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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재 Aug 04. 2024

플롬바나

5. 나에게 북유럽 - 플롬에서 뮈르달까지

플롬 역



당신이 보낸 엽서를 보고 왔습니다.

날마다 플롬과 뮈르달을 오가며 그림을 그린다고 하였지요.

이곳의 풍경은 변화무쌍하여

가끔은 혼란스럽다고

여름의 창밖은 초목으로 가득하여 새의 이름을 갖지만

겨울의 창밖은 바람의 춤으로 하얀 보석이 쏟아진다고

당신은 말했지요.      


나는 80년* 뒤의 창가에 앉아 당신과 함께 있습니다.

당신의 이 길은 완공까지 17년이 걸렸다지요.


나도 이곳까지 오는 길 참 오래 걸렸습니다.

쉽지 않은 길이더군요.

처음엔 진흙길에 발목이 빠졌고

그다음엔 말을 채울 그릇이 비어있어

소란의 날들만 무성했지요.

당신 곁으로 오기를 참 잘했다는

까마득한 협곡이

멋진 산악마을과 야생화들이

폭포 물줄기가 대신 설명하고 있습니다.

 

당신 안에 안겨보니 알겠습니다.

노르웨이의 자연이 주는 위로가 어떤 의미인지.

빛나는 풍경과 달릴 수밖에 없는지.

무엇이든 구분 짓지 않는 당신.

나를 반기는 듯

당신이 한국어로 안내하는 배려에 가슴이 콩닥거렸습니다.


창을 열다 잠깐 밖으로 나와 효스포센 폭포

훌드라 요정의 유혹에 홀려봅니다.

노르웨이 발레스쿨 학생 요정들

폭포수의 포말과

수풀초록에 휘감긴 빨간 드레스의 춤사위가

잠시 당신을 잊게 하는군요.   

   

요정의 유혹에 빨려든 나를 당신은 찾을 수 있을까요.

말없이 말하는 사진들 속에 내가 있다고

억지로 보려고 하면 보이지 않지만

마음으로 보면 보인답니다.

나를 찾아보세요.     


당신이 본 것은 내가 아닌 새였다고 생각하나요.

창문 열고 보세요.

폭포수 포말에 잠긴 그림자일 거라 생각하나요.

나는 새도 그림자도 요정이 될 수 없으니 찾을 수 있을 겁니다.


20여 개의 터널을 통과합니다

나는 당신의 바깥, 뮈르달 역

만년설 하얀 새의 깃털로 날리는 듯합니다.  

    

플롬으로 돌아오는 길.

베르겐행 환승으로 떠난 승객들의 빈자리

여유롭고 한적하여 당신을 깊이 느낄 수 있습니다.

    

효스포센 폭포의 훌드라 요정이 보이지 않아요.

'마법에 걸려 꼬리가 생긴 아름다운 여인 요정은

자유를 얻기 위해 사람들을 숲 속으로 유혹하며

목숨까지도 앗아간다는데'

아름다운 춤과 음악으로 유혹한 관광객들과

폭포 속으로 사라졌을까요.    

  

당신이 보낸 그림엽서 꺼내보지 않아도

어떤 산악열차인지 알겠습니다.

사람의 힘으로 18개 터널을 뚫었을 그들의 노고를

터널 하나씩 관통할 때마다 당신이 느꼈을 저린 통증을    

  

백야와 만년설에 버물려진

당신의 80년이 지나고

몇 천 년이 흘러도 이곳을 지키겠지만

나에겐 당신과 작별할 시간입니다.    

     

진초록 '플롬바나' 2시간의 짧은 만남이었지만

오랫동안 당신을 그리워할 여름이 되겠지요.  

        


*1940년에 증기기관차가 임시 개통, 1944년에 전철이 운행되기 시작함.    



뮈르달 갈 때 효스포센 폭포
훌드라 요정
뮈르달 역과 만년설
플롬으로 올 때 효스포센 폭포


플롬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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