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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재 Jul 31. 2024

노르웨이 숲이 부른다

3. 나에게 북유럽 -뤼세피오르드, 프레이케스 톨렌


숲이 부른다

다정하지 않은 목소리로 그가 부른다

깨진 마음을 풀어진 신발 끈 묶듯 꼭 동여매고 

모든 어제는 말줄임표 

열리지 않는 괄호 속 닫아버리면 

빛, 뤼세피오르드 오늘이 열리겠지  

   

젖은 바위 길이 버겁다

빗줄기에 기대어 자작나무들 말이 없고

걸을 때마다 머리칼 끝에 매달린 빗방울 

후드득후드득

비틀즈의 노래 ‘노르웨이 숲’ 가사로 떨어진다    

 

숲이 부른다

비 맞은 물의 얼굴로 그가 부른다

못 미더웠던 삶에 

마음 부릴 수 없었던 삶에


내가 숲을 헤매면 숲이 내 속을 할퀴고 가는 

바위틈 야생화 발끝으로 더듬는 숲에서

늘 한 발짝씩 뒷걸음치며 버려진 문장같았던 

책속에 갇혔던 시간들 지나간다  

    

숲과 빗방울 

서로가 서로에게 섞이면서 

자바자박 걸을 때마다

낮게 울려 퍼지는 새들의 깃털이 

발길을 혼곤하게 하지만 

갈피갈피 나무의 푸른 이끼가 

갈 길을 재촉하기도 한다     


마른땅에도 익숙하지 않았던 발걸음

더듬거리며 들어선 젖은 산길 

안개 걷히며 열리는

수직 절벽 프레이케스 톨렌 

절벽의 경계 넘어 뤼세 피오르드

수백의 동그라미를 그려야 만이 

도착할 수 있는 

그를 여는 내가 있다    

 

묻고 싶었다

수직의 절벽이 되는 사람

절벽을 잇는 피오르드가 되는 사람

그는 어느 쪽이었을까

절벽의 끝에 서보면 알 수 있을까   

  

깊이를 볼 수 없는 아득함이 삶이라고

그대라는 낭떠러지가 

나를 이끌어 세운 것이라고

항상 질문과 대답은 내 몫으로 남기고   

  

건너갈 수 없는 곳으로 미끄러진 나는 

건너올 수 없는 곳으로 사라진 그는

설교자의 의자*에 앉아 빛*을 세다

은심 친구가 건넨 천도복숭아 한입 베어 물며 

하늘 복숭아의 거처는 

하늘일까 

내 입안일까

허공을 시간을 더듬는 천상의 맛에 취해

숲이 부르는 소리 듣지 못한   

    

숲, 어디에도 그가 없다    

      


*프레이케스 톨렌: 설교자의 의자

*뤼세피오르드: ‘빛’이란 뜻                    


대피소
프레이케스 톨렌
사진제공: 최영희님
뤼세피오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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