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나에게 북유럽 -뤼세피오르드, 프레이케스 톨렌
숲이 부른다
다정하지 않은 목소리로 그가 부른다
깨진 마음을 풀어진 신발 끈 묶듯 꼭 동여매고
모든 어제는 말줄임표
열리지 않는 괄호 속 닫아버리면
빛, 뤼세피오르드 오늘이 열리겠지
젖은 바위 길이 버겁다
빗줄기에 기대어 자작나무들 말이 없고
걸을 때마다 머리칼 끝에 매달린 빗방울
후드득후드득
비틀즈의 노래 ‘노르웨이 숲’ 가사로 떨어진다
숲이 부른다
비 맞은 물의 얼굴로 그가 부른다
못 미더웠던 삶에
마음 부릴 수 없었던 삶에
내가 숲을 헤매면 숲이 내 속을 할퀴고 가는
바위틈 야생화 발끝으로 더듬는 숲에서
늘 한 발짝씩 뒷걸음치며 버려진 문장같았던
책속에 갇혔던 시간들 지나간다
숲과 빗방울
서로가 서로에게 섞이면서
자바자박 걸을 때마다
낮게 울려 퍼지는 새들의 깃털이
발길을 혼곤하게 하지만
갈피갈피 나무의 푸른 이끼가
갈 길을 재촉하기도 한다
마른땅에도 익숙하지 않았던 발걸음
더듬거리며 들어선 젖은 산길
안개 걷히며 열리는
수직 절벽 프레이케스 톨렌
절벽의 경계 넘어 뤼세 피오르드
수백의 동그라미를 그려야 만이
도착할 수 있는
그를 여는 내가 있다
묻고 싶었다
수직의 절벽이 되는 사람
절벽을 잇는 피오르드가 되는 사람
그는 어느 쪽이었을까
절벽의 끝에 서보면 알 수 있을까
깊이를 볼 수 없는 아득함이 삶이라고
그대라는 낭떠러지가
나를 이끌어 세운 것이라고
항상 질문과 대답은 내 몫으로 남기고
건너갈 수 없는 곳으로 미끄러진 나는
건너올 수 없는 곳으로 사라진 그는
설교자의 의자*에 앉아 빛*을 세다
은심 친구가 건넨 천도복숭아 한입 베어 물며
하늘 복숭아의 거처는
하늘일까
내 입안일까
허공을 시간을 더듬는 천상의 맛에 취해
숲이 부르는 소리 듣지 못한
숲, 어디에도 그가 없다
*프레이케스 톨렌: 설교자의 의자
*뤼세피오르드: ‘빛’이란 뜻