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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a Oct 20. 2023

깊은 사랑을 품고 있는 안나에게

자정이 너머 과도하게 새벽감성인 미니가


 깊은 사랑을 품고 있는 안나에게



 안나,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젠장, 시작부터 또 부끄럽고 맙니다) 제 인생 통틀어 이런 애정의 편지를 받아 본 일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제 글이 인용될 줄 알았더라면 저는 이 서간문을 나누는 기간 동안 링크를 동봉해 보내지 않았을 거예요. 


 그렇지만, 안나. 안나는 글이 왜 존재한다고 생각하나요? 저는 마땅히 그 이유를 나눔에 있다고 생각해요. 손과 손으로 전해지는 물성, 눈으로 따라 읽히는 검은 선, 그 너머 무형의 실체. 땅을 살찌우는 생활의 지혜, 싸움에서 진 어린아이의 울분, 매출을 올리고 싶은 강사의 탐욕,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책상에 앉은 문인의 열망 한 조각. 그 어떤 것도 홀로 존재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연결되고 서로를 위로할 수 있나요. 시대를 넘어 존재하지 않는 이의 냄새를 가늠해 보는 일보다 더 멋진 일이 세상에 무엇이 있나요? 지금 내가 솜씨 없는 손으로 더듬어 기우는 이 부끄러운 글도 안나에게 닿지 않는다면 당신에 대한 생각과 이어지는 고민은 어떤 쓸모가 있나요. 그런 면에서 안나가 제 글을 처음 나눠준 사람인 것이 제 마음을 술렁이게 합니다. 나는 오늘 밤 무거운 행복감에 젖어들고 있어요.


 사람의 인연이란 참 신기하지요? 처음 안나와 독대하며 점심식사를 했던 날이 생각이 납니다. 제 기억이 맞다면 각자 순두부찌개와 김치찌개를 먹으며 서로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 나눴었어요. 안나는 아주 당연하고 분명한 어조로 글을 쓸 거라고 이야기했었죠. 저는 그게 참 인상 깊었어요. 당시 저에게 글을 쓰는 일은 겸연쩍은 웃음과 천정의 모서리를 힐끗거리고서야 겨우 말할까 고민하다 끝내 꺼내지 못하는 희망사항이었거든요. 그런데 당장 내일의 일을 걱정하는 하루 중에 만난 지 며칠 되지 않는 이에게 ‘반드시' 글을 쓸 거라니. 그건 안나의 사명과도 같은 거였나요? 그것은 믿음에 가까운 확언인가요? 나는 당시 기묘하면서도 과연 이 여자가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아는 건가. 하는 생각도 동시에 들었답니다. 당신의 믿음에 불경하게 의심을 거둘 수가 없었습니다. 사실 거의 믿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나는 오늘 당신을 더 멀리 두고 이렇게 글을 쓰고 있습니다. 


 인생이란 참!


 긴 사랑에 대한 작은 화답을 보내는 것이 인지상정이지 않겠어요? 그런데 안나, 그대는 나에게 섬세하다고 했지만 애석하게도 나는 당신의 글에서 작은 조각을 찾기가 쉽지 않네요. 부디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적기 때문이라 생각하지 말아 줘요. 또 우려스러운 것은, 수다쟁이인 저는 칠칠치 못하게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흘리느라 안나의 이야기를 더 많이 들어두지 못했던 것 같아요. (우린 정말 이렇게 서로를 잘 모르네요!) 그래서 제가 아직 보지 못한 안나의 여러면을 고려하지 못한 경솔한 이야기를 하게 되어 혹 상처 입힐까 하는 것이에요. 그렇지만 우리가 그 정도는 윙크로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신뢰가 쌓였다고 믿어요.


 음, 막상 글을 쓰려고 보니 어쩐지 내가 안나를 금속 실험대에 눕혀놓고 하나하나 더듬어보려는 것 같아 민망한 구석이 있네요. 알다시피 저는 속되면서 부끄러움이 많은 인물이잖아요. 이 전 서간문에서 나를 벗겨내는 것에 즐거움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귀가 빨개졌다니까요. 이럴 땐 정말 마인드 컨트롤, 명상이 필요해요. 자, 심호흡을 한번 하고요. 나란히 누워 하늘을 바라볼게요. 음, 좋아요. 별이 보이기 시작하네요. 안나도 느껴지죠? 우린 차가운 기운에서 벗어나 손가락 한마디도 되지 않는 짧은 잔디 위에 비스듬히 누웠어요. 제 쪽은 보지 말고 뒤로 흐르는 강물을 바라봐 주세요.


 나는 안나와 이야기하다 보면 참 신기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많이 해요. 물론 절 제외한 사람은 모두 신기하게 바라보는 경향이 있지만 안나는 뭐랄까요. 모래바람이 부는 가운데 우뚝 서 있는 가시 없는 선인장 같아요. 멀리서 보면 고난의 사막에서 전사처럼 서 있지만, 다가가기 어려운 모래 바람 속에 홀로 생존하는 모습은 경탄스러우면서도 언뜻 지쳐 보이기도 해요. 그런데 지쳐 보이는 것은 밖의 감상일 뿐, 선인장은 그저 존재할 뿐이겠죠. 그곳에서 나고 자라며 최선을 다해 스스로를 키웠을 과정을 짐작해 봐요. 태초에 존재했던 넓은 잎을 떨구고, 가지 틔우는 눈을 긴 피뢰침으로 진화한 과정을 겹치며 나는 안나의 단단함을 느껴요. 안나는 별 것 아닌 듯 건조하게 이야기하는 것들이 있는데,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게다가 지나가는 다른 넝쿨이나 꽃가지들을 보고 자신은 비어있는 줄기 취급을 하는 경향이 있어요. 진짜 마른 장작을 본 적이 없는지 본인 안에 머금은 생명의 화수분을 모르는 것 같아요. 안나, 안나는 참 열정적인 사람이에요. 저는 오히려 안나가 너무 열정적인 사람이라 걱정을 해요. 


 나는 당신의 가슴에 난 상처에서 무엇이 돋아나는 것 같은 착시를 느껴요. 그게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늘 궁금해요. 안나. 안나는 어떤 사람인가요. 당신은 어디까지 인고하여 무엇을 품에 안을까요?


 나는 정갈하게 샤워를 끝마치고 침대에 가만히 누워 안나를 생각해요. 내가 어떻게 안나에 대한 감정을 잘 설명할 수 있는지. 이 시간의 흐름을 담아내고 싶은데 자꾸만 어른거리다 흩어져 집어낼 수 없어요. 


 다만 분명한 건, 안나는 굉장히 사랑이 넘치는 사람이라는 것과 동시에 건조와 대척점에 서 있다는 거예요.


 더 쓰고 싶지만, 지금 이 시간 분명 보내고 나면 더 이상의 서간문을 나눌 수 없게 부끄러운 이야기들을 잔뜩 할 것 같으니 이만 줄일게요. 안나가 물어본 것들이 많았는데 모두 회신하지 못하는 걸 용서하세요.


 

 자정이 너머 과도하게 새벽감성인 미니가








Photo l © 안나와 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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