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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몽수 Sep 01. 2020

계획대로 살지 않을 계획

몇 달 전 조카의 돌잔치가 있었다. 집에서 가족들만 모여 돌상을 앞에 두고 사진만 찍은 정말 소박한 자리였다. 원래는 호텔에서 치를 계획이었다. 동생이 고르고 고른 장소가 있었다. 동생네 부부가 웨딩마치를 울린 곳이었다. 미리 가서 자세한 설명을 듣고 일찌감치 계약금을 치렀다.


그때는 미처 몰랐다. 유례없이 파괴적인 신종 감염병이 우리의 평범한 일상에 이렇게 불쑥 급제동을 걸어올지. 그동안 당연하다고 여겼던 우리의 일상 속 평범한 대면을 단숨에 끊어놓고 일시 정지시켜놓을지 알지 못했다.


고심 끝에 돌잔치 예약을 취소했다. 그리고 사람 많은 식당을 피해 집에서 가족끼리 모여 조카의 생일을 축하하는 것으로 계획이 급 수정되었다.


그런데 여기에 또 생각지도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동생네 아파트 엘리베이터가 한 달간 공사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그 기간 동안 계단을 이용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무려 22층이다. 가뜩이나 코로나로 인해 운신이 어려웠는데 엘리베이터 공사로 인해 동생은 돌이 채 안 된 아기를 데리고 꼼짝없이 집안에 갇히다시피 생활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또 이래저래 계획들이 바뀌었다. 택배부터 배달까지 다 정지되고 모든 걸 직접 계단을 통해 운반해야 하는 상황. 그렇다고 조카의 첫돌을 그냥 넘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식사도 패스했다. 어쩔 수 없이 돌상에 필요한 것들을 모두 다 최소화하기로 결정했다.


돌잔치 당일 우리 식구는 동생네 아파트로 향했다. 그리고 22층이라는 계단을 열심히 오르기 시작했다. 절반도 올라가지 않았는데 숨이 헉헉 차올랐다. 역시 만만치 않았다. 근데 이상했다. 생각할수록 이 상황이 황당하면서 또 한편 웃음이 터져 나오는 것이었다. 앓는 소리를 내며 한 계단 한 계단 열심히 오르며 숨소리만큼 가족들의 웃음소리도 벅차올랐다. 힘들지만 힘들지만은 않은, 웃긴데 웃을 수만은 없는, 아주 복잡한 감정들이 뒤섞였다. 이제 곧 고지가 다가오고 있었다. 천신만고 끝에 산 정상에 오른 기분으로 야호! 하고 외쳤다.


22계단만큼의 사랑과 축복이 더해진 조카의 돌상 앞에 온 가족이 모여 사진을 찍은 그 날, 나는 알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 그 사진을 볼 때면 이 모든 게 특별한 추억이 되어 있으리라는 걸. 그 마음을 글로 적으면 기록이 되고 머리에 남기면 기억이 되고 가슴에 남으면 추억이 된다는 것도.


코로나가 창궐하지 않았다면,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지 않았다면, 우리는 미리 계획한 그 과정 속에 놓여있었을 것이다. 그 과정은 또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각인되고, 다른 곳을 향해 뻗어나갔을 것이다.


하지만 어디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게 인생사. 갖가지 문제들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다. 사소한 것에서부터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까지, 아무리 준비를 철저히 해도 막상 받아보면 생각지도 못한 문제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마치 시험처럼 어떤 문제가 던져졌을 때 답을 찾아가는 과정 속에 존재하는 것이 삶이기 때문이다.


코로나로 인해 이전에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삶이 얼마나 귀중했는지 알게 되었다. 당연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지금의 이 재난이 더욱 충격적이고 공포스럽다. 굳이 말하자면 기출문제가 아닌 한 번도 풀어본 적 없는 최고 난위도의 응용문제를 만난 셈이다.


어디까지 응용이 가능할지 누구도 알지 못한다. 그러나 경험을 통해 우리가 알고 있는 하나가 있다. 응용문제에 강해지려면 어쩔 수 없이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 기본은 계획일 수밖에 없다는 것. 계획하지 않을 계획이라는 말처럼, 우리의 삶은 이토록 아이러니하다.


아직 모든 게 막막하고 두렵지만, 지뢰밭을 걷듯 생명의 위협까지 느껴지지만, 우리는 코로나 이후의 삶을 준비하며 계획해야 한다. 부딪히고 넘어질 각오로 하나하나 풀다 보면 언젠가는 답이라 여겨지는 곳에 가까워질 것을 믿는다. 준비하고 계획하는 것만이 이 위기의 시대를 버틸 수 있는 힘이라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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