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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재 Aug 03. 2024

낯선 사람이 되는 시간

4. 나에게 북유럽-헤우게순, 베르겐

 버스 안에 앉아 페리 탑승 헤우게순 가는 카름수네 해협을 건너고 있다. 북해의 바다를 거치지 않고 쉽게 내륙을 오갈 수 있는 페리는 파도가 없을 때 15분이면 건너는 곳이라 하는데 오늘은 파도로 바다가 요동을 치고 있는지 버스 안이 출렁거린다.


 헤우게순은 소설『샤이닝』으로 2023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욘 포세의 고향이다. 겨울 숲에서 길을 잃은 주인공이 삶과 죽음의 경계를 어둠 속에서 만나는 빛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또한 헤우게순은 1973년부터 노르웨이 국제영화 페스티벌과 국제 재즈 페스티벌 실다야즈 등 국제적인 문화예술 행사를 개최하는 도시다.  

    

 다시 페리 탑승 약 1만 년 전 스칸디나비아 반도에 있었던 거대한 빙하의 침식작용으로 형성된 노르웨이에서 두 번째로 긴 하당에르 피오르드 감상하며 베르겐 간다. 이번에는 버스에 내려 패리 안을 탐색 중이다. 맑은 날씨 노르웨이의 공기는 달콤 짭짤 시리다. 추워서 시린 손끝이라면 맑아서 코끝이 시린 맛이라고 해야 할까.       


 베르겐은 건어물 거래를 통해 북유럽의 가장 큰 무역중심지로 발전하였으며, 14~17세기 북해와 발트해 연안 도시 상거래 목적으로 결성된 한자동맹 항구다. 북유럽의 3대 음악가(그리그, 시벨리우스, 닐슨) 중 한 명인 에드바르 그리그의 생가인 트롤 하우젠과 플뢰엔 산 케이블카 선택 관광이다. 친구와 나는 그리그의 생가를 원할 뿐 모두 플뢰엔 산 케이블카를 선택하여 어쩔 수 없이 푸니쿨라 타야했다. 아마도 친구 L은 나를 위해 그리그 생가에 한 표를 얹었을 것이다.      


 여행의 취향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인정할 수밖에 없지만 앞으로 남은 일정에 자연을 감상하는 전망대 투어가 2개나 있는데 그리그 생가에 미련이 남는다. 노르웨이의 자연을 보러 왔으니 풍경을 선택하는 것은 당연하고. 머릿속 지진 나게 문화예술가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 또한 재미없을 것이라 수긍하면서 솔베이지의 노래를 음미해 본다.   

   

 ‘솔베이지의 노래’는 ‘페르귄트 제2모음곡’ 중 제4곡. 에드바르 그리그가 소설 『인형의 집』 작가 헨리 입센의 극시 ‘페르귄트’를 바탕으로 만들었으며. 자신의 시를 무대에 올릴 수 있는 반주곡을 만들어 달라는 입센의 제안을 받아 작곡했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솔베이지의 노래’는 방랑의 길을 떠난 주인공 페르귄트가 고향으로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솔베이지의 영원한 사랑을 노래한 곡이다. 오랜 여정을 마치고 늙고 지친 몸으로 고향으로 돌아온 페르귄트는 백발이 된 솔베이지를 만나 그의 무릎에서 평화로운 죽음을 맞게 된다.


푸니쿨라 타는 입구
트롤
푸니쿨라안에서 바라본 베르겐 항구

 

 플뢰엔 산 푸니쿨라 탄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베르겐 항구는 장난감 모형에 파란 하늘, 낮은 구름, 항구도시답게 돌계단에 앉아 바다 멍하기 좋은 곳이다. 풍경을 뒤로하고 트롤모형과 사진을 찍는 관광객, 놀이터에서 그네 타는 아이들의 웃음, 유모차 이끄는 현지인, 햇볕 받으며 사색 중인 남성, 그런 소소함을 찾고 있는 나는 아직도 그리그 생가가 눈에 아른거린다. 가볼 수 없음에서 오는 내 몸 안 천 개의 반란이 송송 거린다.       


 베르겐 어시장은 11세기 초 항구도시로 형성되면서 시작된 40여 개의 상점과 노점들로 북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시장 중 하나로 아담하다. 대구, 연어, 새우, 고래 고기 등 신선한 해산물들이 우리를 유혹하고 있다.

     

 오늘은 자유식 여행사가 건넨 15유로의 점심이 고민이다. 먹을 수 있는 음식 선택은 쉽지가 않다. 연어가 유명한 곳이지만 회를 먹지 못하는, 알레기로 음식 선택의 폭이 좁은 나는 여기저기 기웃거려 보지만 마땅하게 먹을 수 있는 게 없다. 데친 새우로 소복하게 토핑 한 빵 89 크로네(한화 11,570원)에 허기를 채운다. 양이 많아 남기긴 하였지만 비릿한 바다가 출렁거리고 짜디짠 바람이 입 안을 흥건히 적시더니 물길을 잃은 새우가 내 뱃속에서 유영하는 한낮.  

       

베르겐 어시장


 한자동맹 건물은 저기에 있고,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목조건물은 여기에 있다고 버스 안에서 이곳과 저곳을 알림으로 대충 끝내버리는 가이드의 불친절에 브뤼겐 거리 한참을 헤매야 했던, 색들이 조화를 이루며 어깨동무하고 있는 파스텔 톤 목조건물은 1702년 대화재로 도시 90%가 소실되어 현재 62채의 건물 보존과 새로 건축한 건물의 상업지구다.   

   

 중세 한자동맹의 북해지역 사무소가 있는 베르겐은 197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역사지구 유네스코 마크 찾아 모든 목조건물 휘젓고 다닌다. 바로 건물 눈 앞에 두고도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 낯선 거리에서의 이방인은 슬프다. 무심한 가이드를 만난 나의 운?이겠지. 운이란 꼭 좋은 곳에서만 오는 게 아닌 듯 스스로를 다독거리며 일행인 K와 찾아낸 유네스코 마크는 ‘한자박물관’ 전체가 공사 중이라 외부에 설치된 가림 막 안내문에 사진으로 붙어있다. 브리겐 거리에 있는 세계문화유산 표식은 찾지 못한 눈먼자가 되었다.


 중세 중기 북해 발트해 연안의 독일 등 여러 도시가 상업상 목적으로 결성한 한자동맹 건물을 7년 전 에스토니아 수도 탈린에서 길드(Guild)의 길 따라 걸었던 그때 가이드의 친절한 설명이 새삼 그립게 다가온다.   

   

에스토니아 탈린의 한자동맹건물
공사중인 한자 박물관


 패키지여행에서 좋은 것과 불편한 것은 무엇일까. 생각과 바라보는 관점의 일치? 함께이면서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다는 것? 여행은 낯선 사람이 되는 시간이다. 오늘의 나를 구분하며 내일의 너로 나아가는 것. 베르겐의 시간이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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