’ 답게, 소파와 침대에 널브러져 있는 내가 보이나요? 혹시 어디 공용 CCTV로 나를 지켜보고 있는 건 아니겠죠. 지구 반대편까지 온 마당에 이것저것 우당탕탕 신나게 해보고 싶지만, 시차적응하는 것만으로도 힘이 달리는 저입니다. 사실 요 며칠 내가 한 거라고는 요리, 산책, 책 읽기, 시나리오 숙제, 개인 글쓰기 그리고 미니의 편지를 기다리는 일이 전부입니다. 운동을 해도 이 정도인데, 만약 운동을 안 했다면 나는 호흡이나 제대로 할 수 있었을까요? 갑자기 제 손목의 맥을 짚어 보시곤 선천적으로 오장육부가 약하다며 고개를 저으시던 한의사님이 떠오르네요.

 

 미국은 많이 춥습니다. 지난 몇 년간 뜨거운 카타르에 살았던 저에게는 너무 가혹한 추위예요. 본래 더위보다 추위에 약한 편인데, 그나마 추위를 견뎌내던 세포가 그새 다 퇴화해 버린 것 같아요. (네 저는 지금, 제가 칩거 중인 변명을 하는 중입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롱패딩을 가져오지 않았다면, 높은 환율이고 뭐고 생존을 위해 당장 하나 샀을 겁니다. 캐리어에 롱패딩을 고집스럽게 욱여넣은 그날의 나를 매우 칭찬합니다.

 

 아! 그리고 우리 카타르에서의 안나는 ‘깍두기’로 쳐 주기로 해요. 그때의 나는 나를 전혀 돌보지 않고 ‘일이 최우선’이었던 미련한 외노자 좀비였으니까요. 한국에 돌아온 지금의 나는 조금 더 건강하고 입체적일 겁니다. 아마도요.

 

 각설하고 이번 편지에서는 미니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요. 저는 개인적으로 미니의 이번 편지에 특별한 애정을 느낍니다. 편지 곳곳에 ‘엉엉 운다’, ‘부끄러움’, ‘두렵다’, ‘불안하다’라니. (음흉한) 제가 좋아하는 어두침침한 것들이 듬뿍 적혀 있어 신났어요. 미니가 스스로를 한 겹, 두 겹 벗겨내 내게 들려줄 때마다 나는, 아주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접견실에 불을 밝히고 찻잔을 데워 귀한 손님을 맞이하는 기분이랄까요? 매우 설레고 즐겁습니다. 앞으로 어디까지 나에게 부끄러운 고백을 하게 될지 감이 안 잡힌다고 했는데, 그냥 감 잡지 말고 계속 고백해 줘요. 나 그런 거 좋아해.

 

 

 여하튼 새삼 내가 다시 느낀 미니에 대한 생각은 아래와 같아요.

 

·    미니는 울보다

·    미니는 예민하다

·    미니는 희생적이다

·    미니는 염치가 (너무) 많다.

·    미니가 쓴 시가 궁금하다.

·    미니는 사색신동일까?

·    미니는 사람을 좋아한다

·    미니는 사랑받고 싶어 한다

·    미니는 스스로에게 엄격하다

  


 미니는 울보다

 아니 만화를 보고 엉엉 운다니. 도대체 이 귀엽고 사랑스러운 감수성 무엇입니까. 전혀 부끄러워할 부분이 아닙니다. 나 만화 보고 우는 여자야,라고 당당하게 말하고 다니도록 하세요. 나는 그나마 있던 감수성도 날이 갈수록 더 희미해지는 것 같아 걱정입니다. 가끔 주변에서 나를 로봇이라고 놀립니다. (기억하죠? 시흥에서 한국민속놀이 컬러 프린팅 에피소드) 나는 만화를 보고도 엉엉 울 수 있는 미니가 부러워요.

  


 미니는 예민하다

 바로 이어서 ‘예민하다’에 대해 이야기해봅시다. 일반적으로 ‘예민하다’라는 말은 부정적으로 여겨지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사전적 의미를 찬찬히 읽어보면, 사실 긍정적인 의미도 함께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나는 아래 ‘예민하다’의 두 가지 정의가 미니의 본질적인 성향을 잘 표현한다고 생각했어요. 글과 이미지를 다루는 사람에게 이것보다 더 좋은 능력이 뭐가 있을까요? 나는 또 미니가 부럽습니다.

 

1.  무엇인가를 느끼는 능력이나 분석하고 판단하는 능력이 빠르고 뛰어나다.

2.  자극에 대한 반응이나 감각이 지나치게 날카롭다.

  


 미니는 희생적이다 / 미니는 염치가 (너무) 많다.

 내가 미약하게 느끼고 있었던 미니의 ‘희생적’이고 ‘염치가 (너무) 많은’ 성향은, 미니의 글을 읽고 난 후 더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미니를 보면 왠지 모르게 든든하고 기대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거 알고 있나요?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일을 맡겨도 되겠다는 확신도 들고요. 아마 미니의 가족들도, 지인들도 모두 나와 같은 마음이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어렸을 적부터 주변인들로부터 비슷한 류의 ‘기댐’을 마구잡이로 당해 온 미니의 속마음을 적은 글을 읽고 나니,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놓아라 내놓지 않으면 구워서 먹으리’ 하는 고대가요 ‘구지가’처럼 우리가 너무 다짜고짜 미니의 어깨를 강탈한 것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미니가 꽤 긴 시간 동안 ‘나는 괜찮다’는 말로 그 역할을 버겁게 견뎌온 거 같아 안타까웠습니다. 선한 사람 같으니라고. 로봇같이 들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미니의 그런 ‘든든함’과 ‘신의’가 선천적으로 뿜어져 나오는 기질과 분위기라고도 생각합니다 (+ 미니가 이전 편지에서 말했던 가정교육). 사실, 이건 뭐 이제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니 그냥 가지고 가도록 해요. 다만 그것을 미니가 자유자재로 컨트롤할 수 있다면, 미니에게 아주 유리한 ‘카드’로도 작용할 수 있다고도 생각합니다. 그리고 미니에게도 기댈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더 좋을 것 같아요. 그러니까 내 말은, 비록 나는 종이 인형이지만 미니 하나 정도는 기대어 쉬게 해 줄 수 있을(?) 겁니다. 힘들면 언제든 말 걸어줘요. 내가 거기 있을게! 아래는 미니 글을 부분 발췌한 것입니다. 같이 읽어보면 좋을 것 같아서 한 번 넣어봤어요.


 ·   몸이 뻣뻣해지며 ‘딸각’하는 소리가 심장으로 내려앉았다. 족쇄가 채워지는 것 같았다. 어머니는 나 때문에 제 삶을 살지도 못하고 이렇게 사는구나. 나는 그녀의 기쁨이자 버팀목이었다. 나는 어머니로부터 멀리 달아나고 싶으면서도 그녀의 삶을 보상해줘야 했다. 그녀의 사랑이 무거웠다. 그래서 미안했다. 그래서 나는 그녀 앞에서 늘 괜찮았다.

 


미니가 쓴 시가 궁금하다.

미니가 쓴 글의 몇 개의 문장들을 읽고 어쩐지 미니가 쓴 시가 궁금해졌어요. 미니가 시를 쓴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은 없는 것 같은데, 혹시 쓴 시가 있다면 보여주세요. 써 본 적이 없다면, 시간이 날 때 한번 써봐요. 잘할 것 같아요. 내 마음에 닿았던 문장들은 아래와 같습니다.

 

·    어머니보다 더 큰 머리를 하고 그녀의 마른 산도를 비집고 들어가고 싶어 진다.

·    아무것도 한 일이 없는데 손톱이 자란다.

·    습한 설움이 눌어붙은 침대에서 울음을 덮고 잠이 들었다.

 


 미니는 사색신동일까?

 9살에 ‘나는 무엇으로 사는가’, ‘죽음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어떤 느낌일까? 몸은 사라지고 정신만 남아 떠다니게 되는 것일까?” 등등의 생각을 하고 질문을 하다니……. 세 살 때부터 배우지도 않은 피아노를 치고, 다섯 살에 교향곡을 작곡을 시작했던 음악신동 모차르트를 보는 것만 같았습니다. 혹시 어린 미니는 사색신동이었던 건가요? 철학자가 됐어도 좋을 뻔했어요.

 

 9살의 나는 무엇을 했을까요? 부끄럽지만 나는 오늘 한 일도 기억이 잘 안 납니다. 원피스의 루피가 고무고무 열매를 먹고 쭉쭉 늘어나는 것처럼, 나는 망각의 열매를 먹고 망각망각 하는 것 같아요. (뭐 싫다는 건 아닙니다. 망각이 은근 정신 건강에 좋아요. 이 이야기도 기회가 되면 다음 편지에서 풀어보고 싶네요.). 


 미니의 글, ‘그런 얘긴 안 해줬으면 좋겠어”를 읽으면서 당시 어린 미니의 진지한 질문에 귀 기울여주고, 함께 고민해 줄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었다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동네친구였으면 대박이였을 텐데. 그렇죠?


 

 편지를 마치며, ‘사람을 좋아하고’, ‘사랑받고 싶어 하고’, ‘스스로에게 엄격한 부분’에 대해서는 지금은 딱히 특별한 부연설명이 떠오르지 않아 그냥 뒀습니다. 혹시 덧붙일 말이 생각나면 다음 편지에 떠오를 때마다 적을게요. 미니에 대한 나의 퀵 분석/감상이 조금이나마 ‘나를 찾는 과정’에 도움이 되었 길 바라며 이만 줄입니다. 좋은 하루 돼요.

 


 사람들에게 내가 잊혀질까 두려운 안나가








Photo l © 안나와 미니 

2021년 카타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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