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야 Jan 19. 2023

날 닮은 아이, 날 닮은 강아지


결혼을 했다. 결혼 전부터 염려되었지만 그 걱정은 미뤄두기로 했다. 놓치고 싶지 않은 사람이니까. 그렇게 우린 서로의 법적 보호자가 되었고 곧이어 결혼식도 올렸다.





1년이 채 되기 전에 우려가 현실로 다가왔다. 우리 집, 남편 집 구분할 것 없이 2세 계획을 물으셨다. 어른들의 당연한(?) 질문에 내 인상이 찌푸려졌다. 나와 시부모님 사이에서 남편은 어쩔 줄을 몰랐다. 


남편과 약속을 하나 했었다. 결혼을 임신의 과정으로 여기지 말자고. 나는 아이 생각이 없으니까.



내 몸이고 내 인생이다. 한 아이의 존재가 얼마나 무거울지 가늠할 수 없다. 당장 내 신체가 변화하는 것도, 모든 고통 중 가장 괴롭다는 산고도 겪기 싫다. 그 뒤는 상상조차 못 하겠다. 나만 힘들까. 남편도 지쳐갈 것이다. 그가 누리던 평범한 일상, 나와 함께 보내는 오붓한 시간. 모두 사라지겠지. 홀로 세 사람의 생활비를 감당해야 할 그에겐 아주 짧은 혼자만의 시간도 허락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 두 사람 모두 지방에서 나고 자라 서울에 터를 잡았다. 일가친척이 있다고 육아가 쉬워질 리 없다. 나이가 많으신 우리 부모님은 힘이 부족하시고, 장사를 하시는 시부모님은 생계를 유지하셔야 한다. 결국 오롯이 우리 둘의 몫이다. 


하지만 그런 이유보다 가장 두려운 건, 하나의 새 생명이 스스로 온전히 자신의 삶을 살아내야 한다는 안타까움이다.




"내가 언제, 날 낳아달라고 했어요?"


그래, 결국은 어른들의 욕심이다. 아이는 선택권이 없다. 태어나는 것도 부모와 함께 사는 것도. 세상은 늘 충분한 양의 고통을 준다.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것들이 달라질 것이다. 물론 더 풍성한 사랑과 행복을 느낄 수 있겠지만, 주변만 둘러봐도 상황이 나빠진 가족들이 더 많다. 


팍팍한 경제 사정으로 부부간의 불화가 잦아지기도 하고 독박 육아로 인한 극심한 우울증, 이어지는 학대. 특히 나같이 우울증을 앓는 사람에겐 그런 위험이 닥치기 더 쉽다. 아이의 존재 자체를 비난할까 봐. 날 선 독설로 대화를 이어나갈까 봐 두렵다. 보통 자식은 부모가 자기에게 했던 대로, 아이를 대하기 쉬우니까. 


상처로 가득한 유년시절을 물려주고 싶지 않다. 또한 나도 죄책감과 미안함으로 남은 삶을 채우고 싶지 않다. 나는 조건 없는 사랑을 알지 못한다. 







강아지를 데려온 건, 스스로에 대한 실험이었다. 과연 내가 아닌 다른 존재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할 수 있을까. 대가를 바라지 않고, 조급해하지 않고 온전히 보호자로서 곁에 있어줄 수 있을까. 그렇게 내 어린 강아지를 만났다.




자식이 부모를 닮듯, 강아지도 보호자를 닮는다고 한다. 이 작은 강아지를 해맑고 건강한 아이로 키울 수 있을까. 문득 두려워지는 순간이 있다. 


작가의 이전글 내 어린 개는 나의 삶을 닮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