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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주원 Nov 29. 2020

젠장, 또 망설였다

주저하는 것과 저요하는 것, 그 사이

  '생활보수'라는 말이 있다. 네이버 국어사전에는 '사고나 정치 성향은 진보적이나, 실제 생활에서는 무대책으로 보수 성향으로 치우치는 층을 말한다'라고 정의되어있다. 난 다르게 정의해서 쓰겠다. '정치적으론 진보적이나, 생활에서는 갔던데 또 가고 또 가고 계속 가는 사람' 왜 얘기를 꺼냈냐고? 내가 바로 생활보수다. 누가 자기가 살 테니 프랑스 요리 전문점과 국밥집을 고르라고 하면, (프랑스 요리를 먹어보고 싶어도) 나는 국밥집을 고른다.


  생활보수인이 된 연유는 각양각색이겠지만 나의 경우는 두려움이다. 새로움과 익숙함. 두 선택지가 주어질 때 나는 자연스럽게 내가 망신을 당할 걱정을 한다.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어찌어찌 내 주장이 안 먹혀 프랑스 요리 전문점에 가기로 했다 치자. 글만 썼는데 벌써 떨리네. 일단 식당에 들어선다. 들어설 때도 잘 걸어야 한다. 긴장해서 발이 꼬일 수 있으니. 음식이 나오면 손으로 먹어야 하는지, 어떤 도구를 사용해야 하는지 몰라 어리벙벙하게 눈동자만 굴려 주위를 탐색한다. 그리고 뚝딱거린다. 상황이 어색하단 소리다. 밥을 뚝딱이며 먹는다. 쨍그랑. 포크를 떨어뜨린다. 당황해서 포크를 줍는다. 일어서는데 쾅, 책상에 머리박는다. 머쓱하게 일어나서 새 포크로 밥을 먹는데, 아뿔싸. 밥을 다 먹고 나니까 허벅지에 냅킨을 안 깐 걸 알게 됐다. 상상만 했는데 벌써 화끈거린다. 이렇게 긴장감 넘치는(?) 상상을 자주 하는 습관으로, 난 생활보수인이 됐다.




  올해 9월 말, 대학 친구들과 당일치기로 을왕리를 갔다. 조개구이를 배 터지게 먹고 밤바다 산책을 하러 모래사장을 따라 걸었다. 노래가 들렸다. 어쩔 땐 여자, 어쩔 땐 남자의 목소리였다. 중년의 남자 두 분과 관광객 한 분이 모래 사장에 앉아 기타를 퉁기면서 노래를 불렀다. 모인 사람들은 사진 찍거나 고개를 주억거리며 감상했다. 밤과 어울리는, 감성이 흘렀다. 잠시 멈춰서 노래를 듣기로 했다. 앉으려는데 노래가 끝났다. 일각에서 대학생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돌려보면 한 남학생을 밀면서 "나가! 나가!". '젊구먼' 흐뭇하게 바라보는데, 갑자기 내 등도 떠밀렸다.


나가! 나가!


 떠밀림에 당황한 나는 못하겠다,  손사래를 치며 발바닥에 힘을 빡! 줬다. "너가 우리 셋 중에서 제일 잘하잖아!"  단정적인 어투의 주장은 이내 간절한 설득이 됐다. "너가 한 번만 불러주면 소원이 없겠다. 제발 나가주라"  소원이 소박하다 싶었고, 마음은 쿵쾅댔다. 실랑이를 하는 사이 옆 대학생들 중 한 남학생이 나가 노래를 시작했다. 폴 킴의 비였던 것 같다. 주위에서 설득하는 친구들과 노래는 하나도 안 들리고, 페이드 아웃되면서 '어쩌지? 어쩌지? 나가? 말아? 음이 안 올라가면? 쪽팔려서 어떡해! 못해!!'  생각이 점점 커지는데, 친구 하나가 그랬다. "난 너처럼 부를 수 있으면 할 거야. 너 이렇게 가면 후회할걸?" 머리가 하얘졌다. 그리고 책 속 구절이 퍼뜩 떠올랐다.


선택해야 할 순간에, 막상 선택보다는 망설이는 시간들이 쌓이고 쌓이는 것이 사는 일의 속성이겠지만 언젠가부터 나는 망설이는 일을 그만두기로 했다. (중략) 나는 어떻게든 박력 있게 정하는 일을 먼저 했다.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뭐든 일단 저지르고 마는 유형의 사람이 되겠다고 입장을 정했다 해서 안 좋은 결과만 따라오는 건 아니니까 <혼자가 혼자에게, 이병률>


 떠오른 이상 이대로 발걸음을 돌리면 정말, 두고두고 후회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노래를 부른 뒤 나에게 올 손가락질이 두려웠다. 어떻게 생각을 잘해보려고 해도 두려움의 감정은 걷잡을 수 없이 나를 잡아먹었다.


못하는 건 알겠는데…, 해보고 싶어.


  결국 난 앞으로 나갔고, 벌벌 떨리는 몸을 부여잡으며 노래에 집중했다. 부끄러워서 앞은 보지 못하고 떨림을 감추려 이리저리 흔든 몸짓을 담은 동영상만 남았다. 내가 노래를 부르고 있다는 사실도 까맣게 잊었었다. 그땐 떨리는 감정이 전부였으니까. 박수를 받곤 그제야 가슴이 쿵쾅쿵쾅 댔다. 내가 용기를 냈다는 사실이 너무 뿌듯해서 미칠 것 같았다. 내가, 두려움을 이기고 해냈다.




  내 인생을 반짝였던 순간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저요'의 순간이었다. "제가 할게요", "내가 해볼게", "한번 해보지 뭐" 당차게 손을 들고, 고개를 끄덕이고, 앞으로 나갔다. 물론 망설이고 싶을 때가 많았다. 더 주저앉아서 이게 좋을지 저게 좋을지 고민해보고 싶었다. 그 순간마다 후회를 하지 않을까, 포기한 것의 결과가 내 쪽팔림보다 크게 남지 않을까 생각했다. 생각만 했다면 내 인생의 특별한 일은 하나도 없었을 테다.


  생각해봤다. 그럼 선택하지 않고 망설였기 때문에 더 좋았던 일은 없었을까? 이틀간 생각해봤는데 그런 일은 없었다. 끝내 하지 않아서일 수도, 잊어버릴 만한 가벼움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확실한 건 난 주저의 순간이 아닌 저요의 순간을 추억하며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평행세계의 나를 상상해본다. 을왕리에서 온전히 나에 집중해서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잘하지도 못하는 노래를 '용기 있게' 불러본 멋진 경험을 안고 가는 대신, 집 가는 차 안에서 자책하고 말았을 나를 생각한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길은 경험해보지 못한 길이다. 후회를 하더라도 해보고 후회하자. 적어도 '나 이거 해봤는데 쪽팔리더라'는 말은 할 수 있으니까. '나 이거 하려고 했는데 결국 안 했다'는 말은 좀 후지다. 다른 세상에서의 내가, 이 세상에서의 나와 정반대의 선택을 한 걸 후회하면서 도전한 나를 부러워한다고 생각하면 더욱 명쾌해진다.


  니체가 말했다. "지금 이 인생을 완전히 똑같이 다시 한번 살아도 좋다는 마음으로 살아라" 이제 생활보수는 안하련다. 생활진보가 돼서 안먹어 본 음식도 다 먹어보고, 안가본 곳도 다 가봐야지. 비록 자꾸 포크를 떨어뜨릴 지라도.





 이렇게 두 번째 내 삶의 온도를 설정했다. 앞으로 주저하기와 도전하기, 둘 사이 기로에 서게 되면 나는 주저 않고 한번 해보는 걸 선택하겠다고. 어떤 일이 닥치더라도 을왕리에서의 추억을 생각하겠다….


 고민보다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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