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자세 체크 포인트 다섯 가지
언제부턴가 자고 일어나면 어깨가 끊어질 듯 아팠다. 앓는 소리를 내며 하루를 시작해야 했다. 혹시 오십견이라는 건가? 기분이 가라앉았다. 그러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평소 옆으로 누워 자는 내 자세가 잘못됐다는 걸 알게 됐다. 옆으로 누워 자면 어깨 관절이 압박되기 때문에 바르게 누워 자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잠들기 전 짧으면 10여 분 길게는 1시간가량 휴대폰을 보는 습관이 있다. 벽 쪽에 기대 놓고 액정을 보는 게 편해 늘 그래 왔다. 그런 잘못된 자세 때문에 어깨에 무리가 온 것이다. 그럼 누워 볼 수 있게 휴대폰 거치대라도 하나 사야겠다 싶어 온라인 쇼핑몰을 찾아보았다. 그런데 워낙 종류가 많아 고르는 게 쉽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통증은 더욱 심해졌고, 나는 아픔을 견디다 못해 앞을 보고 바로 누울 수밖에 없었다. 웬만해선 병원 갈 생각을 잘 안 하는 뇌 구조다.
바르게 누워 휴대폰을 보는 건 쉽지 않았다. 그래서 잠시 또 기존 버릇이 나와 옆으로 누울 때면 몸이 절로 흠칫하며 자세를 바로 잡았다. 그러기를 며칠. 신기할 정도로 어깨 통증이 완화되었다. 그저 자세 하나 바꿨을 뿐인데.
자세의 중요성을 느낀 건 그전에 스쿼트 동작을 하면서부터다. 운동은 안 하고 책상에 앉아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은근 몸 걱정이 됐다. 그래서 매일 소소하게나마 스쿼트 30회 정도를 해보자고 결심하고 바로 실행에 옮겼다. 그런데 얼마 후 전에 없던 증상이 생겼다. 얼마 걷고 나면 다리가 아프고 무릎도 쑤셔왔다. 전엔 안 그랬는데, 갑자기 왜 이러지? 혹시 스쿼트 때문인가?
그때 역시 인터넷 검색을 통해 알게 됐다. 자세가 잘못됐다는 걸. 스쿼트를 할 때 양발은 어깨 너비만큼 벌리고 발뒤꿈치와 엉덩이 근육에 힘을 주며 일어서야 한다. 앉을 때도 무릎은 발 앞꿈치를 넘지 않게 해야 하는 등 바른 자세가 따로 있었다. 스쿼트는 그저 앉았다 일어서기만 하는 동작이 아니었다. 근육을 바르게 움직여주는 자세가 관건이었다. 아무리 몸에 좋은 운동도 자세가 바르지 않으면 몸을 해치는 법이다.
바른 자세를 알고 난 뒤 그대로 지키며 꾸준히 스쿼트를 하고 있다. 물론 다리와 무릎이 아프지 않다. 자세가 바르다는 뜻이다.
자세의 중요성은 마음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자세가 마음을 결정한다. 그리고 태도로 나타난다.
요즘 신경이 예민하다. 대본 쓰면서 예민할 때와는 또 다른 결의 신경과민. 자다가 중간중간 자꾸 깬다. 다시 잠들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늘 수면부족이다. 그래서일까. 별거 아닌 일에도 벌컥벌컥 짜증이 솟구친다.
왜 하필 내 앞을 걸어가는 사람은 담배를 피워 물거나 침을 뱉는 걸까? 왜 하필 지하철 하고 많은 자리 중에 마스크 벗고 기침하는 아저씨 앞에 앉은 걸까? 왜 하필 지금 신용카드 유효기간은 만기가 된 걸까? 왜 하필 내가 산 물건이 품절일까? 왜 하필 내 코앞에서 횡단보도 신호는 바뀌는가. 집안 먼지는 닦아도 닦아도 끝이 없고, 버려도 버려도 끝이 없는 잡동사니들처럼 불평불만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하나부터 열 가지 다 신경에 거슬린다.
오늘도 온라인 상품 구매 오류로 상담사와 통화를 하다 나도 모르게 발끈해서 언성을 높였다. 전화를 끊고 마음이 안 좋았다. 별거 아닌데 왜 감정 하나 다스리지 못하고 상대방에게 쏘아붙였을까? 삭막한 마음이 친절하지 못한 태도로 고스란히 나타났다. 성숙하지 못한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남들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다. 나의 내면 속에서 일어나는 이 작은 소란들은 나조차도 딱 꼬집어 설명할 수 없다. 그래서 하찮게 여겨지고 무시당한다. 쌓이고 쌓이면 비로소 우울이라는 아픔으로 명명되어지는 그것은 사소해 보이지만 사소하지 않은 아픔이다. 이윽고 마음 자세를 체크해야 하는 순간이 온 것이다.
몸이 아플 때 자세를 체크했듯 마음이 아플 때도 마찬가지다. 마음에도 바른 자세가 있다. 바른 자세를 익혀야 탈이 나지 않는다. 바른 마음 자세를 위해 체크해야 할 다섯 가지 마음 포인트를 정리해보려한다.
첫째, 자신감.
문득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은 그런 예감이 들 때가 있다. 아무 일도 없는데 괜히 기분 좋은 예감이 들 때. 그건 아무 때나 찾아오는 느낌이 아니다. 왜 그랬는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결론은 자신감이었다. 최선을 다해 노력한 뒤에야 얻어지는 포상. 지금 당장은 아무 일도 없지만, 그러나 마침내 좋은 소식이 올 거라는 강한 믿음. 그동안 부끄럽지 않게 열심히 해온 나에 대한 자부심. 그것이 기분 좋은 희망과 기대를 가져온다.
둘째, 자존심.
흔히 자존심을 버리라고 이야기한다. 자존심을 자만이나 객기로 드러내려 할 때는 그렇다. 하지만 긍지와 절개, 존엄으로서의 자존심은 전혀 그렇지 않다. 아무리 힘들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것. 누군가에게 그건 가족이 될 수도 있고 돈이 될 수도 있고 작가에겐 혼신을 기울인 작품이 될 수도 있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가치는 반드시 지켜야 한다.
셋째, 자존감.
자존심이 상대적인 것이라면 자존감은 절대적인 것이다. 자존감은 자신감과 자존심을 지탱해주는 기둥이다. 누가 뭐래도 흔들림이 없어야 한다. 나는 존재 자체로 특별하다는 믿음. 남의 평가에 연연해 나를 깎아내릴 필요도 없고, 반대로 나를 치켜세우기 위해 남을 비하해서도 안 된다. 남과 비교하지 않고 나의 품위와 인격을 지킬 줄 아는 힘. 자존감이 단단하게 바로 서도록 늘 자신을 돌봐야 한다.
넷째, 배려와 존중.
최근 2살 된 조카를 데리고 놀이터에 가서 시소를 태우며 생각했다. 시소가 우리 인생을 닮았다고. 시소는 절대 혼자 탈 수 없다. 반드시 누군가와 마주 보아야 한다. 내가 오르면 상대는 내려오고 내가 내려오면 상대가 올라간다. 즉 서로 배려와 존중을 주고받아야만 인생이라는 시소 역시 즐겁게 탈 수 있다.
마지막 다섯째, 낙관적인 자세.
한 연구에 의하면 낙관적인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오래 산다고 한다. 낙관적이란 건 어떤 걸 말하는 걸까?
"두 사람이 똑같은 창문 너머로 밖을 내다보았다. 한 사람은 진흙을 보고 한 사람은 별을 바라본다."
<비관주의자와 낙관주의자>를 표현한 '램브리지'라는 시인의 글이다.
즉 마음을 어디에 두고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세상이 달라진다는 말이다. 내가 보는 세상은 내가 선택한 자세에 달려있다.
지금 마음이 아프다면 자세가 바르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사소해 보이지만 사소하지 않은 아픔은 자세 하나만으로 바꿀 수 있다.
원하는 대로 살고 싶지만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방황할 때, 그래서 아프고 마음이 힘들 때 나의 마음 자세가 어떤 지부터 살펴봐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