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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a Oct 20. 2023

심성이 야들야들한 미니에게

앞가슴에 눈물로 지피는 불이 달린 안나가


 심성이 야들야들한 미니에게

 

 

 미니의 편지를 다 읽고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거울 앞에 서서 앞가슴 위 역삼각형 모양의 흉터를 바라보는 것이었습니다. 재생속도가 각기 달라 색감이 얼룩덜룩하고, 미세하게 질감이 다른 새 피부와 헌 피부가 엉겨 있는 나의 흉터. 2년이 지나서야 겨우 희미해지기 시작한 이 흉터는 정말, 아니 과연 나에게 어떤 의미인 걸까요?

 

 대학교를 졸업하고, 저의 첫 직장은 사진관이었습니다. 유명 상업 사진작가였던 저의 고용인은 순수사진작가로서 영역을 넓혀 가고 있었고, 저는 그분의 해외전시업무 담당 ‘기획자’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저에게 ‘괜찮은(Decent) 기획자’, 더 나아가 ‘괜찮은(Decent) 사회인’으로서 갖춰야 할 덕목, 마음가짐, 자세, 취향, 지식 등을 가르쳐 주셨어요. 그것들은 지금의 저를 지탱하고 있는 초석의 한 부분이 되었고, 어쩌면 그 초석이 미니로 하여금 나를 ‘단단한 사람’으로 느끼게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첫 상사로 그분을 모실 수 있었던 것은 엄청난 행운이었어요.

 

 나의 흉터가 한 살이 되었을 때, 어렵게 한국으로 휴가를 온 저는 언제나 그랬듯 작가님을 뵈러 갔습니다. 입고 간 옷의 앞섶을 꽤 많이 아래로 잡아당겨 흉터를 보여드렸고, 담담하게 (미니가 언급한 것처럼, 별 것 아닌 듯 건조하게) 그동안 있었던 일을 말씀드렸습니다. 가만히 흉터를 살펴보시던 작가님은 별말씀 없이 당시 작업 중이던 도록을 꺼내 제게 보여주셨어요. 작가님이 펼쳐 보여준 페이지에는 (영광스럽게도) 저와 작가님이 함께 작업했던 사진 두 점이 실려 있었습니다. 작가님은 그중 한 점의 작품명을 콕 짚어 읽어 주셨어요.

 

 “가슴에 달린 눈물로 지피는 불.”

 

 음, 뭐랄까. 그 작품명은 마치 내 앞가슴 위 이글거리는 나의 흉터를 위한 ‘제목’ 같았습니다. 짧은 찰나에 내가 작가님께 흉터 관련해서 말씀드렸었나? 생각해 봤지만, 아니 전혀요. 동시에 작가님이 독특한 방식으로 각 작품의 작품명을 짓는 것을 떠올린 저는, 순간 멍 해졌습니다. (이 부분은 작가님의 영역이라 자세한 설명은 생략합니다.) 어쩐지 나의 흉터가 내가 태어나기 훨씬 전부터 이미 정해져 있던 당연한 것 같이 느껴졌고, 이제껏 흉물스럽다고 외면하던 나의 흉터가 잠시나마 아름다운 예술 작품이 된 기분마저 들었습니다. 물론 우연이겠죠.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의미충’ 기질이 발현해 이것저것 억지로 끼워 맞춘 것일 수도 있고요. 중요한 것은, 이 사건이 나의 흉터에 대한 나의 시각과 자세에 변화를 가져왔다는 것입니다.

 

 그전까지만 해도 나의 흉터는 그저 한계에 다다른, 참고 참다 울화통이 터진 내 몸이 나에게 보낸 ‘시그널’ 혹은 ‘경고’ 정도로 타협되어 겨우 받아들여진 못생긴 나의 일부에 불과했습니다. 왜냐하면 나의 흉터는 꽤 자주, 나로 하여금 어딘가 흠집이 나 등급이 떨어진 못난이 과일이 된 기분이 들게 했고, 용기 내어 거울 앞에 설 때면 어림없다는 듯 나의 앞가슴 위에서 주홍글씨처럼 미친 존재감을 드러냈거든요. 사람들은 나와 대화할 때마다 내 앞가슴을 내려다보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만 했어요. 마치 눈을 마주치면 돌로 변해 버리는 메두사의 머리인 양, 나의 흉터를 바라보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는 사람들에게 나는 이상한 죄책감을 느꼈습니다. (물론 나를 배려해서, 빤히 혹은 힐끔 쳐다보지 않으려고 그랬겠지요. 하지만 그때는 그런 배려조차 너무 따가웠어요.)

 

 기본적으로 시각과 자세가 바뀌니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고 들리지 않던 것들이 들렸습니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내 흉터에 관심이 없었고, 어떤 이들은 나의 흉터가 특별하고 아름답다고도 진심으로 말해주었습니다. 사실 돌아보면 나의 흉터는 나의 많은 것을 바꿔 놓았습니다. 미니에게 말했듯이, 나는 더 이상 나에게 의미 없는 것에 나의 소중한 (제한된) 시간과 에너지 그리고 노력을 쓰지 않아요. 어쩌면 ‘나는 이제 글을 쓰겠다’라는 결단도 나의 흉터가 없었다면 또 2순위로 밀려났을지도 모릅니다. 어찌 됐건 요 근래 나와 나의 흉터의 날씨는 ‘맑음’입니다. 점점 희미해져 가는 흉터를 보며, 아예 티도 안 나게 모조리 사라져 버리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을 해줄 만큼, 우리는 꽤 많이 친해졌어요.

 

 ‘나는 당신의 가슴에 난 상처에서 무엇이 돋아나는 것 같은 착시를 느껴요. 그게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늘 궁금해요.’라고 미니가 말한 것처럼. 나도 궁금합니다. 나의 앞가슴에 달린 눈물로 지피는 불이 얼마나, 어떻게, 어디까지 활활 타오를지. 또 나는 어디까지 인고하여 무엇을 품에 안게 될지.

 

 

 다시 미니의 편지로 돌아가서, 그때의 나는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글을 쓰겠다’고 한 게 맞습니다. (그러고 보니 미니는 그때도 나를 꿰뚫어 보았군요). 그렇게 라도 말하지 않으면, 매일 2순위 취급을 당하고 있는 글이 아주 단단히 삐쳐서, 영영 달아나버릴 것 같았거든요. 나는 보기보다 강단이 없는 사람입니다. 경제적인 자유와 독립이 ‘글 쓰는 일’ 보다 더 중요했고, 매번 선택에 기로에 설 때마다 나는 글을 선택하지 않았어요. 솔직히 말하면 나는 언제나 글을 등질 준비가 된 사람인 것 같습니다. 나도 아직 나를 의심하고 있어요.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아주 당연하고 분명한 어조로 모두에게 말하고 다닐 생각입니다. ‘나는 글을 쓸 거라고’. 망각의 열매를 먹고 망각망각하는 나 스스로 독촉하고, 내 입으로 뱉은 말은 꼭 지켜야 하는 나의 성향을 역이용하기 위해서라도 말이에요.

 

 끝으로 나를 가시 없는 선인장 같다고 말해줘서 고마워요. 나의 단단함을 느껴줘서 고맙고, 나도 모르고 있던 내 안의 머금은 생명의 화수분에 대해 귀띔해 줘서 고맙습니다. 이렇게 미니와 즐겁게 편지를 나눌 수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오늘 여기는 날씨가 맑아요. 저는 몽글몽글한 기분을 안고 산책을 나가봐야겠어요. 그럼 이만.

 

 

 앞가슴에 눈물로 지피는 불이 달린 안나가








Photo l © 안나와 미니

2021년 카타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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